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력이라도 몸에 지닌 듯 봄이라고꽃대를 쏙 올려 놓는다- 이상옥의 디카시 <야생란>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산길을 오르다보면 흔하게 만나는 것이 야생란이다. 이름 있는 산에는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그런 관계로 야생란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야산에는 아직도 야생란이 많이 자생하고 있는 듯하다.
나도 산책 삼아 고향집 앞·뒤 산을 오르다 보면, 흔히 보이는 것이 있다. 겨울산인데도 푸른 자태로 나름 위엄을 지키며 자라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만 했다. 하지만 그게 야생란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봄이 되니, 그냥 일반 풀이긴 하되 좀 특이한 녀석이라고만 예사로 보았던 그 녀석들이 일제히 꽃대를 올리는 게 아닌가. 그제야, '아 이게 바로 야생란이구나'하며 나름 생각을 달리 하게 됐다.
야생란이 꽃대를 올리고...
지난 8일 오후, 애견을 데리고 뒷산에 올랐을 때 본 것이다. 어떤 녀석은 이미 벙그러졌다. 하도 기특하고 신기해서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실상, 나는 집안에 난분을 키우며 꽃대 올라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 봄에는 한 녀석도 꽃대를 올리지 않는다. 내가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탓이겠지만, 나름대로 영양제도 공급했다. 비좁은 실내지만 그 녀석들이 얼지 않게 보살폈는데 웬걸 꽃대 하나 피우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야생란은 스스로 추위를 견디며 봄이라고 어김없이 꽃대를 올리고 있는데 말이다.
요즘, 자녀들을 너무 과보호하는 부모가 가끔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간혹 유약한 젊은이들도 있다. 그들은 온실 속에 크는 난처럼 스스로 비바람도, 햇볕도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아 새삼 우려스럽다. 너무 시련 없는 환경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늘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다들 은퇴한다고 이슈가 되고 있다. 정말 이슈가 될 만하다. 그들은 전쟁 직후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대부분 야생란처럼 스스로 고난을 이기며 꽃을 피워온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 맞다.
일부러 고난을 자처할 필요는 없겠지만, 시련이 있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는 것도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