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살았어요. 먹고 살기 힘들었죠. 끼니 때우기 힘들 정도로요. 그래서 귀농했어요. 농사지어서 밥이라도 배부르게 먹으려고요."지난 1월 28일 만난 안복자(60·전남 담양군 창평면)씨의 얘기다.
안씨는 남편의 고향인 담양으로 귀농했다. 하지만 내 땅 한 뼘이 없었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벼를 재배하고 참깨도 심었다. 기대했던 대로 밥은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요리 공부를 해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기회가 되면 무엇이든 해볼 심산이었다.
"애들이 커 가는데 힘들더라고요. 먹는 건 문제가 없었는데, 교육비 부담이 컸어요. 농사의 부가가치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업으로 폐백음식을 시작했죠."안씨가 농산물 가공에 뛰어든 계기다.
안씨는 폐백음식 분야의 최고를 꿈꿨다. 어릴 적 친정어머니가 만들던 그 음식을 떠올렸다. 친정 어머니는 지금도 일을 같이 하고 있다. 안씨는 시행착오도 겪으면서도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그 결과 폐백음식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즈음 담양군에서 한과를 권유했다. 폐백음식과 같이 하면 괜찮겠다 싶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한과 집을 다 찾아 다녔다. 자신만의 비법을 터득했다. 이렇게 한과를 만들기 시작한 게 지난 2001년이었다.
안씨는 옛날 방식 그대로 한과를 빚었다. 재료도 자신이 직접 지은 쌀을 썼다. 정성을 듬뿍 담았다. 강정과 약과, 유과도 생산했다. 김부각도 만들었다. 한결 같이 깊은 맛이 우러났다. 품위도 단아했다. 토종의 재료에다 전통의 손맛이 온전히 스며든 덕이었다.
한 번 맛을 본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찾았다. 입소문을 타고 성장을 거듭했다. 주변 농가에서도 실속 있는 판로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안 씨는 다른 곳보다 더 높은 값에 농산물을 많이 사주었다.
안씨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몸집을 부풀렸다. 내실도 다졌다. 농림부로부터 전통식품 품질인증을 받았다. 신지식 농업인장도 받았다. 유기가공식품 인증을 받고 지난해엔 식품 명인으로 지정됐다.
"찹쌀을 물에 담가서 10일 동안 발효시켜서 만든 과자가 한과예요. 떡을 만들어서 부풀린 거죠. 완전한 발효식품이에요. 그래서 질리지 않아요. 깊은 맛도 우러나고요. 이게 세계 어느 나라의 과자와 승부를 해도 이길 수 있는 경쟁력입니다."
안씨는 이 한과로 수출시장까지 개척했다. 2005년 처음으로 미국에 2만5000달러 상당의 한과를 수출했다. 이후 중국, 캐나다,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등으로 발을 넓혀 해마다 10만 달러 안팎을 수출했다. 지난해엔 10개 나라에 15만 달러 어치를 팔았다. 이 공로로 안 씨는 지난해 농산물 수출부문 전남농업인대상을 받았다.
지금은 두 아들(37살, 35살)이 안씨의 가업을 잇고 있다. 한과를 만들어 교육을 시킨 그 아들들이다. 지금은 혼인도 해서 집안일을 돕고 있다. 한과로 키운 든든한 지원군이다.
"큰 욕심 없어요. 한과가 맛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요.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한테 떳떳하게 내놓을 한과를 만들 겁니다. 그게 오늘까지 키워준 고객들에게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고요."먹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짓고, 아이들 교육시키려고 농산물 가공에 뛰어든 안씨의 소박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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