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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서울 명동거리는 춘제(春節, 설) 연휴(18~24일)를 맞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붐볐다. 하지만, 거리는 쓰레기투성이라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기자는 지난 14일부터 최근까지 수차례 걸쳐 명동에 다녀왔다. 명동 중심가인 신한은행 명동금융센터점 바로 앞 공중전화 부스 안은 아래 왼쪽 사진처럼 쓰레기통으로 변해 있었다. 시뻘건 양념이 묻은 나무 꼬치부터 음료수 캔, 구겨진 종이박스까지 갖가지 쓰레기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전화기가 놓인 선반 오른쪽엔 커피가 담긴 종이컵과 함께 담배꽁초도 버려져 있었다.

다른 전화부스도 마찬가지다. 바닥과 선반에 쓰레기가 방치돼 있었다. 명동 중심가에 설치된 전화부스 3곳 모두 마찬가지다.

 신한은행 명동금융센터점 앞 공중전화부스(왼쪽), 그 바로 옆 부스(중앙), 유네스코 회관 앞 부스(오른쪽)의 모습.
신한은행 명동금융센터점 앞 공중전화부스(왼쪽), 그 바로 옆 부스(중앙), 유네스코 회관 앞 부스(오른쪽)의 모습. ⓒ 이소영

공중전화 부스뿐만이 아니다. 명동의 미관을 살리기 위해 설치된 화분부터 관광객들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의자,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상징 조형물, 옷가게와 화장품가게 등 매장 앞 진열대까지 어디 하나 깨끗한 곳이 없었다.

화재 시 소방차의 호스를 연결해 건물 내부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소방용 연결송수구 근처, 침수를 막기 위해 빗물받이로 사용돼야 할 하수구 위, 위생이 생명인 음식점 앞 골목조차도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다.

 명동 곳곳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 나무가 심어져 있는 화분, 관광객들이 앉는 의자, 한글을 상징하는 조형물, 의류 매장 진열창 앞, 소방용 연결송수구 근처, 하수구 위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명동 곳곳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 나무가 심어져 있는 화분, 관광객들이 앉는 의자, 한글을 상징하는 조형물, 의류 매장 진열창 앞, 소방용 연결송수구 근처, 하수구 위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 이소영

의류점 직원 김연희(가명·여·30대)씨는 매장 앞 하수구에 버려진 닭꼬치와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치우고 있었다. 김씨는 "경고문구(请勿乱扔垃圾, 者将罚款10万韩币 (约600元人民币).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적발시 과태료가 부과됩니다)와 함께 CCTV까지 직접 달았지만, 별 효과가 없다"고 했다.

한 환경미화원도 "명동은 쓸어도 쓸어도 워낙 쓰레기양이 많아 엉망"이라며 "인파가 몰리는 주말엔 인근 지역의 미화원들까지 지원 나올 정도지만, 그래도 감당이 안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명동의 한 매장 앞 구석에 방치된 쓰레기들. 바로 위 벽면에 경고문구 'Don’t litter. There will be fines for people who drop litter. 이곳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가 표기돼 있다.
명동의 한 매장 앞 구석에 방치된 쓰레기들. 바로 위 벽면에 경고문구 'Don’t litter. There will be fines for people who drop litter. 이곳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가 표기돼 있다. ⓒ 이소영

명동의 외국인들 ""Korea, not good(한국, 좋지 않아요)"

눈스퀘어 명동점 앞에서 가족과 함께 길거리 음식을 먹고 있던 소녀 애니카(Aneeqa·여·8·홍콩)는 "한국 이미지 별로다"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쇼핑몰 앞 계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먹다 버린 떡볶이 그릇, 검은색 봉투에 담긴 음식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었다. 타이완에서 온 맨디(Mandy·여·19)씨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Korea, not good(한국, 좋지 않아요)"이라고 했다.

중국인 관광객 장이천(Zhang yichun·여·23)씨는 "더러워 보인다. 쓰레기는 휴지통에, '상식(common sense)'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4년째 한국에 사는 밤바후(Byambaakhuu·여·32·몽골)씨도 "난 외국인이지만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보면 기분이 안 좋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신경도 쓰지 않더라.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명동의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건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울산에서 올라와 처음 명동의 모습을 본 이원영(여·20)씨는 "관광지라고 해서 엄청나게 기대하고 왔는데, 구석마다 쓰레기들이 있더라. 한국인으로서 창피하다"며 얼굴을 붉혔다.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일하는 김현숙(여·52)씨도 "솔직히 여기서 일하는 나부터 길거리 음식을 못 먹겠고, 오기도 싫다. 깨끗한 곳으로 여행가고 싶지, 더러운 데로 놀러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 내가 외국인이라면 명동엔 다신 안 올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150만명 오가는 명동, 쓰레기통은 '12개'뿐

'밝은 동네'를 뜻하는 '명동(明洞)' 곳곳이 쓰레기로 더럽혀진 까닭은 뭘까. 기자가 직접 명동을 찾은 남녀노소 100명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 결과, "쓰레기통이 부족해서"를 이유로 꼽은 사람이 무려 71명에 달했다. 명동을 오가는 사람 10명 중 7명은 "쓰레기통이 충분치 않다"고 느낀 것이다. 낮은 시민의식(19명), 단속·처벌 미비 등 기타(10명)가 그 뒤를 이었다.

서울 중구청에 따르면 명동 일대의 쓰레기통은 12개뿐이다. 민간기관이 관리하는 쓰레기통까지 합쳐도 2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관광문화연구원의 '2013 외래관광객 실태조사(1만2000명 표본조사, 중복응답)'를 보면 2013년 일본, 중국, 홍콩 등 주요 16개국의 외래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 장소는 명동(58.9%)이다.

2013년에도 최소 716만 명의 외국인이 찾았을 만큼 명동은 한국 최고의 명소인 것이다(2013년도 방한 외래객 1217만 명 x 58.9% = 7,168,130명). 일일 유동인구도 평일 150만 명, 주말 23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을 위해 명동엔 먹거리 음식 등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만큼 배출되는 쓰레기양은 많은데, 이를 감당할 쓰레기통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약손명가 명동점 앞에 쌓인 쓰레기 더미에 휴지를 버리고 돌아서던 서재원(남·24), 이재인(여·23) 커플은, "왜 이곳에 쓰레기를 버렸느냐"고 묻자, "30분 넘게 쓰레기통을 찾아 헤맸는데 아무 데도 쓰레기통이 없었다. 쓰레기통이 있다면 왜 길에 버렸겠느냐"고 말했다.

명동예술극장 앞에 먹다 남은 꼬치를 버리던 일리아(Yilla·여·24·중국)씨도 "한국인들이 여기에 버리길래 쓰레기통인 줄 알고 버린 것뿐"이라며 "중국은 2분 거리마다 쓰레기통이 있는데 여긴 쓰레기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쓰레기통을 눈에 띄는 곳에 설치해 줬으면 좋겠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명동, 상징성 큰 곳인 만큼 쓰레기통 늘려나가야"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쓰레기통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는 점이다. 인근 상점들의 상권침해 논란, 주민들과 상인들의 쓰레기 무단투기, 인력과 예산 부족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생활환경과 도시청결팀의 김경희 주무관은 "쓰레기통을 늘리면 편하지만,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의 쓰레기 무단투기가 많아지는 문제가 있다. 구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서울시가 일괄적으로 쓰레기통 수를 정할 수가 없다"며 "서울시도 지난 2012년부터 전수조사, 해외모범사례 파악을 하는 등 '편리하면서도 시민들의 잘못된 행동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구청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청 폐기물관리팀의 김영기 주임은 "이전에도 쓰레기통을 확충하거나 노점상마다 의무적으로 쓰레기통을 마련하게 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통행로가 좁아지고 미관상 좋지도 않다'는 반발에 부딪혀 2~3일 만에 철거했다. 우리도 쓰레기통을 늘리고 싶지만, 지금이 그나마 민원이 최소인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음식물 관련 쓰레기인 만큼 상점 안 가게나 노점상이 처리하는 게 필요하다. 쓰레기통을 늘려도 치울 인력이 부족하다. 현재 쓰레기통은 그대로 두되, 3월부터 12월까지 서울시가 6개 주요 자치구에 해주는 미화원 등의 인력 지원을 1년 365일 해주는 게 가장 나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명동#쓰레기#춘절#한국#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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