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제 연구실입니까?" 칸막이가 다닥다닥 쳐진 방을 둘러보며 내가 물었다.
"이것도 우리가 일부러 만든 겁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라서요. 사실 여기 중국 교수들은 연구실 자체가 없어요." 국제교류처 직원이 대답했다.
설마, 교수 연구실이 없을까중국에 오기 전, 나는 당연히 개인 연구실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칭다오에 도착한 첫날 방문한 학교의 상황은 달랐다. 사방 벽을 따라 한 사람당 두 개의 책상이 배당되었고 가운데는 회의 테이블이 있었다. 그나마 각자의 자리에 칸막이가 처져 있어서 어느 정도의 독립성은 있었다. 하지만 책장을 놓을 만한 공간이 부족했고, 컴퓨터는 구형에다 인터넷은 자주 끊겼다. 모양새와 분위기는 책 향기가 어울리는 연구실이 아니었다. 스산하고 쿰쿰한 빈 방에 후다닥 차려놓은 어수선한 사무실이었다.
나는 복도에 줄지어 선 다른 방들을 훑어보았다. 국제교류처장실, 국제교류처 사무실, 국제학원 원장실, 국제학원 부원장실, 국제학원 사무실, 무슨 무슨 기술센터.... 나머지는 다 교실이었다. 교직원의 말대로 교수 개인 연구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정말일까? 강의와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에게 연구실이 없다는 것이. 중국인 교수들은 어디에서 학생 면담과 연구를 하지? 강의가 없는 시간엔 또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나는 그들의 직장 생활이 그려지지 않았다. 한편으론 의심도 들었다.
'설마, 여기가 국제학원 건물이니 건축학원 건물에는 따로 있을지도 몰라'
얼마 후 건축학원의 중국인 T교수가 내게 대학원 특강 요청을 했다. 발표 당일 나는 그가 알려준 건축학원의 교수실로 찾아갔다. 분명 방 호수는 맞는데 방문에 그의 이름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차라리 내가 있는 공동 연구실이 나았다. 창가 벽을 따라 칸막이 없이 책상들만 쭉 있고 그 위에는 가방과 노트북이 흩어져 있었다. 벽 쪽 책장에는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은 조례집 류의 전집이 꽂혀 있었다. 가운데에는 회의용 테이블이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척 보니 연구실이라기보다 잠시 잠깐 들르는 휴게실 같았다.
"한국과 많이 다르지요?"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한국 유학파인 T교수가 멋쩍게 웃었다. 거기다 대놓고 "정말 중국 교수들은 개인 연구실이 없어요?"라고 물을 수는 없었다. 나중에 차츰 알게 된 사실은 학원장이나 특별한 보직을 맡은 사람을 제외하면 개인 공간이 따로 없긴 했다. 학생 면담이나 교수 모임은 회의실이나 공용 공간에서 한다. 연구와 논문 쓰기는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있는 교수 아파트에서 한다. 물론 지역마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건축학과 교수들이 가는 곳은 한 군데 더 있다. 바로 교내 설계원인데 한국의 설계사무소와 비슷하다. 그들은 그곳에서 실무를 병행한다. 학원장 사무실은 따로 있긴 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만 있어서 그런지 학원장의 직함이 무색할 정도로 썰렁하다.
한국 대학교와 비교해 보면 교수의 근무 환경은 떨어지지만 익숙해서인지 딱히 불편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수보다 건축학과 학생들의 학습 공간이 더 좋다. 두 개 층으로 뚫려 있는 상설 전시공간, 개인 공간이 있고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설계실, 컴퓨터실, 특수한 장비를 갖춘 모형제작실에 3D 프린터실까지.
교수야, 부동산업자야... 헷갈리는 중국 교수들교수 연구실에 놀란 내가 그 다음으로 입이 쩍 벌어진 것은 그들이 받는 월급이었다. 칭다오 이공대의 경우 직급에 따라 4000위안에서 10000위안 사이인데, 학원장이 10000위안 정도를 받는다. 수당은 직급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대졸자 초임이 보통 3000위안이고 중학교를 졸업한 농민공이 2000위안 정도이니,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 월급치고는 너무 낮다. 하지만 교수들은 주택을 제공받고 월급 외에 다른 소득원이 있다.
건축학과 교수들의 경우, 설계원에서 실무 프로젝트를 한다. 지방 정부 사업부터 건설회사 협업까지 두루두루 참여하면서 부수입을 올린다. 유명한 교수라면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 프로젝트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니 같은 교수라고 해도 수입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교수에게는 월급이 생활비이고 어떤 교수에게는 월급이 용돈이 된다.
부수입에 열을 올리는 교수는 학교 안의 일보다 학교 밖의 일에 더 신경을 쓰느라 학생 교육에 소홀해지기 쉽다. 하지만 그런 교수에게 대학원생들이 더 몰린다. 외부 프로젝트가 많은 교수일수록 '관시(关系, 인맥)' 범위가 넓으니 취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월급과 부수입 모두 낮은 그룹은 역시 젊은 교직원이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뛰기도 한다.
교수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그들의 주택에서도 나타난다. 학교에서 지급되는 푸리방(福利房, 일종의 복지주택)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면 상당한 금액을 챙길 수 있다. 푸리방은 원래 계획경제 시대의 산물이다. 신중국 건립 이후 직장인 단웨이(单位)마다 푸리펀방(福利分房)이 있었다. 국가가 직장별로 주택을 건설하면 단웨이가 직원들의 직급, 경력, 가족 수, 나이에 따라 주택을 분배하는 제도였다. 푸리펀방은 개인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매매나 교환이 불가능했고, 임대 형식이었지만 그 액수는 무상에 가까웠다.
그런데 1990년대에 국유기업이 개혁되는 과정에서 단웨이가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자금을 확보하려고 단웨이는 부동산을 헐값에 처분했다. 급한 나머지 직원들에게 한꺼번에 여러 채의 집을 강매하기도 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당시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샀던 사람들은 나중에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한 몫을 단단히 챙길 수 있었다.
1990년대 말에 정부가 주택정책을 시장경제 체제로 바꾸면서 푸리펀방이 폐지되고, 개인이 직접 돈을 주고 주택을 구입하는 상핀팡(商品房, 일종의 상품주택)이 생겼다. 차츰 주택거래 시장이 형성되자, 이때를 틈타 부동산 개발업체, 땅을 소유한 정부, 대출을 하던 은행이 서로 협력하면서 부동산 열풍이 일어났다.
푸리펀방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칭다오에서 들었던 푸리방은 국유기업이나 대학교 같은 곳에 있었다. 예전의 푸리펀방과 다른 점은 모든 직원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근무기간이나 직위를 따져 선별하고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아주 싸게 살 경우 상핀방의 1/10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주택 소유권은 처음에는 해당 직장에 있지만 5년이 지나면 개인 소유가 되고 매매도 할 수 있다. 이 때 매매가는 주택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핀팡 가격으로 된다니, 살 때와 팔 때의 차액이 엄청나다. 이미 집 한 채가 있는 사람이 푸리방을 얻으면 상핀팡의 가격으로 세를 놓아 임대료를 받거나 적당한 때에 팔아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맞벌이 부부가 각자의 직장에서 푸리방을 받게 되면 로또 당첨이 따로 없다.
문제는 푸리방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 직급에 있기 때문에 정작 월급이 적고 직급이 낮은 젊은 교원에게는 그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듣자하니 연배 높은 교수들 중에는 주택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이 제법 있다고 한다. 오래 전에 받은 교내 푸리방 하나, 제2캠퍼스를 신축할 때 만든 초고층 아파트 푸리방 하나, 여기에 맞벌이 배우자가 가진 주택까지 합치면? 표면의 월급에 벌어졌던 내 입은 이면의 재산에 더 크게 벌어지고 만다.
내가 베이징에서 만난 대학 교수는 집이 여섯 채나 있었다. 그것도 베이징의 강남 8학군이라는, 집 값 비싸기도 소문난 우다코우(五道口)에 말이다. 관시가 좋은 사람은 편법으로 푸리방을 구하기도 한다. 받은 사람이 또 받는 상황이니 젊은 바링허우 교원들은 푸리방에 대하여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외국인 교수에 대한 대우는 중국 현지에서 채용된 경우와 합작 프로그램인 경우에 따라 다르다. 현지에서 채용된 교수는 해당 대학의 규정을 따른다. 합작 프로그램 교수는 두 대학의 협정 내용으로 정해진다. 이공대 한중 합작 교수의 월급은 한국 대학 교원 임금이 기준이었다. 월급만으로 따지만 중국인 교수에 비해 월등히 높지만, 주택이 제공되지 않고 수당도 없었다. 세금은 칭다오시 세법을 따라 외국인은 3년까지 면제됐다.
대학 총장이 최고 서열... 중국에선 아니었다교수 연구실과 월급 다음으로 놀라운 것은 교수와 행정직원, 총장과 당서기의 서열 체계다. 한국의 대학교라면 보직이란 보직은 모두 교수들이 차지한다. 도서관 직원이 정년퇴직할 때까지 일해도 도서관장이 되는 일은 절대로 생기기 않는다. 국제교류처 직원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국제교류처장이 될 수도 없다.
그런데 칭다오 이공대는 그렇지가 않다. 행정직원이 교수 앞에서 작아지지도 않고 각종 보직도 맡을 수 있다. 물론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는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건축학원장이나 국제학원장이 될 수는 없다. 이공대 국제교류처장은 원래 행정직원 출신이었다. 그는 국제교류처장 임무를 마친 후에 도서관장이 되었다. 중국이 관료 중심 사회라서 그런지, 때로는 행정직원이 더 크게 보일 때도 있다.
중국 대학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사람은 총장이 아니라 당서기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에서 당서기는 어느 조직에서든 서열이 가장 높다. 당위서기(党委书记)라고도 부르는데 대학에서는 총장보다 높다. 그래서 대학 총장이 당부서기를 겸할 수는 있어도 당서기는 부총장을 겸할 수 없다. 총장은 일반적인 행정과 교육 업무를 맡는다. 당서기는 당 관련 사무, 행정 간부 임명, 각종 행정 사무의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업무 내용을 봐도 임명과 결정권을 가진 당서기의 권한이 더 높다.
중국 학생들은 강사, 교수, 행정 직원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라오스(老师, 선생님)'라고 부른다. 강사, 교수, 직원끼리도 서로를 라오스라고 부른다. 진라오스 왕라오스, 쑨라오스... 나이와 직책에 상관없이 앞에 성만 붙이고 라오스라고 부른다. 인칭대명사 외에 별다른 존댓말이 없는 중국어에 똑같이 라오스라고 부르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쓸데없는 힘이 들어갈 일도 눈치 볼 일도 없어서 좋았다. 중국어의 말 맛을 모르는 나로서는 라오스를 부르고 들을 때마다 왠지 평등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할 때는 직책과 서열이 드러난다. 평소에는 다들 같은 '라오스'지만 공식석상이나 회의할 때는 단번에 표가 난다. 학원장, 부원장, 교수가 회의를 하면 부원장과 교수들은 전달자이고 학원장은 결정권자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그래서인지 학원장이 참석하지 않은 회의 결과가 번복될 때가 있었다.
학원장이 결정한 사항을 부처에 통고할 때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처리 속도가 다르다. 학과 사무실 직원보다는 교수가 하는 것이 빠르고, 학원장이 직접 전화를 하면 속전속결이다. 그래서인지 학생들도 심각한 불만 사항이 있으면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결정권을 가진 학원장을 바로 찾는다. 어린 저학년들은 문제가 생기면 학과 사무실을 찾지만, 고학년들은 부원장실이나 원장실로 직행한다.
한국과 사뭇 다른 중국 교직원의 대우와 그들 사이의 관계를 보면서 나는 가끔 헷갈렸다. 수평적이다 싶으면 수직적이고, 평등하다 싶으면 권위적이고, 효율적이다 싶으면 비효율적인.... 요즘 유행어로, 사회주의인 듯 사회주의 아닌 사회주의 같은 중국, 자본주의인 듯 자본주의 아닌 자본주의 같은 중국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