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에 가면 고삼초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의 한 학부형이 "우리 아이들 학교는 전교생(2015년 현재 56명)이 모두 남매 사이"라며 자랑하기에, 어떤 사연일까 싶어 지난 4일 고삼초등학교(교장 이도영)를 찾았다.
전근 온 교사도 충격 받은 이 학교 '남매 문화'수업을 끝내고 아이들을 하교 시키는 시간, 이 학교 4학년 교실에서 조연희 교사(4학년 담임)를 만났다. 막 아이들이 조연희 교사에게 하교 인사를 끝내던 참이었다.
그런 인사 광경을 제대로 스캔도 하지 않은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 이 학교 학부형인 000씨가 '우리 학교는 전교생 모두가 남매'라며 자랑하시던데 맞아요?"라 물으니 "000의 아버님이 그러셨군요. 네 맞습니다"라는 시원한 대답이 돌아온다.
순간 나는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그게 맞다"는 대답과 함께 "000씨"라고 했을 뿐인데, "000의 아버님"이라고 바로 튀어나오는 대답 때문이다.
그 대답을 증명이라도 하듯 조 교사의 경험담 하나를 들려준다. 어느 날, 조 교사가 한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저 아이에게 네가 그것 좀 도와주렴"이라 말했는데, 그 아이는 "도와주기는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라고 대답했다는 것.
대도시(수원)에서 계속 교사 생활을 하다 2년 전에 이 학교로 전근 온 조 교사는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이었단다. 조 교사는 그 아이에게 "니가 나보다 낫다"라고 말해주며, 이 학교의 근간인 '남매문화'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했다.
매년 초, 이 학교만의 특별한 의식이 있다는데...
매년 초엔 이 학교만의 특별한 의식이 하나 있다. 바로 '의남매 결연식'이다. 이날은 의남매를 확정하고, 보호자와 담당교사를 배정하는 날이다. 이 학교 아이들의 '1년 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 '이번엔 누가 나와 의남매가 될까'란 궁금함이 풀리는 날이다.
의남매제도란 1~6학년까지 모든 학생이 골고루 섞여 1년 동안 남매가 되어 생활하는 것으로서 이 학교가 10년째 해오는 제도다. 통상 8~10명 정도가 하나의 의남매가 되며, 올해는 6개의 의남매 패밀리가 있다.
우선 의남매들의 이름으로 꽃밭을 공동으로 가꾼다. 학교 텃밭에 벼를 심고, 감자를 심고, 배추를 심는 것도 의남매가 모두 함께 한다. 추수해서 주변 독거어르신과 세계감자식량재단에 나누는 것도 의남매들의 활약이다. 학교 수업 속에도 의남매 활동이 배정되어 있다.
운동회를 예로 들면 의남매가 한 팀이 되어 운동회를 준비하곤 한다. 누가 무슨 종목에 대표 선수로 출전할지를 의남매 별로 의논하여 결정한다. 운동회 당일엔 '여섯 남매패밀리'들의 한판 승부가 되는 셈이다. 오죽하면 "'고삼초등학교=의남매제도'라 봐도 된다"며 조 교사가 강조했을까.
의남매가 아니라 진짜로 남매가 되는 이유
"아이들이 저학년 때는 언니들에게 순종하는 법, 중간 학년 때는 중간역할을 하는 법, 고학년 때는 언니로서 책임과 역할을 하는 법 등을 스스로 익히는 것 같아요."그랬다. 이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있어서 학년이란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었다. 남매사이에서 그 학년에 맞는 위치와 역할을 하는, 마치 형제가 많던 그 시절에 장남, 차남, 막내 등의 역할을 하며 살아온 거와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위치와 역할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고, 아주 자연스럽게(교사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터득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 번 맏언니(막내)는 영원한 맏언니(막내)'가 아니라 학년이 지나가면서 한 아이가 모든 위치를 경험해본다는 거다.
그렇다면 앞에서 '장애아동을 대하는 한 아이의 반응'이 왜 그리 자연스러웠는지 분명해진다. 그 친구에겐 '도와야 될 장애인 친구가 아니라 당연히 보살펴야 할 같은 형제'였던 게다.
학부모들도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분없이... "모두가 내 아이"
하교시간에 어느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차로 픽업할 때, 그냥 가는 법이 없다. 같은 방향의 아이들을 태우고 가서 일일이 그 집 앞에 내려준다. 어디라 말 안 해도 누구누구 집 앞인지 다 안다.
의남매들이 학교 텃밭에서 1년 농사를 시작할 때, 어느 학부모는 기꺼이 하루를 시간 내서 농기계를 끌고 와 로터리를 쳐준다. 추수할 때는 콤바인(하루만 사용해도 100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농기계)을 끌고 와 추수를 해준다. 왜? 모두 자신들의 아이니까.
해마다 의남매가 결연되면 거기엔 학부모 한 명이 그 의남매들의 부모가 된다. 이 부모는 의남매들이 활동하는 것을 뒷바라지 하고, 도와주고, 보살펴 준다. 부모들 사이에서도 의남매 제도를 10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모두가 '나의 아이들'이 된 거다.
"학부모님들도 '니 애, 내 애'를 구분하는 게 없어요. 모두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죠."인터뷰를 마치고 교정을 빠져나오는데, 흐뭇한 미소와 함께 '우리나라 각 초등학교 아이들도 이 학교처럼 의남매제도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