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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한 기차여행은 나에게 많은 걸 느끼게 했다.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런 종류의 여행이 아닌 머무는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줬으니까. 그래도 혼자 하는 여행을 멋지게 포장할 생각은 없다. 동행이 없으니까 외로운 건 당연하고 멋진 경치를 봐도 같이 이야기 할 상대가 없다는 건 퍽 답답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아프거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다시금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화가 없는 여행은 내게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보게 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했다. 만약 친구와 함께 떠났더라면 지금까지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들을 그냥 무심히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不用. 不用. (괜찮아요, 필요 없어요.)"

아기를 데리고 여행하는 아주머니는 자꾸만 간식을 사주는 아저씨의 호의를 거절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아이가 귀여워서 무엇 하나 더 주고 싶은 아저씨의 호의가 느껴졌기에 그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이 장면은 9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차여행을 떠올리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이 외로운 여행을 하는 사람을 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침대칸 맞은 편에 아무 말도 없이 누워있던 여자도 나와 같은 부류였다. 1박 2일 동안 우리는 여러 번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끝내 말을 걸지 않고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듯 눈빛을 교환했을 뿐이었다. 

 기차 밖 풍경을 몰래 찍었다. 하지만 이미 아름다운 풍경은 지나가버린 후. 그래도 아름답다.
기차 밖 풍경을 몰래 찍었다. 하지만 이미 아름다운 풍경은 지나가버린 후. 그래도 아름답다. ⓒ 최하나

오랜 시간을 기차 안에 머물렀지만 사진은 몇 장 남아있지 않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카메라를 꺼내는 것조차 괜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불문율을 깰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비가 촉촉이 내려 젖은 땅을 달리는 야생마의 모습은 내 시선을 빼앗았다. 태곳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풍경에 나는 딱 한 번 나와의 약속을 깼다.

 하루에 15위안에 머무를 수 있었던 숙소. 저렴한 호스텔.
하루에 15위안에 머무를 수 있었던 숙소. 저렴한 호스텔. ⓒ 최하나

밤이면 3층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깨면 MP3플레이어 다운로드 받아놓은 노래를 듣고 미리 사온 깡통죽을 먹다가 창가 옆 보조석에 앉아 풍경을 감상하다보니 어느새 약 48시간의 여행은 끝이 났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사천성의 청두. 하루에 15위안짜리 믹스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몸을 잠시 추스른 후 주자이거우로 떠나기로 했다.

 여행하는 동안 쓴 일기장.
여행하는 동안 쓴 일기장. ⓒ 최하나

11월 10일 

​지금 여기는 숙소다. 새벽 6시30분에 출발해서 지금 도착했다. 아침에 봉고차가 나를 데리러 왔을 때는 솔직히 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이는 장소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마중 나온 차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젊은 사람은 없지만 다들 좋은 사람인 것 같다. 근데 어딜 가나 아줌마들은 똑같은 것 같다.

아휴, 그 입담은 역시! 휴게소 들릴 때마다 과일도 나눠주시고 간식도 챙겨주시고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주자이거우를 가기로 한 건 아직까지는 아주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경치가 아주 멋진데 그걸 카메라가 다 담지는 못했지만. 아직 투어는 시작도 안 했는데 오는 길에 벌써 사진을 백 장은 찍은 것 같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까? 또 기대되면서 설렌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란 원래 이런 건가? 내가 아프거나 다쳐도 온전히 내가 다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면 무섭기도 한데 그것보다는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계획에 없던 여행이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준 것처럼 앞으로의 인생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가진 게 많지 않은 여행자이다 보니 돕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는 것. 5마오 혹은 1위안이 적은 돈 이기는 하지만 자꾸 주다보면 커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아무튼 내일 여행을 기대하면서 그만 써야지.

일기를 들춰보다가 웃음이 났다.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주자이거우를 가려고 현지에서 일행을 알아보다가 오히려 투어에 끼어서 가는 게 더 저렴하다는 걸 알아냈다.

 당시 썼던 가계부. 주자이거우로 출발하기 전 날 투어비로 750위안을 지불했다.
당시 썼던 가계부. 주자이거우로 출발하기 전 날 투어비로 750위안을 지불했다. ⓒ 최하나

여행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3박4일 일정에 숙소와 식사 그리고 입장료 등을 모두 포함해 750위안이라고 해서 (그 당시 환율로 따지면 97500원 정도) 호스텔 직원에게 부탁을 해 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나가보니 봉고차 한 대가 입구에 서있었다.

'혹시 납치 아니야?'

그래서 다시 돌아가 직원에게 물었더니 일단 저걸 타란다. 자기가 신청한 게 맞다고 했다. 하지만 봉고차 안에 아무도 없다고 좀 더 불쌍하고 다급한 표정으로 설명하자 번호판을 확인해보고 운전사에게 물어보더니 맞다며 걱정하지 말고 타라고 했다.

그리고 그 차는 여러 호스텔과 호텔을 거치면서 다른 사람들을 태웠는데 알고 보니 모두 중국인. 나는 분명히 외국인 투어를 신청했는데... 어느 건물 앞에서 우리는 반기는 관광버스는 딱 보기에도 좁고 낡았다.

 주자이거우 가는 길. 물이 에메랄드 빛이다.
주자이거우 가는 길. 물이 에메랄드 빛이다. ⓒ 최하나

아니나 다를까 조금만 차가 움직여도 온 몸으로 느껴지는 그런 승차감에 10시간 동안 시달린 끝에 주자이거우 앞 호텔에 도착했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탓에 춥다는 그 곳. 나는 그 날 추위에 오들오들 떨다가 체해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이튿날 빈속으로 주자이거우에 가게 되었다.


#주자이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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