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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여물로 배를 가득 채운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정말 느긋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겨본다. 팔자 걸음도 해보고 조심스럽게 발레리노처럼 발을 세우고 종종 걸음도 흉내내본다. 지금까지 아무 생각없이 그냥 버스를 타고 쌩하고 지나쳤던 곳을 지금 걷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아니 여유를 만들어서 골목을 걸어본다. 4차선 도로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갔을 때는 전혀 볼 수도 없었던 빌딩 사이에 폭이 1m도 채 안 되는 조그만한 골목길도 눈에 띈다. '아 이런 곳에 이런 작은 골목도 있었구나!'라고 머리로 깨치기도 전에 발은 바쁘게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때로는 몸이 머리보다 빠를 때가 있나 보다. 작은 골목길이라기 보다는 도로에 늘어선 빌딩들 사이로 난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왜일까? 몇 발자국만 들여다놨을 뿐인데 도로에 접한 빌딩 숲 뒤로 놀라운 광경이 시야에 들어 온다. 1980년대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 같은 단층짜리 한옥들의 숲이 살며시 부끄러운 듯 그 속살을 드러낸다.

골목에서 만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

심우장 가는 골목길 심우장으로 가는 골목길
심우장 가는 골목길심우장으로 가는 골목길 ⓒ 하도겸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하며 놀던 놀이터도 사실은 이런 작은 골목이 만나는 작은 공터같은 광장이었다. 축구공을 차도 될 만큼 넓어보였던 그곳은 겨우 차 한 대만 주차해도 꽉 차는 그런 곳이다. 지금의 나처럼 통통한 어른들 서너명도 함께 지나가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이 곳이 정말 그때의 그 넓었던 골목길이었나.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좀처럼 어려운 걸 보니 나도 이미 어른이 되었나 보다.

그냥 늙은 개처럼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다가 문득 과거의 그 골목들이 지금 걷는 이 길에 오버랩되기 시작한다. '아 맞구나!'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렸을 적 추억이라는 향수에 젖은 나를 깨운 것은 다름이 아닌 동네 아이들이었다. '아직도 서울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이 있구나!' 예나 지금이나 골목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 작은 골목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은 '응답하라 1988년'이라는 회상에 대한 막연하나마 고마운 답으로 '지금'이라는 선물을 느끼게 해준다.

때로는 느긋하게 때로는 숨가쁘게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하면서 골목은 물처럼 흘러간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흐르는 물처럼 골목길을 걷는 나도 세월을 못 이기고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인생이 꼭 평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골목길에서 다시 배운다. 갑자기 90도 이상 휘어지는 굴곡은 F1 경기장도 아닌 평범한 골목길에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골목처럼 모든 이들에게 스펙터클한 삶이 있음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젠 다시 현실로 돌아가라!'는 참기 힘든 그런 '지적질'을 마구 해준다.

오랜 세월에 많은 손님을 받다보니 길도 가끔씩은 술에 취하고 싶나보다. 거의 360도 넘게 한바퀴 휘감아 돌면서 오르는 언덕배기 골목길은 걷는 이(행자 行者: 수행자의 다른 말)들의 방향 감각을 마비시킨다. 다리도 풀리게 하며 술 취한 듯 비틀거리게 한다. 한없이 헤매다 보호펜스조차 없는 몇 미터 낭떠러지와 조우하고 나서야 비로소 바짝 정신을 차리게 된다. 절벽같은 높은 축대 위에서 자칫 떨어질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에 느끼는 전율과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감에 온몸이 떨린다.

그런 아찔한 순간을 벗어나 어느덧 골목은 수백년 우리 도성안의 백성을 지켰던 튼튼한 성벽과 부딪힌다. 성벽을 넘지 못하는 골목은 거기서 끝나기도 하고 때로는 운이 좋아 성벽과 평행선을 오랫동안 이어가면서 다른 골목길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 길을 걸으며 길에서 눈을 떼고는 하늘을 바라보고 산아래 마을을 내려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한다. 그렇게 조화롭게 길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내게 가르치고 나는 그 가르침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골목길 성북동 풍경'

먼발치 골목길 정상에 올라 바라본 성북동 전경
먼발치골목길 정상에 올라 바라본 성북동 전경 ⓒ 하도겸

성벽 아래에 이어진 그 길을 걸으며 내려다보이는 성북동 풍경은 참으로 편안하다. 세상에서 한발짝 떨어져 휴식을 취하길 원하는 사람에게 딱 맞는 '휴(休)'의 장소다. 북정마을과 같이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에 자리잡은 노인정 등은 이 소중한 마을을 지켜온 어르신들(지킴이)의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정취마저 느끼게 한다. 특유의 넉살로 동네 어르신들이 드시는 막걸이와 파전 동냥에 여지없이 성공한다.

흔쾌히 마련해 주신 동석 자리에서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커다란 현대사 사건들의 내막이 여과없이 폭로된다. 연세보다 정말 젊게 사시는 노인들의 힘센 입담은 역사교과서와 언론을 통해 배운 우리 현대사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신랄하게 알려준다. 목소리가 참으로 큰 어르신들은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의 내막을 슬로우 모션의 비디오테이프처럼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건 이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바로 'A! 그게 아니지!'라며 즉문즉설을 하시는 어르신들의 언쟁에 가까운 말씀 속에는 젊은 시절의 열정과 후회, 그리고 미련이 느껴진다. 젊고 건강한 청춘 시절 우리가 어떤게 살아야 하는지 암시해준다. 후회없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뒤돌아보게 하는 입담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찍은 하루하루의 살아 숨쉬는 그들의 기록들을 난 천천히 다시 소처럼 뒤새김질하며 공짜 막걸리로 굵은 목을 축이고 있다. 비워진 잔은 이제 다시 돌아갈 골목이 날 부르는 신호인가 보다. 이제 더 무거워진 몸을 다시 일으켜 골목을 걸으며 나를 돌아볼 시간을 가지라는 말없는 말이 마음으로 전해온다. 이심전심에 물아일체가 이런 것인가?

오르막과 내리막, 끊어짐과 이어짐 그리고 올곧음과 굽어짐이 복합되어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 골목길. 그 길을 아무생각없이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정처없이 따라다닌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은 길이 초췌하게 뼈대만 앙상한 빈집에 가로막히기도 한다.

허탈함과 낙담으로부터 두려움, 공포 그리고 작은 소소한 기쁨까지 만끽하게 해준다. 갈라진 골목에서 주어지는 끊임없는 선택의 기회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이 길로 가면 난 어떤 길을 걸을 것이며 어떤 집을 보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난 거기서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또 소소하지만 범상치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거 다 집어 치우고 그냥 그냥 그렇게 바다까지 흘러가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게 되는가?

만해공원의 한용운 동상 성북동 길가의 만해공원의 한용운 동상
만해공원의 한용운 동상성북동 길가의 만해공원의 한용운 동상 ⓒ 하도겸

불행하게도 가느다란 그런 섹시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넓어진 공간을 만나면 살빼기에 실패한 내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은 마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빈터로 광장으로 쉼의 공간이며 만남의 장소이다. '나도 그런 넉넉하고 부드러운 다목적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참 욕심도 많다. 골목길을 걸을 때는 행자 같더니 다시 늑대로 아니 시라소니로 돌아왔다. 골목길을 걸을 때 발걸음에는 들숨과 날숨의 나만의 호흡과 그곳에 깃든 나만의 마음이 있다.

그렇게 삶은 숨쉬면서 그림자처럼 나를 뒤따른다. 해를 등질 때는 때로는 내 앞에 길게 늘어서서 안내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런 골목길을 걸으며 자기를 돌아보고 치유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비유하면서 바라볼 수 있다면 그걸로 오늘의 골목길 탐방은 족한 게 아닌가?

아니 충분히 과하다. 이보다 좋은 '걷기 명상'은 없을 것이다. 굳이 돈 많이 내면서 명상을 배우거나 치유를 받을 필요가 없을 듯 싶다. 난 성북동에 산다. 그 덕에 공짜로 골목길이라는 치유와 걷기 명상의 길을 걷을 수 있다. 몇 걸음만 걸어도 존경하는 만해 한용운의 동상과 만날 수 있다. 아니 그의 마음을 배울 수 있다. 오늘도 내일도 난 골목길이라는 삶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걸음을 옮길 것이다.

성북동만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마실 속에 숨겨진 가치를 스스로 일깨우는 주인이자 지킴이가 된다면 풀뿌리 민주주의는 아니 우리나라는 참으로 많이 맑고 밝게 변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적어도 세월호의 아픔같은 것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동네를 걸으며 난 애향심을 배운다. 마실을 어르신과 사람들을 그리고 세상은 알게 된다.



#성북동#만해#한용운#심우장#북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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