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말 현직 동료교사 18명과 함께 전주지법 2심 재판정에 섰다. 수년 전, 옛 민주노동당에 당우회원으로 가입해 매달 5천~1만 원 가량씩 모두 18만 원의 소액 후원금을 낸 혐의였다. 검찰은 교사의 정치중립 의무에 비추어볼 때 당우회원으로 가입해 소액의 후원금을 낸 것이 '국가공무원법'이 규정한 정당 가입 금지와 정치자금 기부 금지에 위반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전국적으로 교사·공무원 2천여 명이 기소됐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당시 낸 후원금은 비록 한시적이었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합법적인 기부금이었다. 연말정산 과정에서 세금공제 대상 항목으로 처리된 것이 증거다. 검찰의 기소권 남용과 교사·공무원 노동조합을 향한 표적수사 등 정치적 논란이 격렬하게 일어난 배경이다.
2심 재판 결과는 선고유예로 나왔다. 대다수 다른 교사들 역시 비슷했다. 정당 가입 혐의는 1심에서 면소(형사소송에서 공소권이 없어져 기소를 면하는 일) 판결로 나왔다. 햇수로 5년을 끌어온 결과 치고는 전체적으로 너무 허무(?)했다. 후원 활동은 구조적으로 위법성 인지 여부를 놓고 다툴 대상이 아니었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진 소액의 기부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무죄가 아니었지만 2심 판결 결과는 상식에 근접했다.
지난 일을 길게 늘여놓은 이유는 교사로서 재판 과정에서 겪은 이런저런 소회를 말하고 싶어서였다. 2심 검사가 항소 요지를 설명하는 자리를 떠올려본다. 검사는 이례적으로 원고까지 준비해왔다. 그는 교사가 교육에 전념하지 않고 법으로 엄금한 정치활동에 관여했다며 법의 이름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국법 문란"이라는 무시무시한 말까지 토해냈다.
검사는 고등학교 시절 교육에 전념하는 자세로 자신을 가르쳤다는 '스승'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멸감을 강하게 느꼈다. 검사의 말은 내게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라는 겁박으로 들렸다. "너희 따위가 교사냐"라는 비난처럼 다가왔다.
재판정에 선 교사들은 3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장광설을 토해낸 검사는 많아 봐야 30대 중반을 넘지 않아 보였다. 교사가 50대 중·후반을 넘어가면 원로급이 된다. 그분들은 자신을 매섭게 꾸짖는 젊은 검사를 어떻게 보았을까.
교사이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나는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살고 있다. 원래는 연구직을 꿈꾸었다. 책과 논문에 파묻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싶었다. 조용한 도서관이나 연구실에 들어앉아 묵은 종이 냄새를 맡으며 책을 뒤적이고 글을 쓰는 일이 행복할 것 같았다.
때마침 대학원 공부를 하던 곳이 연구의 '유토피아'였다. 남향의 넉넉한 산자락 안에 들어선 부지와 고풍스러운 한옥 연구동들. 넓은 잔디밭과 고목들이 어우러진 교정 여기저기에는 시나브로 걸으며 깊이 사색에 빠진 연구자들이 종종 있었다. 밤새워 책을 읽으며 열망을 키워갔다. 몇 년 더 버텼더라면 바람이 이뤄졌을지 모른다.
서른 즈음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가난했다. 전문 연구자가 되겠다며 대학원 공부를 하는 아들 자식이 당신들에게는 위태로웠으리라. 외면하기 힘들었다. 직업적으로 안정적인 연구자가 되는 길도 확실치 않았다. 학계에서 인정받을 만한 실력이 검증되기 전이었고, 명문 학벌 출신이 아니었다. 모든 게 두루 불투명했다. 더는 버틸 재간과 의지와 능력이 없었다.
얄궂은 운명의 예언을 따르듯 나는 교사가 되었다. 그렇다. 그것은 운명 같은 것이었다. 초중고를 다니면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교사로 보기 힘든 '이상한' 분들이 훨씬 많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만의 스승들 덕분에 교사로 살아가는 길이 그다지 나쁘지 않겠다 여겼다. 훗날을 예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을까. 1980년대 후반, 시위대 뒤꽁무니를 뻔질나게 쫓아다니면서도 교직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눈치껏 학점을 '관리'했다.
교사로 살아온 지 15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기대감이 컸다. 교실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육 철학을 성실히 실천하다보면 아이들로부터 스승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뜻이 맞는 선생님들과 많은 일들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착각이었다. 교직사회는 내가 꿈꾸던 곳과 달랐다. 교사들은 각자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다. 동료 교사와 일을 함께 하는 것은 어려웠다. 연대와 협력은 언감생심이었다. 조그만 교무실에 승진에 목마른 야심만만한 교사들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이야말로 내겐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들은 왜 교사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나는 거대한 교육 시스템의 부품이었다. 교육과정, 교과서, 교사용지도서라는 합법적인 삼중 압박 장치와 입시지도 명목의 문제집 풀기라는 비합법적인 교육활동 사이에 낀 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권한은 미약하고 책무는 강력했다.
'불온'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입과 손발을 단단히 묶는 장치들도 정교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정치중립 의무, 직무전념 의무, 성실과 복종 의무 등이 그것이었다. 국민이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교사이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교사 직업만족도 '90위'의 이면에 놓인 어두운 현실
그렇게 살려고 힘들게 교사가 되지는 않았다. 교사가 되는 길은 어렵다. 교원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인 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의 입시 성적은 매해 상위권에 놓인다. 교원자격증을 주는 일반대학의 교직과정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
각 시도교육청이 주관하는 교원임용시험에는 '고시'라는 말이 붙어 있다. 대학들은 자교 출신 학생들의 임용고시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임용고시 준비반을 따로 만든다. 외부 유명 강사를 초빙해 특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도 많다.
교사는 중고등학생들의 장래희망 조사에서 수년간 최상 순위를 유지해오고 있다.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교사는 정년이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철밥통' 직업군 중 하나다. 관점에 따라 상이한 평가가 없지 않으나 사회적인 평판, 급여 수준 따위가 그다지 나쁘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그 결과 교직 입직 관문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일까. 교사들의 직업만족도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2012년 한국고용정보원이 2년간 우리나라 759개 직업의 현직 종사자 2만6천여 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평판, 정년보장, 발전가능성, 시간적 여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직업만족도를 주관적으로 평가,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교원 신분에 속하는 초등학교 교장이 1위, 중·고등학교 교장이 49위로 나타났다. 평교사는 90위였다. 낮은 순위로 보이지만 조사 대상 직업 수가 759개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의문이다. 학교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교장들은 그렇다 치자. 타 직업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순위에 있는 평교사들이 자신의 직업에 진짜 만족하고 있을까. 사회학자 엄기호가 탁월하게 지적했듯이 교사들은 교무실에서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섬'처럼 침묵 속에 살아간다. 교사 공동체는 동료성의 부재 상태에 놓여 있다.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책무를 떠안지 않으려는 교사들은 냉소주의와 개인주의의 장막 뒤로 숨는다.
정규직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 승진파와 비승진파, 젊은 교사와 원로 교사 따위로 나뉜 교직 사회에서 진정한 교사 공동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눈치 보기와 무한 경쟁, 생존을 위한 각자도생이 교사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교사 직업만족도 '90위'의 이면에 놓인 어두운 현실들이 아닐까.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최근 우리 시대의 교사들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뉴스가 나왔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오이시디(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학교 교사 10만5천여 명을 조사한 결과를 분석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사 20.1퍼센트가 "교사가 된 걸 후회한다"라고 답했다. 오이시디 평균이 9.5퍼센트이니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전체 34개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낮다.
"다시 직업을 택한다면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답도 36.6퍼센트로 나왔다. 10명 가운데 4명 꼴이다. 오이시디 평균은 22.4퍼센트였는데,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전체 국가 중 3위를 차지했다. 교직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저마다 고유의 색깔을 지닌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사는 일이 즐겁다. 다시 태어나거나 직업을 새로 골라야 한다고 해도 교사가 될 것이다. 미완의 꿈인 연구직보다 후순위이긴 하지만 말이다. 교사가 연구직보다 여전히 후순위에 있는 까닭은 위에서 밝힌 바 그대로다. 안타까운 점은 교사로 살아가는 일에서 얻는 보람을 갈수록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교사 개개인의 열정과 능력 부족 탓도 있겠지만, 더 큰 요인은 제도와 시스템이라고 본다. 교사들은 지금 교원성과급제와 학교성과급제, 교원평가제 등 정량적 성과 평정 시스템에 강하게 속박되어 있다. 교실 붕괴와 교권 침해라는 말들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질주하는 학생들은 유례없이 교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렇다고 맘놓고 하소연할 경로나 장이 많은 것도 아니다. 많은 교사들이 극심한 감정노동 속에서 하릴없이 시들어가고 있다.
미국의 영감 넘치는 교육자 파커 파머는 교사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강조했다. 두려움을 떨친 채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다만 전제가 필요하다. 교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조적인 배경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말이다. 교사이자 아동문학가인 이오덕은 책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정이야말로 교육을 잘못되게 하는 밑바탕이다. 정치가 잘 안 될 때 백성 쪽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하는 사람 쪽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정치를 바로잡도록 해야 희망이 있듯이, 교육도 아이들이 잘못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잘못 가르친다고 보아야 하고, 그 가르치는 사람을 움직이는 행정이 잘못한다고 보아야 옳다.(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