이 글은 민형이라는 인물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쓰려고 합니다. 민형은 이 소설에서 금지된 것을 행하는 인물이지요. 민형이만 아니었다면 한씨 집안은 한국의 중산층으로서 그럴듯하게 행복을 '꾸며내며' 잘 살 수 있었을 거예요. 그들 스스로도 동의하듯 '속물'적으로요. 하지만 민형이가 '해피패밀리'를 망칩니다.
소설 속 치과의사는 민형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 금지된 것은 없습니다." 민형에겐 정말 금지된 것이 없었습니다. 민형은 금기를 깹니다. 먼저 근친상간을 했고요. 거기다가 부모를 거의 버리지요. 사회적으로 민형이는 패륜아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인간이에요. 가족을 해체시킨 개인. 한국에서는 이런 개인을 곱게 보아 넘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민형이 입장에서 보자면 민형이는 금기를 깬 것이 아니에요. 금기는 애초에 없었는지 몰라요. 민형은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남자로서 누나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관계를 맺은 거지요. 아들로서 부모를 미워한 게 아니라 개인으로서 미워한 거에요. 민형은 일부러 가족을 해체한 '못돼먹은 인간'이 아니라, 개인성이 뚜렷한 인간일 뿐인거죠.
이 책에서는 근친상간을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보입니다. 저는 그저 민형이와 민희의 관계는 민형이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하나의 장치로만 봤어요. 민형이의 본질이 가족의 터부를 건드리는 행위에 있다는 것이 이 두 남매의 사건을 통해 드러났으니까요.
그렇다면 민형은 가족을 와해시켰기 때문에 욕을 먹어 마땅한 인물일까요. 소설을 읽다 보면 민형을 마냥 욕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민형은 사실 꽤 괜찮은 사람이거든요.
민형이는 가족의 '의리'보다 개인의 '양심'이 먼저인 사람이에요. 민형은 엄마를 싫어했습니다. 딸로 입양시킨 영미를 하녀 취급하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는 엄마의 위선 때문이었어요. 아무리 엄마라 해도 아닌 건 아닌 거죠. 이런 민형이의 기질은 '글은 사람'이라는 대중적 격언을 부정하는 부분에서도 드러납니다. 글과 사람의 차이, 즉 글만 뻔지르르한 인간들의 위선을 민형은 '악'으로 치부해 버리는 거죠.
민형이는 사람의 '맨얼굴'을 중요시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페르소나'를 쓰고 있지요. 인간이 우글거리는 사회에서는 '페르소나'인 채 행동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조금은 위선적으로 행동해야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으니까요. 이런 사회에서 민형이는 제정신으로 살 수 없어요. 민형이 술 없이 하루를 버티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민형의 행위 목적이 금기를 깨는 데에만 있었다면, 이 소설은 저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을 거에요. 하지만 금기가 깨진 곳엔 민형의 외침이 있습니다. 영미를 보호하려는 외침, 진실은 진실로서 세상에 밝혀져야 한다는 외침 말이지요. 민형의 외침은 비극적입니다. 가족보다는 영미를, 진실을 택한 셈이 되니까요. 민형은 외치기 위해 스스로 '바퀴벌레'가 되어야 했지요.
이쯤에서 저는 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족 일원으로서의 개인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과연 가족 안에서 개인은 얼마만큼 제거되어야 할까. 개인은 가족을 어디까지 거부할 수 있을까.
소설로서 이 책은 제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문장가'와 '소설가'의 역량 차이를 무시 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이 책은 주제 의식이 빛나는 책입니다. 이 책 덕분에 '개인과 가족의 충돌', 아니 '가족에 충돌한 개인'의 입장을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되었거든요. 가족에 충돌한 개인은 어떻게 될까요. 삐끗하겠지요. 일탈로 해석되는 행동을 할 겁니다. 죄책감과 자기 혐오에 몸부림을 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엔 괜찮아 질 거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치과를 가든 어디를 가든 개인은 모두 다 자기 갈 길을 가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결국 개인으로 남습니다.
요즘 같이 '내 편'이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족애'보단 '인류애'란 생각이 들어요. 행복해야 할 가족이 더는 행복하지 못하고 경쟁의 한복판에서 이익집단으로 변모하고 있는 지금, 소외된 '힘 없는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건 분명 '인류애'일 겁니다. 작가 고종석은 가족을 무정하게 흔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의 무게가 남다른 우리나라에서 양심 있는 개인주의자를 구해내는 유일한 길은 가족을 파괴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책 내용 중에 가장 가슴 따뜻했던 부분을 소개하고 리뷰를 마칠게요. '식구'의 의미를 묻는 딸에게 제대로 답도 못 해주는 엄마, 아빠. 하지만 할머니는 다릅니다. 할머니는 말해요. 꽁치와 장미꽃도 우리 식구라고요.
"응, 그렇구나. 사람들은 모두 식구구나. 그럼 저기 경비 할아버지도 식구고 만둣집 아줌마도 식구고 응, 응, 다 식구네?""그렇지.""유치원 선생님도 식구고 은미도 식구고 봄이도 율이도 식구네?"나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사람들만이 아니란다. 원숭이, 고양이, 개, 사자, 참새, 꽁치, 소나무, 대나무, 장미꽃 이런 것들도 따지고 보면 다 식구란다."웃음이 터져나왔다."꽁치나 장미꽃이 우리 식구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