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인천 공항점 버거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버거킹으로의 첫 출근 날이, 아니 인천 공항으로의 첫 출근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던 나는 마치 어딘가로 떠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첫날의 설렘은 햄버거를 만들고, 주문을 받고, 감자를 튀기고, 걸레질을 하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 일은 고됐지만, 버거킹으로의 출근이, 아니 인천 공항으로의 출근이 싫은 적은 없었다. 아마도, 공항이란 공간의 특수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공항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나는 마치 거대한 마법 양탄자에 올라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공항 자체가 붕 뜬 공간처럼 여겨졌다. 붕 뜬 공간에 올라탄 사람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붕 떠 있는 듯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은 흔히 보던 표정과는 달랐다. 조금 더 극적이었고 조금 더 생생했다. 들뜬 사람들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들떠있는 듯 보였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의 표정도 평소보다 더 지친 듯 보였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의 표정에도 더 큰 기대, 더 큰 설렘, 더 큰 불안, 더 큰 무감각 같은 것들이 서려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햄버거를 내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다른 그 어느 곳도 아닌 공항에서 먹는 햄버거는 분명 그들에게 더 극적으로 다가갈 것이 분명했다. 더 맛있거나, 더 형편없거나.
특히 좋았던 시간이 있었다. 아침 7시에 개장을 해야 할 때는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에서 나와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다. 옷을 갈아있고 나오면 때로는 아주 운이 좋게도 개장까지 조금의 시간이 남아있곤 했다. 이럴 때면 함께 일하던 친구들과 적막한 2층 통로의 긴 의자에 각기 누워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의 기분이란. 나 홀로 붕 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란.
심각한 허리후유증을 남겼던 이때의 경험을 나는 아직까지 아주 기분 좋게 추억한다. 추억까지 할 정도로 공항이 좋았던 이유는 이랬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몇 개월 나는 언제나 오래된 것들하고만 지지고 볶고 싸우곤 했다. 반면, 공항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것들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내게 신경을 쓰지도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나 역시 아무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공항은 이런 공간이었다. 서로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래서 누군가에겐 해방구가 되는 공간.
인류학자 마크 오제는 그래서 공항을 '비장소'(nonplace)라고 칭했다. 머무는 곳이 아닌 떠나기 위해 있는 곳, 즉 통과하기 위해 설계된 곳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비장소'에 알랭 드 보통이 컴퓨터를 들고 침투한다. 공항에서 먹고 자며 그 공간을 해부하기 위해서.
알랭 드 보통은 어느 날 런던에 위치한 히드로 공항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보통을 히드로 공항의 첫 상주 작가로 초청하고 싶다고 말을 꺼낸 관계자는 보통더러 일주일간 공항에 머물며 "공항 시설의 전체적 느낌을 살핀 뒤", 공항 한복판에 책상을 갖다 놓고는 그곳에서 "탑승객과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을 써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제안한다. 보통은 제안을 받아들인다.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이랬다.
혼돈과 불규칙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터미널은 우아함과 논리가 지배하는 훌륭하고 흥미로운 피난처로 보인다. 공항 터미널은 현대 문화의 상상력이 넘쳐나는 중심이다.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 – 테크놀로지에 대한 우리의 신앙에서부터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호 관계성에서부터 여행을 로맨틱하게 대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 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당연히 가야 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보통은 히드로 공항을 하나에서 열까지 샅샅이 뒤질 수 있는 특권을 얻는다. 그는 이러한 특권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을까. 그는 구석구석 깊이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장면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것들을 속속들이 이해해보려 노력했고 파헤쳐보려 시도했다. 룸서비스 메뉴판에 적힌 메뉴명에서부터, 30년째 공항에서 구두를 닦고 있다는 구두 장인까지 그는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살폈다. 이것이 그가 일주일 동안 공항에서 한 일의 전부였다.
그가 세심하게 살핀 사람으로는 체크인 구역에서 일을 하고 있던 다이앤 네빌도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은 그녀를 주시했다. 그녀를 주시하며, 그녀와 회사와의 관계도 주시했다. 회사는 분명 다이앤이 기분 좋게 일하기를 바랄 것이다. 직원이 기분이 좋아야 고객들의 평가가 좋아지고 그래야 이익이 날 테니까 말이다.
다양한 동기부여 방식으로 직원의 사기를 진작하려는 회사가 어디 히드로 공항뿐일까. 대부분 회사는 직원을 살살 달래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한다. 직원을 활짝 웃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회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려고 들 것이다.
문제는, 회사가 직원을 살살 달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결국 직원의 친절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려면 실제로는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약간의 호의"가 베풀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아무리 용을 쓴다 한들 회사는 직원에게 억지 호의를 강요할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인간애'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한 인간의 고유한 특질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타인에 대한 호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보통은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말한다. 호의는 "25년 전 체셔의 한 집, 두 부모가 자비와 유머로 미래의 직원을 기르던 집을 지배하던 사랑의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통은 고객을 향해 활짝 웃던 다이앤 네빌이라는 직원을 세심히 들여다본 끝에 '가족의 화목'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책은 계속 이런 식이다.
비행기를 놓치고는 미친 듯 화를 내는 한 일본인을 보고는 "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는 세네카의 명제를 떠올리고, 조그마한 아들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쓰러질 듯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중년의 사내를 보고는 이혼의 단상을 논하고, 서른여덟 살인 데이비드와 서른다섯 살인 그의 부인 루이즈가 아테네로 향하는 체크인 줄에 서서 서로를 얼마나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상상하며 결혼의 현실을 까발린다.
쉴 새 없이 마주치는 여행자를 바라보던 드 보통은 '우리는 왜 여행하는지'에 관해 생각하기에 이른다. 왜 사람들은 떠나갔다가 돌아오는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집에 도착한 그들은 어떤 느낌을 받길 바라는가.
갑자기 고향이 다른 어디보다 낯설게 느껴진다. 이제까지 돌아다녔던 다른 땅에 의해서 세세한 모든 것들이 상대화되었기 때문이다. 방금 여행지에서 돌아온 여행자는 고향에서, 집에서 낯선 느낌을 받을 것이다. 평범하기만 하던 일상은 갑자기 다른 빛을 뿜을 것이다. 낯선 일상은 그들의 관심을 재촉할 것이고, 그들은 이에 기꺼이 응답하며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주시하고 다시금 일상에 생생함을 부여할 것이다. 당분간은 일상이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런 효과를 보기 위해 우리는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공항에서의 알랭 드 보통도 지금 막 고향에 도착한 여행자 같았다. 그 역시 바라보고 들여다보고 세심하게 관찰하는 행위를 통해 사물에 생생함을 부여했다. 나는 그가 왜 공항 관계자의 제안을 승낙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려던 것 아니었을까. 지금 바로 여행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너무 익숙해 스쳐 지나가기만 하던 것들 앞에 다시금 서보는 것. 그것들을 주시하고 세밀하게 관찰해 보는 것. 낯설게 보는 것. 생생함을 얻는 것. 떠나갔다 돌아온 사람처럼 말이다.
일상이 지루한 이유는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고, 관심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만 해서 마냥 지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했다. "좀더 상상력을 발휘하고 관심을 기울여 자신들의 환경을 살펴"보라고. 그의 말처럼 일상의 여행자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상을 버틸 가장 유용한 방법일지도.
덧붙이는 글 | <공항에서 일주일을>(알랭 드 보통/청미래/2009년 12월 28일/10,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