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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호 의원실에서 제공한 1994년 11월 18일자 <동아일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검찰 수사 주역들(촬영일은 1987년 3월 1일)' 사진. 왼쪽에 위치한 인물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며 가운데는 안상수 현 창원시장이다.
서기호 의원실에서 제공한 1994년 11월 18일자 <동아일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검찰 수사 주역들(촬영일은 1987년 3월 1일)' 사진. 왼쪽에 위치한 인물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며 가운데는 안상수 현 창원시장이다. ⓒ 동아일보

지난 1987년 1월 20일 치안본부로부터 박종철 고문치사-축소·은폐 사건(아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에 나선 검찰은 나흘 만에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물고문 외에 구타행위는 없었다"는 것이 1차 수사의 결론이었다.

1월 24일 정구영 서울지검 검사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했고, 서익원 차장과 신창언 형사2부장(수사팀장), 안상수·박상옥 검사(수사검사)가 배석했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박종철 열사의 물고문에 가담한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를 기소했다.

그런데 안상수(현 창원시장) 검사는 1차 수사가 끝난 뒤인 2월 27일 오후 7시 영등포교도소에서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를 접견했다. 이 자리에서 "물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3명(황정웅·반금곤·이정호) 더 있다"라는 중대한 증언이 나왔다. 안 검사는 다음날(2월 28일) 이를 정구영 지검장과 서익원 차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검찰은 추가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최초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직접수사'에 나서지 않고 치안본부(감찰조사)에 맡기고 수사지휘만 한 것, 사건을 송치받은 지 나흘 만에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 "물고문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추가수사에 나서지 않는 것은 모두 '부실수사'의 명백한 증거였다. 그러는 사이 박상옥(현 대법관 후보자) 검사는 3월 12일 여주지청으로 발령났다.

그런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김승훈 신부가 5월 18일 "박종철군 사건의 범인은 조작되었다, 구속된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는 진범이 아니고 황정웅 경위, 반금곤 경장, 이정호 경장이 진범이다"라고 폭로했다. 경찰과 검찰이 축소·은폐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1,2차 수사기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1,2차 수사기록 ⓒ 남소연

'조한경-강진규 범행'으로 축소한 이유

다급해진 검찰은 이틀 뒤인 5월 20일 '재수사'를 결정하고 수사에 나섰다. 두어 달 전 여주지청으로 발령났던 박상옥 검사가 수사팀에 다시 합류했고, 김동섭·이승구 검사가 가세했다. 

박상옥 검사가 2차 수사에서 조사한 대상은 강진규 경사(5월 20일)와 반금곤 경장(5월 21일), 이정호 경장(5월 23일), 황정웅 경위(5월 23일), 서울대생 하종문씨(5월 22일) 등이었다. 박 검사는 1차 수사 때 강 경위를 두 차례 신문했고, 황 경위와 반 경장도 참고인으로 조사한 경험이 있다. 

강진규 경사는 5월 20일 신문에서 "경찰과 검찰에서 나와 조한경 경위가 박종철을 욕조에 밀어넣다가 사망케 했다고 진술해온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기존 진술을 뒤집었다.

"그 당시 함께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 5과 2계 동료인 경위 황정웅, 경장 반금곤, 경장 이정호 등 3명이 실제로 박종철군을 조사하던 중 욕조 물에 밀어넣다가 사망케 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핵심은 황정웅 경위와 반금곤·이정호 경장이라는 진술이다. 강 경사는 "조한경은 박종철을 붙잡거나 밀어넣는 등 행동하지 않았고, 위 세 사람에게 '혼내주라'고 지시한 바 있고, 저는 욕조 위에 올라가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치안본부)과 검찰 1차 수사 결과('조한경-강진규 2인 범행')를 완전히 뒤집는 진술이었다.

강 경사 진술에 따르면, 박종철 열사를 물고문한 '주범'을 조한경·강진규로 축소한 이유는 "조한경은 박종철군 조사팀장이고 강진규는 대공수단에서 오래 근무"한 것이었다. 반금곤 경장은 5월 21일 신문에서  두 사람을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서 잔뼈가 굵은 경찰관으로서 주로 운동권 학생들 검거에 뛰어난 실적을 올려왔다"라고 평가했다. 강 경사는 "동료와 조직을 배반할 수 없어 검찰에 송치된 이후에도 저희들이 범행을 직접 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술을 번복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면회온 가족들 이야기나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이번 사건이 역사에 길이 남을 중대한 사건이고 저희 두 사람은 역사적인 죄인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에서 저희들이 한 사실이 나중에 밝혀질 경우 저희들은 온 국민을 기망한 더 큰 죄를 범하게 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강진규 경사는 "박 검사가 1차 수사 때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더 있는지 집요하게 물었다"라고 진술했지만 1차 수사기록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강진규 경사는 "박 검사가 1차 수사 때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더 있는지 집요하게 물었다"라고 진술했지만 1차 수사기록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 오마이뉴스

"박 검사가 고문경찰 더 있냐고 집요하게 물었다"고?

박상옥 검사는 강진규 경사 신문 끝부분에서 "처벌을 가볍게 받을 욕심에서 허위로 세 사람이 가담한 것으로 허위진술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강 경사한테서 '묘한 답변'이 나왔다.

"전에 검찰에서까지 검사님이 다른 직원들이 가담되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집요하게 물어보았을 때에도 두 사람이 했다고 답변했다가 그 후 이 사건의 충격과 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사실 그대로 말씀 드린 것이다."

박 검사가 1차 수사 때 박종철 열사 물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더 있었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open archives)를 통해 입수한 1차 수사기록(701쪽)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보유 자료)을 검토한 결과, 박 검사가 강 경사를 상대로 한 피의자 신문(2회)에서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더 있었는지를 추궁한 적은 없었다.

박 검사가 강 경사에게 던진 질문이라고는 "박종철을 때리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폭행한 일이 있는가?"(1회차), "박종철의 조사를 담당했을 동안 조한경이나 다른 직원들도 동인(박종철)을 폭행한 것을 보지 못하였다는 말인가?"(2회차) 정도였다. 반금곤 경장 참고인 조사에서도 박 검사는 "박종철을 조사한 사실이 있나?"나 "피의자들(조한경-강진규)이 박종철에게 욕조물에 집어넣는 등 폭행할 때 합세한 사실이 있나?"라고 질문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2차 수사기록에 기록된 강 경위의 진술처럼 박 검사가 박종철 열사의 물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더 있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1차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항소심 공판조서에 나와 있는 강 경사의 진술과도 다르다. 강 경사는 당시 공판에서 "(박 검사가) 반금곤이 주범인데 왜 강진규가 주범으로 되어 있느냐고 추궁했지만 제가 답변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1차 수사 때 이미 박 검사가 반 경장이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강 경사를 추궁했다는 것인데 이는 최소한 1차 수사기록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강 경사가 2차수사 때 그렇게 진술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강 경사가 박 검사를 추켜세우기 위해 허위로 진술했거나, 박 검사가 부실수사(1차 수사)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의자 신문 조서를 꾸미는 과정에서 그것을 추가로 집어넣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정호 경장은 조한경 경위의 박종철 구타행위를 증언했지만 박상옥 검사는 더 추궁하지 않았다.
이정호 경장은 조한경 경위의 박종철 구타행위를 증언했지만 박상옥 검사는 더 추궁하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구타가 있었다'고 진술받고도 더 이상 추궁 안해  

박상옥 검사는 5월 21일과 23일 각각 반금곤·이정호 경장과 황정웅 경위를 신문했고, 이들은 물고문에 가담한 사실을 인정했다. 앞서 이승훈 신부의 폭로(5월 18일)가 있었기에 범행을 부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 경장은 강 경사 진술과 달리 "강진규가 욕조에 들어가 두 손으로 박군의 머리를 눌러 물속에 넣었다 빼었다를 몇 번 했다"라며 물고문의 주범을 강 경사에게 떠넘겼다. 반 경장의 또다른 진술이다.

"박종철군의 머리를 물 속에 처놓고 있는데 박군이 반항도 하지 않고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황정웅이 강진규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질렀으나 강진규는 바로 놓지는 않았고, 축 늘어지는 느낌이 들자 욕조 밖으로 끌어냈다."

이정호 경장은 물고문에 가담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그는 "강진규, 반금곤, 황정웅 세 사람이 박군을 욕조에 집어넣을 때 (박군의) 발을 든 사실이 있다"라며 진술했다. 그는 "저는 본의 아니게 박군의 다리를 한번 들었다가 박군이 죽게 되어 억울한 마음이 있다"라며 "저는 시키는 대로 거들었을 뿐이고... 저는 근무한 지 3일밖에 안됐고, 같은 반도 아닌데, 그날 일찍 출근한 이유로 가담하게 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토로했다.

특히 이정호 경장은 물고문 외에 구타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박 검사가 "조한경과 강진규가 조사실에 들어와서 무엇을 했냐?"라고 묻자, 이 경장은 "조한경이 화를 버럭 내며 의자에서 일어나 '혼 좀 나봐야 알겠어, 여기가 어딘 줄 아냐?'고 하더니 박군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가슴을 2회 정도 쳤다"라고 답변했다. 

이에 박 검사는 "조한경이 주먹으로 박군의 가슴을 때리던가요?"라고 캐물었고, 이 경장은 "주먹인지 손바닥인지 기억나지 않으나 아무튼 2회 정도 가슴을 푸싱했다"라고 답변했다. "물고문 외에 구타행위는 없었다"라는 검찰의 1차 수사 결과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진술이었다. 하지만 박 검사의 추궁은 거기서 그쳤다. 박 검사는 1차 수사 때도 강 경사에게 "위와 같은 폭행(물고문 과정에서 이루어진 폭행)말고 박종철 때리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폭행한 일이 있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강 경사가 "조한경이 박종철을 때린 것을 보지 못했다"라고 하자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2차 수사에서도 '윗선 보고-개입'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박 검사는 2차 수사에서도 '윗선 보고-개입'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강진규 경사와 반금곤 경장 신문에서는 '윗선 보고-개입'과 관련해 제대로 된 질문은 없었다. 2차 수사를 통해 사건 축소·은폐를 확인한 이상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로 사건을 축소·은폐하자고 결정한 '선'이 어디인지, 이러한 모의가 '어디'까지 보고됐는지를 추궁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 검사는 이정호 경장 신문에서 "상사들을 만난 일이 있는가?", "허위진술을 하도록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가?"라고 물었지만, 이 경장이 "없다", "조한경이 짠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라고만 답변하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황정웅 신문에서도 "(최초) 보고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상급자들은 알고 있었나?", "사고 후 상급자들과 이야기한 일이 있나?"라고 묻는 데 그쳤다.

다만 박 검사는 황정웅 신문에서 처음으로 '전석린 단장'(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을 입에 올렸다. 그는 황 경위가 '계장'이나 '과장' 정도만 언급하는 데 그치자 "위 상급자들 외에 전석린 단장이나 그 위상급자를 만난 일이 있느냐?"라고 추궁했다. 이것도 이틀 전(5월 21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사건조작을 담당하고 연출한 사람들은 전 대공수사 2단장 전석린 경무관, 5과장 유정방 경정 등이었다"라고 폭로한 데 따른 '형식적 확인'에 불과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황 경위가 "없다"라고 답변하자 박 검사는 더 이상 '윗선 보고-개입을 캐묻지 않았다. 검찰은 사건 축소·은폐에 깊숙이 관여한 강민창 전 본부장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1988년 2월 강 전 본부장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기소해 '윗선'과 관련한 부실수사를 스스로 인정했다.   

1·2차 수사기록을 보면 박 검사가 과연 '윗선 보고-개입'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결국 1차 수사가 경찰의 수사결과를 그대로 추인하는 정도에 그친 것처럼, 2차 수사도 김승훈 신부의 폭로내용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박처원 치안본부 5처장과 유정방 5과장, 박원택 5과 2계장을 범인도피죄로 구속한 정도가 성과라면 성과였다(5월 29일 2차 수사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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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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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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