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그건 이중 잠금이 돼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누가 지금 안에 있거나…, 아니면 아침에 나오시면서 가방끈 같은 걸로 건드렸거나요."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지금으로부터 한 달 반 전쯤 토요일 오후 7시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몇 번이고 정확히 눌렀는데도, 도어락은 빨간 불빛을 내며 '삐- 삐-' 위협적인 경고음을 울릴 뿐이었다. 도어락 회사에 전화하니 상담원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이중 잠금 현상"이란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혼자 사는 원룸인데 누군가 안에 있다고? 잘못 건드려서 문이 잠긴 거라고?
'에이 설마….' 기계가 고장 난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건물을 돌아 창문 쪽으로 갔다. 혹시 그쪽에 가면 별 다른 방법이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원룸 오피스텔이지만 밖에서 볼 땐 평범한 일반 빌라다. 집 앞 작은 정원으로 들어서자 이번엔 더 황당한 풍경이 펼쳐졌다. 원룸 창문의 방범창 중 세 개가 끊어져 있었고,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도둑이 들었구나!' 딱 봐도 '도둑이 든 모양새'... 악몽을 꾸다
그때 나는 캄캄한 방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혹시 범인이 아직 안에 있을까, 눈이라도 마주칠까 무서워서다. 황급히 집주인 아주머니와 경찰에 전화했고, 경찰이 들어가 도어락 잠금장치를 풀고 나서야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리저리 튄 유리 파편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커다란 짱돌, 모조리 다 열려 있는 옷장 서랍들…. 빨래건조대도 쓰러져 방 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딱, TV에서 보던 '도둑 든 모양새'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던 내게 한 경찰이 다가와 "혹시 원한 산 적이 있냐"라고 물었다. 범인이 나를 노리고 들어온 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경찰은 "절도나 손괴 사건 피해자들에게 으레 묻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짧은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사회부 기자로 지내오며 만난 수많은 이들이 스쳐지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한까지 살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 "아뇨"라고 답하자 경찰이 '진술서'를 내밀었다. 성명과 주거지, 직업과 도난품 등 항목 옆에 꼼꼼히 내용을 채워 넣었다.
당시 노트북·디지털카메라 등 값 나가는 물건은 모두 내가 직접 가지고 있었다. 원룸 주변엔 마땅한 CCTV도 없는 탓에, 놀라고 무섭긴 했지만 범인이 잡힐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9시 38분,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신고사건 접수번호 2014-015***로 접수되었습니다. 담당자는 서울서대문경찰서 강력팀 OOO이니, 문의사항 있으면 연락주세요." 통상 절도사건 발생시 경찰은 나 같은 피해자에게 진술을 듣고, 동시에 과학수사반에서 현장 감식을 하게 된다. 피해품이 있을 경우 물품 수배 등을 통해 회수절차를 밟게 되는데, 피해자는 절취 당한 때로부터 2년 이내에 피해물품을 산 사람에게서 물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날 이후 나는 약 1주일 동안 밤마다 악몽을 꾸며 잠을 설쳐야 했지만, 어쨌든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것 같았다.
잊고 살던 중 찾아온 '검거' 소식... "생계 어려워져 범행"사건일로부터 한 달여가 지나 사건이 잊힐 즈음인 2월 1일, 전과 같은 번호로 문자가 왔다. "피의자 이동경로를 수사해 교통카드 사용사실을 확인했고, 승·하차지점에서 잠복 수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2월 5일, 이번엔 형사가 전화해 "피의자를 체포했다"라고 알려줬다. 수사 절차는 이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경찰이 피해자들에게 진행상황에 대해 문자와 전화 등으로 알려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지난 16일, 사건을 담당했던 서대문경찰서 강력계 형사와 만났다. 책과 신문 외엔 별로 가져갈 것도 없는 사회초년생 원룸에, 방범창을 끊고 잠겨진 이중창을 깨면서까지 들어와 별 소득(?) 없이 돌아간 범인. 경찰 말대로 정말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아닐지 두려웠지만, 형사는 '우연한 범행'이라며 기자를 안심시켰다.
"한 마디로 전형적인 '생계형 범죄'였어요. 자영업하면서 가족들 데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지난해부터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 됐고 가정에 우환도 겹치면서 범행을 결심한 것 같더라고요."범인은 40대 초반 남성이었다. 형사 말에 의하면 그는 10년 전쯤에도 동일한 전력으로 검거됐다 풀려났는데, 범인 말로는 자신도 과거 비슷한 피해를 당한 게 절도수법을 배운 계기였다고 했단다. 당시 집행유예로 나와 마음을 다잡고 살다가, 지난해 말 생활이 어려워져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그는 지난 반년 남짓 동안 20여 개 집을 털었고, 피해자들 주장에 따르면 피해액은 약 1500만 원이라고 한다.
변변한 CCTV도 없는 상황에서 형사들은 범인을 대체 어떻게 잡은 걸까. 해당 형사는 동료와 함께 근처 CCTV 영상을 약 10시간 넘게 돌려봤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용의자(범죄 혐의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조사 대상인 사람)로 추정되는 사람을 파악하고, 그의 동선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가 주로 가는 장소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체포했다는 것. 이후 경찰서로 끌려온 피의자(혐의가 인정돼 입건된 사람)는 "뉘우치는 기색"으로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고 한다.
담당 형사는 내게 "일하다 보면 제 얼굴을 빤히 보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용의자도 있다"라면서 "이 사람은 이걸 생업으로 해 먹고 사는 '빵(감방)돌이'는 아니었다, 저지른 짓은 벌을 받아야겠지만 앞으로 충분히 갱생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번 경우엔 우연히 기자님 집 근처를 지나가다, 밖에서 보기엔 깨끗한 빌라니까 한 번 들어가 본 것"이라며 "집 창문이 잠겨있어서 고민 했다더라"고 말했다.
"불 꺼진 집, 범행대상 1순위"... 설 연휴 빈집털이 예방하려면 형사는 조사 과정에서 들은 피의자의 말을 내게 전했다. 그의 절도 경험에서 나왔을 실질적 '조언'인 셈이었다. 형사는 또 설 연휴를 앞두고 주의해야 할 빈집털이와 관련해, 유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일단 해가 떨어졌는데 불이 꺼져있으면 (빈집털이 대상) 1순위래요. 또 밖에서 문을 여는데 시간이 걸리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니까, 범행하기가 싫다고 하더라고요. 창문도 밖에서 보면 잠금장치가 돼 있는지 아닌지 거의 다 보이는데, 기자님 집 경우에는 창문이 잠겨있어서 고민을 했대요. 왜냐면 창문을 깨면 소리가 나서 걸릴 가능성이 커지니까. 어쨌든 대부분의 절도는 집 안에 사람이 있으면 안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집을 비우더라도 안에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해두는 게 기본이고요. 두 번째로는 집 주변을 미리 깨끗하게 잘 치워둬야 해요. 용의자들은 나무가 있거나 박스 등이 쌓여있는 칙칙한 골목, 한 마디로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 주로 접근하거든요." 생각해보니 우리 집 앞에 정원에도 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정원은 높이 약 60cm인 작은 문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데, 범인은 이걸 아예 뛰어 넘어간 것이다. 평소 햇볕이 잘 들고 풍경이 예뻐 좋아했던 정원이건만, 이곳이 '밤손님(밤도둑)' 통로로 쓰일 줄은 몰랐다.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다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실제로 경찰 말에 따르면, 절도범이 예상치 못한 경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당황한 나머지 사람을 폭행·협박하는 강도로 돌변하기도 한다고.
참고로 내가 당한 '빈집 절도'는 피해자의 공간에 들어가 절도하는 '침입절도' 중 가장 많은 유형에 속한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 침입절도 발생건수는 전체 대비 약 34.1%, 2012년 35.3%, 2013년 33.9%를 차지했다. 지난해인 2014년에는 전년 발생건수(3만337건)에 비해 약 22% 떨어진 2만3685건이 발생했지만, 여전히 빈집털이는 명절이나 연휴에 기승을 부리는 게 사실이다.
경찰청은 이번 설 연휴를 맞아 '빈집털이 예방요령'을 배포하기도 했다. 여기엔 ▲창문·현관 등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연휴 중 신문전단지 등이 쌓이지 않도록 하며 ▲장기 외출 시에는 TV 예약기능 등을 이용해 인기척이 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적혀 있다. 또 요즘은 페이스북·트위터를 통해서도 동선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니, 집을 비운다는 등 지나치게 자세한 정보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는 것은 자제하는 게 좋다.
생계가 어려워 범행을 저질렀다는 40대 가장. 내겐 떠올리기도 싫은 '피해자'의 경험이었지만 "훔치는 족족 물건을 팔아 생활비로 썼다더라"는 형사 말을 들으니 한편으론 범인이 처한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담당 형사도 "상황이 그를 범행으로 이끈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어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누구나 다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크게 액땜했으니, 이번 한 해에는 운수대통하려나…' 속으로 생각하며 형사와 나누던 대화를 마칠 무렵, 그가 덧붙인 말이 내겐 설 연휴 '작업'을 준비 중일 빈집털이범들에 대한 경고로 들렸다.
"저는 꼭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누구나 다 어려운 상황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고 해서, 모두가 다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계가 힘들어 범죄를 저질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자기변명인 거죠. 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열심히 산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