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펭귄으로 상징되는 협력이 어떻게 가혹한 통제와 억압, '보이지 않는 손'으로 상징되는 개인의 이기심(리바이어던)을 이겨내는지에 대한 이론과 사례를 정리한 것이다. 사회적경제를 연구, 정책화하는 필자로서는 '협력하면 득이 되는' 시스템을 고민하던 차에 반갑게 읽었다.
우리는 흔히 협력이 중요하다고 당위적으로 선언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오래 머문다. 무엇을 할지 그 다음 단계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책을 만들 때도 개념적인 수요조사는 하지만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사람들은 어떠한 동기에 의해 행동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었는데 다행히 이 책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을 협력하게 하려면 전체적인 공평성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사람들은 그 시스템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내가 공정하게 처우 받지 못한다고 여기면 두세 번 참여하다 그만두게 된다. 많은 경우 그렇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봤자 엉뚱한 사람들이 그 혜택을 가져간다면 누가 그 자원봉사를 지속할 것인가? 백번 양보해서 내가 직접적인 수혜자가 아니라 해도 심리적인 만족 정도는 느껴야 한다. 그래서 규범은 예측 가능해야 하고 호의를 끌어내는 기제로 작동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공평한 합의를 통해 스스로 배신을 규제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협력을 설계할 때 당연히 자발적인 것을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자발적인 지불에는 내가 참여함을 통해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일종의 정책효능감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려면 당연히 정책설계가 시민참여형으로 가야할 수밖에 없다. 최근 실험되고 있는 참여예산제도, 정책생산을 위한 오픈테이블 등이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 일을 정당화하게 되고 가치를 공유하게 되며 향후 협력과정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정착된 협력은 연습할수록 강화된다고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조직을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협업을 한다는 것은 참여의 인센티브가 배신의 그것보다 클 때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협업을 유지하려면 흔히 배신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처벌도 자발적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명시적인 룰이 필요하다.
엘리너 오스트롬이 <공유의 비극을 넘어>라는 책을 통해 공유자원관리를 위해 공동체 자치규범을 만든 사례를 연구한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우리가 표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것도 내가 먼저 왔다는 가장 간편한 표시를 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렇게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보편적인 약속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암묵적인 규제를 통해 배신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훈련을 통해 '무엇이 옳고, 공평하고, 적절한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책에서 밝히듯 아무리 좋은 일도 보상과 처벌로 의해 제어당한다고 느끼면 자율성이 줄어드는 문제도 있다.
저자는 여러 경험들을 정리하면서 '기여의 모듈화'를 제안하고 있다. 즉 사람들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손쉽게 기여할 수 있도록 커다란 일도 일종의 모듈단위로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정책을 제안할 때도 이런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참여하게 만들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이고 면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설계하게 하고 큰 틀에서 그것을 어떻게 모아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사업을 추진할 때 적절한 급여를 통해 일이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그 인센티브가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까지 말이다. 그리고 기여에 대해 감정적인 피드백도 주어야 한다. 일을 추진할 때는 자율성, 정서적 참여, 공평함의 삼박자를 맞춰가야 한다.
또 하나 힌트를 얻은 것은 지역사회 행위자들이 동기가 다양하고 욕구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정말 반성이 된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는지? 아니면 공급자의 입장에서 편한 것만 찾은 것이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의 욕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은 전적으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신뢰가 필요하다. 자발적인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문제해결의 동아리를 만들어보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야 한다. 필자도 늘 현장에서 많이 배우는데 이러한 맥락이 아니었나 싶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금전적인 인센티브가 없더라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열중하는 일들을 보게 된다. 책에서 예를 들듯이 집단지성의 산물 그 자체인 위키피디아가 그렇다. 최근에는 신뢰도에 있어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버금가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 성공비결이 무엇일까? 잘 살펴보면 온라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이 협력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중세의 성(城)을 배경으로 인터넷에 동시 접속한 이용자들이 군주, 기사, 요정, 마법사 중 하나의 역할을 맡아 가상공간에서 다른 이용자와 대화를 나누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게임(네이버지식백과 인용)인 리니지를 봐도 얼마나 많은 폐인들을 양산하고 있는가. 그 자발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메커니즘을 연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협력은 최소한 즐거워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지 않을까?
저자는 책을 마무리 하며 협력은 다음과 같은 키워드로 촉진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의사소통 ▲ 틀 적합성과 진정성 ▲ 공감능력과 연대감 ▲ 공평성, 도덕성, 사회적 규범으로 도덕적 시스템 구축 ▲ 보상과 처벌 ▲ 평판, 투명성, 상호호혜 ▲ 다양성을 위한 설계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사회연대경제 영역의 확장과 생태계 형성을 위해 어떠한 일들을 해나가고 있는가? 혹시 부족한 점은 없는가? 곱씹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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