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들의 낙원 내성천 경북 봉화군과 예천군을 흐르는 '모래의 강' 내성천을 찾는 길은 늘 설렘과 긴장의 연속입니다. 하천의 원형질 아름다움을 만난다는 기쁨도 있지만, 이번에는 그곳에서 또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하는 설렘도 있습니다. 이처럼 내성천은 우리 하천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다양한 동·식물의 보고입니다. 드넓은 모래톱과 맑고 얕은 강물과 풍성한 강변 습지, 울창한 왕버들 군락 등 야생 동·식물들엔 이보다 더 좋은 서식환경이 없는 것이겠지요.
내성천 모래톱에서 늘 만나게 되는 수많은 야생동물의 발자국은 이곳이 바로 야생의 영역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고라니, 너구리, 삵, 수달 같은 야생동물에서부터 백로, 왜가리, 원앙, 수리와 같은 날짐승들까지. 그리고 메뚜기, 참길앞잡이와 같은 곤충들과 흰수마자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있다는 물고기까지. 내성천의 새로운 친구들과 그 흔적을 만나는 재미는 참 쏠쏠합니다. 그것들에서 신의 지문을 느끼기도 합니다.
내성천 친구 중 아주 보기 드문 친구를 만났습니다. 지난 1월 말, 내성천에서 먹황새를 만난 것입니다. 먹빛 황새라는 뜻의 먹황새는 먹색(검은색) 황새로 국내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철새이며, 멸종 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내성천을 찾는 먹황새 소식을 전해 들었고, 녀석이 잠시 스쳐 지나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직접 대면해 오랫동안 관찰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내성천 먹황새와의 만남모래톱을 유유히 활보하는 낯설고도 검붉은 빛깔의 먹황새. 황새도 보기 드문 이 나라에서 먹황새라니요. 먼발치에서 살금살금 따라가면서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합니다. 탐조 망원경인 필드스코프를 꺼내고 천천히 그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볼수록 고고한 이 새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매력을 가졌습니다.
처음 먹황새가 발견된 지점은 이번에 필자가 녀석을 만난 지점보다는 훨씬 상류였다고 합니다. 먹황새의 존재를 먼저 알린 '습지와새들의친구' 자료를 살펴보니 내성천 먹황새에 대해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성천에서는 2009년부터 매년 먹황새가 관찰되고 있어 내성천이 먹황새 정기 도래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망됩니다. 먹황새는 내성천 금강마을에서부터 고평대교에 이르는 구간을 오가며 서식하고 있으며 현재 2~3개체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지금은 먹황새 한 마리만 목격되고 있습니다. 짐작하듯,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 먹황새는 처음에는 금강마을 상류에서 주로 서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완전히 공사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멸종위기종에다가 천연기념물인 녀석의 보호 대책은커녕 녀석의 주된 서식처가 망가진 것입니다.
영주댐 공사로 쫓겨난 먹황새그곳은 영주댐으로 수몰되는 수몰지로 영주댐 공사의 부속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수몰면 위로 새로운 도로를 닦는다고 주변 산의 나무를 잘라내고 사면을 깎아 도로조성 작업에 여념이 없습니다. 댐이 하나 들어서면 댐 공사뿐만 아니라 그 부속공사 또한 이렇게 많습니다. 결국, 담수를 시작하게 되면 그마저도 모두 잠기게 됩니다.
수몰된다는 것은 그 속에 사는 모든 생명이 수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만 이주한다고 문제가 없는 것인가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저 다양한 생명은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지요? 저들의 이주대책도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닌가요? 저들에게도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 지구상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는 인드라망의 세계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연계는 생태계 사슬로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종이 사라진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꿀벌이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꿀벌이라는 종이 사라지면 식량생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과 같이, 종이 하나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비록 인식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떤 생명의 신비가 뚝 끊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공간의 개발이든 신중에 신중히 거듭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물며 우리 하천의 원형을 간직한 내성천은 어떠해야겠습니까? 태고의 신비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생명의 보고인 내성천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주댐 건설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합니다. 비록 댐 건설과 그 부속공사가 다 되어가는 시점이라고 하더라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가치 있는 하천이기 때문입니다.
영주댐이냐, 우리 하천의 원형 보존이냐댐을 가동했을 때 가치와 댐을 허물어 원형 그대로의 내성천을 보존했을 때의 가치를 비교해봐야 합니다. 전국 1만8천 개 댐의 하나일 뿐인 영주댐으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우리 하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일한 하천으로 남을 것이냐를 말입니다.
순천만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흔히 해왔듯 순천만을 매립해 개발하는 것은 내성천에 댐을 짓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천만은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순천시까지 나서서 그곳을 매립하는 대신 보존하고 그를 통해 생태교육과 생태관광 등의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순천만의 모습입니다. 갈대가 장관을 이룬 순천만, 매년 천연기념물 흑두루미가 떼 지어 찾아오는 순천만, 그 흑두루미를 위해서 주변의 전봇대까지 뽑아낼 수 있는 순천시. 그로 인해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이 순천만을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영주댐은 원점에서 다시 재고돼야 합니다.
2009년 이 사업이 시작됐을 때, 내성천에 먹황새가 홀연히 나타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대로 댐이 완공돼 담수가 진행되고, 내성천의 육화 현상이 심화된다면 더 이상 내성천에서 먹황새와 흰수마자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없는 내성천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2015년은 내성천에서 먹황새와 흰수마자가 영원히 자리 잡을 수 있는 그 원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댐을 원합니까? 아니면 먹황새와 흰수마자가 영원한 내성천을 원합니까? 2015년은 그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내성천으로 어서들 달려가 보십시오. 더 늦기 전에.
덧붙이는 글 | 정수근 시민기자는 현재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 인터넷매체 <평화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