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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 천준아 편집장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 천준아 편집장 ⓒ 남기인

혼수로 농(籠)을 해가도 시원찮을 나이, 집에선 짜내야 할 농(膿)이 된 지 오래. 이런 농(濃)익은 노처녀들에게 건네는 농(弄)담 같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노처녀 전용잡지인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2012년 7월 창간호 발행, 아래 '농'). 언제부턴가 명절 때면 아예 해외로 피신을 가버리는 사촌언니에게, 비행기 안에서 읽으라고 강력 추천해주고 싶은 잡지다.

하지만 막상 <농>의 편집장은 노처녀를 탈피한 'NO처녀', 천준아(39)씨다. 편집장의 배신으로 노처녀 잡지가 종말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독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꿋꿋이 3호를 준비 중이다. 결혼을 하고서도 노처녀들의 삶이 여전히 궁금하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지난 1월 23일 서울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들어봤다.

- <농>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려요.
"일단 노처녀 잡지고요. 농의 네 가지 의미를 담아서 농담처럼 가볍게 노처녀의 이야기를 하는 거죠. 노처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한 매체가 딱히 없어요. 기성 패션잡지들은 대부분 골드미스를 타깃으로 하다 보니, 일반 노처녀들이 보면 괴리감이 너무 많이 느껴지거든요. 붕 떠 있는 얘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농>에는 일상적인 우리의 얘기를 많이 담고 싶었어요."

-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이라는 이름도 직접 생각하신 건가요?
"네. 원래 창간호 때는 'July Come She Will(줄라이 컴 쉬 윌, 7월이면 그녀가 돌아올 거야)'이라는 제목을 썼어요. 노처녀라는 타깃층 자체가 앞에 내세우기 좀 부담스러웠어요. 표지부터 대놓고 노처녀라고 쓰면 거부감이 들거나, 이 잡지를 직접 사서 볼 때 창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애매모호한 제목을 붙였어요.

제가 <April Come She Wil>(에이프릴 컴 쉬 윌, 4월이면 그녀가 돌아올 거야)'이라는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4월(April)을 창간호 나올 당시인 7월(July)로 살짝 바꾼 거죠. 그렇게 지었는데 사람들이 이름을 들어도 기억을 못하는 거예요. 너무 어려웠는지 엉망으로 조합하더라고요. 또 안의 내용을 훑어봐야만 노처녀 잡지라는 걸 알게 되니까, 1호부터는 직접적으로 노처녀 잡지라는 걸 어필해보자는 의미로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을 쓰게 됐어요."

- 취재 과정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취재원이나, 사연이 있으세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거라기보다는 애착이 가는 원고는 있어요. 1호에 보면 심리상담가와 결혼·연애 능력시험을 만드신 작가 분을 인터뷰한 내용이 있어요. 그 작가 분이 시험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노처녀 열 명을 모아 직접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된 건데요.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예쁘고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자존감이 되게 낮다는 거예요.

작가 분이 그 이유를 통찰해보니까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스펙을 중시하는 무리 속에 있다 보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대요. 내가 아무리 서울대에서 1등을 한다고 해도 하버드생과 비교하면 나는 1등이 아닌 거고. 자꾸 타인과 비교를 하게 되니까 본인은 점점 더 작아진다는 거죠. 그런 부분이 크게 공감이 가더라고요."

"패션잡지는 골드미스만 타겟... 일반 노처녀들이 보면 괴리감"

- 집필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세요?
"특별히 큰 어려움은 없는데, 가끔 좀 벅차기도 해요. 대부분 인터뷰를 저 혼자 다하고 있거든요. 2호 같은 경우는 인터뷰가 너무 많아서 친구 사촌동생한테 녹취 알바를 시켰어요. 좌담회 같은 것도 보통 다섯 시간씩 하다보니까 너무 길거든요. 그게 끝이 아니라, 훈남 셰프 인터뷰, 어르신 인터뷰 등 인터뷰가 많아서 2호 같은 경우는 특히 좀 힘들었어요. 또 1·2호에서 좀 더 질렀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고민도 있어요. 시원스럽게 확확 지르는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몸을 사린 것 같은 내용들이 많아요."

- 지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좀 더 수위를 높이시겠다는 얘기?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제목 같은 것만 봐도 너무 착해요! 예를 들어 '남자 얼굴 뜯어먹고 살고 싶어요' 이것도 제목이 되게 착하잖아요. 처음의 원고보다 여과를 많이 거친 건데 좀 더 나갔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나 못생긴 남자 진짜 혐오스럽다, 너무 싫다!' 이런 식으로 질러야 하는데 착한 느낌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보니 그런 게 아쉬워요.

'July Come She Will' 때는 더 도발적으로 하려고도 했어요. '그 많던 괜찮은 남자들은 누가 다 먹었을까'를 밝혀내는 기획이었죠. 예를 들어 '키가 180cm 이상이고 직업이 탄탄한 남자는 대체적으로 어느 지역에 분포해 있더라', 뭐 이런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역시 구체적인 통계자료가 없다보니 제대로 진행하지는 못했고요. 그 당시에는 도발적인 내용에 대해 더더욱 조심스러웠어요. 혹시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3호에는 좀 더 지르면서 접근해보려고요."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 2호 표지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 2호 표지 ⓒ 노처녀에게 건네는 농

- 노처녀의 기준은 뭘까요? 단순히 나이에서만 비롯되는 걸까요?
"글쎄요. 나이라고 해도 시대마다 달랐으니까요. 조선시대에는 20살이 노처녀의 기준이었어요. 조선시대에는 어떤 처녀가 20살이 넘으면 정부가 나서서 이웃마을의 노총각을 이어주는 재밌는 제도가 있었대요. 창간호 때 잠깐 나온 내용이긴 한데, 조선시대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서 노처녀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어요.(웃음)

노처녀의 기준은 예전만 해도 한 28살 정도였다가, 최근에는 또 30대 중후반 정도로 바뀐 것 같아요. 사실 나이보다도 자기 자신의 문제가 클 수도 있어요. 27살인데도 자기가 노처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봤거든요. 빨리 결혼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으니 자기도 노처녀래요. 안타깝죠. 노처녀라고 규정 짓는 건, 개인 내면의 문제이기도 해요."

- 노처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뭔가요?
"창간호 준비할 때, 노처녀의 제일 큰 고민거리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어요. 으레 연애나 결혼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냥 '일'이었어요.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커리어와 이직 그런 고민이 제일 많았어요. 저도 되게 놀랐어요.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큰 것 같아요. 최근엔 재정적인 것들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독자 분들도 많더라고요. 돈을 어떻게 버는 것부터 시작해서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까지. 막상 저도 37살까지 거둬 먹이는 사람이 없고 혼자 벌어 혼자 쓰는 거니까 아낌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와, 그래도 저 나이 정도 됐으니 모아둔 돈이 꽤 많겠다' 생각하지만 실상은 안 그래요. 40대 언니들 봐도 옷 사고, 신발 사느라 진짜 결혼자금조차 없거든요. 남자들도 보면 황당하겠죠.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당장 결혼은 나와 거리가 멀고, 안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건 부차적인 거죠. 아, 덧붙여서 3호에는 노총각 얘기도 많이 실을 예정이에요. 보니까 노처녀들이 '노처녀들 수다 떠는 얘기'를 별로 안 좋아해. 남자를 많이 넣어야겠어요."

"노처녀 기로에서 마음이 혼란스러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 잡지에서도 화두를 던지셨는데, 과연 결혼만이 노처녀의 엔딩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 잡지를 만들 때는 미(未)혼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후에는 비(非)혼까지 확장했어요. 이건 사실 각자 선택의 문제인데, 일단 저는 결혼을 선택잖아요.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결혼을 안 한 사람들의 삶이 궁금한 거예요. 사실 우리 윗세대는 결혼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주의가 대부분이라 좋은 선례가 별로 없었어요. 만약 노처녀, 노총각의 좋은 선례가 있었더라면 '아,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사람이 많았겠죠.

<농>이 그런 것들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이 되면 좋겠어요. 좋은 선례들을 소개해주고 싶기도 하고, 궁금한 거죠. 저도 결혼을 안 했더라면 40대, 50대, 60대 때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너무 궁금한 걸요. 꼭 결혼만이 노처녀의 엔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 <농>을 통해 독자가 꼭 얻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독자 리뷰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중 가장 인상 깊던 리뷰가 '내 마음 속 잔 감정이 정리됐다' 하는 내용이었어요. 마음이 되게 복잡하셨나봐. 또 다른 분은 '나는 모자란 인간도, 잘못된 인간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결혼할 상태가 아닌 것뿐. 이걸 확인할 증거가 돼줬다' 하는 리뷰를 남겨주셨더라고요. <농>이 노처녀의 기로에서 마음이 혼란스러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것만으로도 때때로 위안이 되기도 하니까요."

- 잡지 말고, 노처녀들을 위한 다른 사업은 어떠세요?
"노처녀, 노총각들, 싱글들을 위한 공간을 생각하고 있긴 해요. 근데 자본이 없다보니 어떤 식으로 할지는 확실히 모르겠고요. 일단은 잡지 때문에 너무 바빠요."

- 마지막으로 노처녀, 노총각들에게 한마디?
"대부분의 노총각, 노처녀들이 자기 기준을 딱 세워놓고 거기에 상대를 끼워 맞추려고 해요. 자기의 편견이나 전제가 딱 하나 있고, 그 다음에 자기만의 독자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분별하지만, 막상 고른 사람은 적합한 사람이 아닌 거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는 거예요.

가령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노총각이 있다고 해봐요. 실제로 우리 포토그래퍼가 그랬는데. 일단 기본 전제가 '요즘 같은 세상에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실 사람은 없다'예요. 그러면서 옷 입는 스타일이나 외모를 보고 '착하게 생겼네, 모시고 살 것같이 생겼네' 판단하면 딱히 자기 취향이 아니어도 그냥 사귀어보는 거죠. 근데 막상 그 여자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 만한 스타일이 아니고. 이게 또 반복돼요.

좀 주제 넘은 얘기일 수도 있지만, 연애 입장에서만 얘기를 하자면… 상대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자기 위주에서 남을 재단하고 판단해버리는 거죠. 우리 막 20대에 소개팅 할 때 보면, 만약에 내가 음식을 소리 내며 먹는 사람을 싫어하는데 그 남자가 그렇게 먹는 걸 보면 바로 안 만나잖아요. 어떤 기회조차 주지 않고요. 조금만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건 어떨지. 노처녀들에게 그런 자세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노처녀#노처녀에게 건네는 농#노처녀잡지#천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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