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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콘서트'를 열었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된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겪은 일과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담은 글을 남편인 윤기진씨에게 편지로 보내왔다. <오마이뉴스>는 황선 대표가 윤기진씨에게 보내온 편지 내용을 몇 편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말]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TV조선 보도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TV조선 보도 ⓒ TV조선 캡쳐

TV조선의 격한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1월 21일 아침이었다. 19일 저녁 종로에서 통일토크콘서트가 진행되고 만 하루 이상을 망설이다가 21일 아침, 무슨 일인지 전격적으로 콘서트 관련 뉴스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통일토크콘서트는 아예 '종북콘서트'라 규정되었고 관련 보도에는 꼭 '지상낙원'과 '3대 세습 찬양'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녔다.

TV조선의 보도를 시작으로 채널A, MBN, YTN, 뉴스Y 등에서 TV조선의 보도를 그대로 받아쓰기 시작했다. 한국축구가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다거나 현직 대통령이 불현듯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소식도 2주 넘게 계속 떠들면 희소식을 넘어 그 저의를 의심하게 되고 뭔가 불편하게 되는 법이다. 듣기 좋은 노래도 한 시절인데 이 '토크쇼' 관련 소식은 11월 21일부터 내가 구속된 올해 1월 중순까지 근 두 달을 지치지도 않고 매시간 떠들어댄 것이다.

물론 토크쇼에서는 '지상낙원'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았다. 북의 후계문제 관련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 해외동포를 모셔서 토크쇼를 연 것이 처음도 아니고, 이번 토크쇼를 시와 음악까지 곁들인 나름 문화행사로, 인터넷 등을 통해 티켓판매까지 한 터였다. 철저히 남북 사이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마련한 행사에 남북 간 합의에도 어긋나며 불신만 가중시킬 주제를 굳이 언급할 일이 뭐 있겠는가.

어이없게도 몇몇 종편 프로그램에선 "허위사실 유포에 반발하면서도 토크쇼 풀 영상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며 몇 날을 시비했다. '당당하면 까라'는 것인데 이들의 풀 영상 공개 요구야말로 이들의 종북몰이가 그 어떤 증빙자료조차 없이 마구잡이로 진행된 것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사실 종북몰이엔 논리도 필요 없고 진위여부도 필요 없다. 오직 종북몰이가 필요하다는 누군가의 요구만 있으면 그만이다. 논리와 증거가 부실할수록 꼭 필요한 것이 '여론'이다. 마녀재판에 필요한 것은 증거가 아니다. 선동과 돌팔매, 막연한 공포심을 자극하고 집단 따돌림의 분위기를 형성하면 사람 하나 태워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닌 것이다. 고맙게도, 이명박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고 박근혜 정부가 고무하고 신뢰한 종편이, 필요한 모든 역할을 해냈다.

'지상낙원 발언 없었다' 확인... "의도가 있었다"는 종편의 관심법

 1월 29일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의 옥중편지 세 번째
1월 29일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의 옥중편지 세 번째 ⓒ 황선

사실 이런 류의 일은 친일과 부정부패라는 본모습을 '반공반북'이라는 가면으로 가려야만 하는 대한민국에선 흔하디 흔한 풍경이었다. 1994년에 박홍이란 인물이 연일 언론에 나와 '마녀사냥'을 진두지휘했는데, 일찍이 1991년 소위 분신정국 때도 별 근거 없이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는 반생명적인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계시록적인 발언으로 희대의 유서대필 사건을 만들어낸 신부였다.

1994년엔 주사파가 각계에 침투해 있으며 특히 대학가에 조직이 포진해 있다고 기염을 토했는데, 놀랍게도 그가 그린 조직표는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노맹 뒤에는 사로청(북한의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확언은 수구언론에게 환영받으며 확대재생산 되었고, 사로청 책임자 격은 되어야 알 수 있는 그의 발언으로 인해 공안당국은 미지의 적을 소탕하기 위해 그렇게 바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역시 성직자였기 때문인지 그의 이런 주장엔 증거가 없었고 일종의 믿음만이 존재했다. 그의 '증거 없음'이 마음에 걸렸는지, 당시 <조선일보>의 논객은 주사파 배후와 관련된 박홍의 발언을 놓고, "일부 인사는 증거를 대라고 추궁"하는데 이는 "망발"이며 "천치가 아닌 한 누구도 물증을 고스란히 모두 남겨놓으면서 혁명운동을 꾸미지는 않는다"고 두둔하기까지 했다.

다시 통일토크쇼와 관련해 TV조선을 비롯한 종편과 공안당국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 했다며 대서특필하다가 지상낙원 발언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 표현만 없었을 뿐 의도는 그러했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세련된 방식으로 활동하고 발언하는 것도 '위장전술'이라 문제라는 투다. 짱돌을 던지면 그 자체로 불법이라 문제고, 토크쇼를 하고 시를 쓰는 것은 위장전술이라 문제라니, 나 같은 사람은 숨을 쉬는 것도 죄가 되는 세상 아닌가.

2015년 민주공화국에서 짙은 색안경을 덮어쓴 자칭 독심술가들이 방송을 하고 율사 노릇을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최근 국제 앰네스티는 한국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남용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러한 흐름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국가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비례적이고 필수적인 경우에 한해야 한다'고 강권했는데, 해외동포의 북한 여행담이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거라는 일부의 대북공포증이나 과대망상증이야말로 우리 사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아닌가 한다.

2015년 1월 29일 황선


#황선#국가보안법#통일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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