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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야 음악이 바르게 되어 아와 송이 각각 제자리를 찾았다"(논어 7:13)

이 트렌드 세터틱한 멘트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 동양 문화권에 큰 영향을 끼쳐온 사상가 공자(孔子)입니다. 아니, 공자님이라고 하면... 도덕윤리 교과서에서 배운 성인(聖人)의 온후한 이미지 같은 게 먼저 떠올랐는데!

이건 마치 막 힙합계를 평정한 MC가 뽀대나게 "내가 이 바닥의 더리 사운드를 몰아내고, 힙합정신을 바로잡았어"라고 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의외로군요... 우리가 몰랐던 공자의 다른 면모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공자(孔子, B.C.551~479)의 초상 공자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그가 살던 시대는 천자국인 주나라와 제후국들 사이의 질서가 문란해지던 시대였다. 원래 중국은 혈연관계를 매개로한 종법제도와 주공(周公)이 만든 문화적 질서인 주례(周禮)를 통해 유지됐었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옅어지고, 외적의 침입을 겪어 수도를 옮기는 등 천자국인 주나라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질서가 문란해진 것이다. 공자는 주공이 봉해졌던, 노나라에서 태어나 주례를 회복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한 때 노나라에서 벼슬도 했으나, 정쟁을 피해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했다. 말년에는 다시 노나라로 돌아와 교육과 집필 활동에 힘썼다. 『논어(論語)』는 그와 그의 제자들, 주변인물들의 어록을 모은 책으로 공자라는 인물의 체취와 삶의 활력을 보다 와닿게 느낄 수 있는 고전이다.
공자(孔子, B.C.551~479)의 초상공자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그가 살던 시대는 천자국인 주나라와 제후국들 사이의 질서가 문란해지던 시대였다. 원래 중국은 혈연관계를 매개로한 종법제도와 주공(周公)이 만든 문화적 질서인 주례(周禮)를 통해 유지됐었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옅어지고, 외적의 침입을 겪어 수도를 옮기는 등 천자국인 주나라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질서가 문란해진 것이다. 공자는 주공이 봉해졌던, 노나라에서 태어나 주례를 회복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한 때 노나라에서 벼슬도 했으나, 정쟁을 피해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했다. 말년에는 다시 노나라로 돌아와 교육과 집필 활동에 힘썼다. 『논어(論語)』는 그와 그의 제자들, 주변인물들의 어록을 모은 책으로 공자라는 인물의 체취와 삶의 활력을 보다 와닿게 느낄 수 있는 고전이다. ⓒ 공자 초상화 갈무리

사실 공자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는, 지나치게 신화화 되거나 악마화 된 측면이 있습니다. 공자 사상의 핵심에 대해 즉석에 질문을 던지면 잘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도, 그가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는 것 즘은 쉽게 알지요. 혹은 우리 동양 문화가 제국주의 시기 서양에 침탈을 당한 이유로 유교 문화를 꼽으며, 탓을 공자로부터 찾기도 하니까요.

인간 공자의 체취와 동양철학의 사고방식이 담긴 책 <논어(論語)>

그게 바로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환상을 넘어, 인간 공자의 체취를 느껴보자는 것입니다. 준비물은  <논어(論語)>입니다. 이 책은 일종의 어록집인데요. 그래서 일정한 쳬계가 없고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대신 공자의 인간적 면모와 통찰을 더욱 와 닿게 느낄 수 있고,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고 창의적인 읽기가 가능하단 장점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마음 속에 되살린 인간 공자와의 대화, 또 여기서 발견하는 나의 깊은 내면의 모습... 이것이 오늘날 <논어(論語)>를 읽는 발견술적 의의이자, 삶을 도야시킬 계기를 마련하는 기회인 거죠.

 서평은 김형찬 선생님이 번역한 홍익출판사 『논어』를 읽고 썼다.
서평은 김형찬 선생님이 번역한 홍익출판사 『논어』를 읽고 썼다. ⓒ 홍익출판사

  일단 공자의 센티멘탈한 면모를 음미하기 전에, 동양철학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동양철학의 특징은, 어떤 사태의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주목하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통찰력에 있습니다. 현실과 그로부터 '추상된 것'인 이론 사이의 긴장이나, 이론의 최종 근거를 위해 요청되는 신과 같은 것들을 동양 문화에는 찾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래서 신학이 발달한 서양과 달리, 동양은 현실에 보다 직접적인 윤리, 정치, 사회철학 등... 구체적 문제들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 문제들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되는 거죠. 공자가 강조한 인(仁)도, 그가 살았던 혼란한 시대에 다시  '두 사람(二人)'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추구된 것이니까요.

  우리 동양사람들, 전통적으로 관계를 참 중요시 해왔습니다. 인간 공자의 얼굴을 찾는 실마리는 바로 이 관계를 좀 색다르게 적용하는데 있습니다. 그의 사상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인(仁)의 '정신'과 사람의 '신체' 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심장에 적용시켜 보는 것 입니다. 심장이라니... 좀 뜬금없다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네 마음을 다하라.. 어디를 가든지, 네 심장을 다하라?
어디를 가든지, 네 마음을 다하라.. 어디를 가든지, 네 심장을 다하라? ⓒ QouteHD.com

강단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대부분 공맹(孔孟)의 사상을 설명할 때마다, 사람이라면 그 지니고 있는 인(仁)의 정신이 본성적으로 즉발(卽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그들의 가슴 가까이에서 무언가 이끌려 나온다는 듯한 손 제스처를 자주 취합니다.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다른 부위도 아니고 '가슴'일까요? 이 실마리를 풀려면, 먼저 공자 사상의 인(仁)과 예(禮), 악(樂)이라는 개념을 간단히라도 이해해야 합니다.

인(仁), 예(禮), 악(樂)의 관계

<논어(論語)>에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사실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인(仁)과 예(禮), 악(樂)입니다. 단지 이것들이 구체적인 삶의 맥락에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 거죠.

  그래도 꼭 대표적인 의미 규정들을 추려내야 한다면, 일단 인(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논어 12:22), 이를 실천하는 자세(道)는 하나로 관통되는데(一以貫之), 그것이 바로 충(忠)과 서(恕)입니다(논어 4:15). 주자(朱子)는 충(忠)을 "진심으로 자기의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서(恕)를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서 남이 바라는 바를 이해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요컨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해 남을 사랑하는 게 인(仁)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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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공자> 스틸컷

그런데 좋은 말이긴한데... 이것으로는 부족해 보이죠? 그래서 인이 바탕이라면,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인 예(禮)가 필요합니다. 이 예는 단순히 지금의 '예의범절' 수준의 좁은 의미가 아닙니다. 그 당시 문화적 질서 전반을 모두 포괄하는 대단히 큰 개념입니다. 공자는 예를 중시했기 때문에,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게 된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 후에야 군자다운 것이다"라고 언급하며(논어 5:16) 인(仁)과 예(禮)의 조화를 강조했지요.

  그렇다면 악(樂)은 무엇일까요? 네. 음악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공자는 이 악(樂)이야말로 인간성 완성의 표지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죠.

"시를 통해 순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예의를 통해 도리에 맞게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음악을 통해 인격을 완성한다."(논어 8:8)

  그런데 왜 하필 음악일까요? 그리고 이것은 심장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자, 지금부터 인간 공자를 만나봅시다.

음악은 문화의 정점이자, 신체의 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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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공자> 스틸컷

  공자가 말하는 사랑인 인(仁)은 비슷한 시대 사상가였던, 묵자(墨子)가 말하는 무차별적 사랑과는 다릅니다. 가까운 부모님에 대한 효(孝)부터, 노력을 통해 천하(天下) 전체로 확대해가는 '활동으로서의 사랑'인 것 입니다(논어 13:18, 19:2). 그런데 사람이 신체를 통해 활동을 하려면, 심장이라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팔 다리로 피가 순환해야 하지요?(눈치가 빠른 독자는, 여기서 어떤 대칭성을 발견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 활동의 대상은 왜 부모님일까요? 상식적으로는 너무 당연해보이겠지만, 여기에도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유아들이 자신의 가까운 주변인들 특히 부모와 '몸짓'을 통해 정서적 감응 능력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연구해왔습니다. 인간은 심장으로부터 팔 다리까지... 온 몸으로 보이는 '활력'을 통해, 서로 일치감 혹은 괴리감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러한 조화로운 정서적 관계를 성공적으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면, 서로의 활력을 통해 공명하거나 엇박자가 난다고 할 수 있겠죠.

  음악, 특히 타악기 연주는 사람의 심장박동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물론, 현악기나 사람의 목소리 역시도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활력이 있습니다. 그런 음악들은 어떤 조화미(調和美)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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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공자> 스틸컷

공자는 이런 조화미를 이미 오래 전에 통찰했습니다. 그래서 인(仁)의 표현으로 예(禮)보다 악(樂)을 더 높은 완성의 단계로 보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 입니다. 음악에서 발견되는 조화가 어떤 나라와 시대의 문화에서의 '관계'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본 거지요. 가령, 공자는 "음악은 배워 둘 만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여러 소리가 합하여지고, 이어서 소리가 풀려 나오면서 조화를 이루며 음이 분명해지면서 끊임이 없이 이어져 한 곡이 완성되는 것이다"라고 언급하며(논어 3:23) 음악의 완성의 핵심이 '조화'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소리의 아름다움이 지극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의 선함도 지극하다"  ― 순임금의 음악에 대해
"소리의 아름다움은 지극하지만 그 내용의 선함은 지극하지 못하다"  ― 무왕의 음악에 대해

  이처럼 공자의 음악관은 문화 비평의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는 성인(聖人)인 순임금의 음악인 소(韶)를 무력으로 천하를 차지한 무왕의 음악인 무(武)보다 더 높게 쳐줍니다(논어 3:23). 하지만 무왕보다 훨씬 못한 정나라 음악에 대해서는 음란하기 때문에 몰아내야 한다고 촌평을 날리죠(15:10), 여기서 우리는 예술적 감수성을 갖춘 센치한 인간 공자의 얼굴을 보게되는 것 입니다.

  결국, 공자는 혼란한 시대에, 사람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정나라, 손 머리 위로 들어!"를을 외칠 때 줏대있게 "주나라, 손 머리 위로 들어!"를 외친 셈인 것 입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이 분, 최소 그루브 좀 타셨던 분인 겁니다.

이 시대에도 가슴 뛰는 탁월한 악장(樂章), <논어(論語)>

  비록 당시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천하를 주유했고, 때로는 그런 모습 때문에 세인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던 공자!

  하지만 그가 말하듯, 세상을 버리는 것은 과감히 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혼란한 시대에서도 자신의 인(仁)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덕을 쌓기 위해 배우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어려운 일 입니다(논어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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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공자> 스틸컷

비록 당시에는 그의 이상의 실현이 그에게 달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25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성인(聖人)으로 인정 받게 하는 것은... 성인(聖人) 공자 이전에, 시대를 '힘껏' 살아보려고 했던 한 인간의 삶의 활력이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의 심장을  '공명' 시킬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제 <논어(論語)>라는 탁월한 악장(樂章)을  책장 가까이 꽂아두고, 삶에서 지속적으로 펼쳐보며 배우고 때마다 익혀 기쁜 마음으로(논어 1:1),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와 이 시대에 필요한 그루브는 어떤 느낌일까?"

덧붙이는 글 | 이 서평은 필자가 중앙대 학술정보원의 <인문학 고전40선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쓴 글을 보다 대중적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논어

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현대지성(2018)


#논어#공자#음악#심장#그루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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