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칸보에서 무로도로 가는 트롤리 버스
우리는 다이칸보에서 다시 트롤리버스를 타고 무로도로 간다. 이 버스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을 달리는 버스다. 왜냐하면 무로도의 해발이 2450m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 버스는 3.7㎞의 거리를 10분에 달린다. 중간에 오고 가는 버스가 교차하기 위해 잠깐 쉰다. 또 이 버스는 전기로 운행하기 때문에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무로도역은 지하에 있어 바로 기념품점과 연결된다.
우리는 기념품점을 지나 무로도 호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오뎅국에 밥과 반찬이 갖춰진 식단인데, 음식이 그렇게 맛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높은 산위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고맙다. 밥을 먹으면서 밖을 내다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그러다 잠깐 전망이 좋아지기도 한다. 정말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무로도다이라로 나갈 예정이다.
무로도다이라로 나가기 전 나는 잠시 다테야마 자연보호센터에 들른다. 그곳에 무로도를 중심으로 한 다테야마 산악지대의 자연과 생태가 전시·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다테야마 절경 사진이 부착되어 있고, 다테야마의 상징동물 뇌조(雷鳥)의 박제와 모형이 곳곳에 전시되고 있다. 다테야마를 노래한 하이쿠 구절이 영상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무로도다이라를 걷다이제 우리는 안개 자욱한 무로도다이라로 나간다. 무로도다이라는 말 그대로 무로도에 펼쳐진 초원이다. 이곳 초원은 여름에 상승기류를 받아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우리는 1시간 정도 초원을 산책할 생각인데, 안개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 무로도다이라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다마도노 용수(玉殿の湧水)다. 다마도(玉殿)은 옥황황제의 궁전이라는 뜻이니 천상을 말하고, 용수(湧水)는 용출하는 물이니 지하수를 말한다.
이 물은 수온이 2-5℃이며, 1일 분출량이 2만t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무로도 호텔과 버스터미널의 음료수와 생활용수로 사용된다. 그리고도 양이 남아 생수로도 판매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산책의 방향을 미쿠리가이케(ミクリガ池) 쪽으로 잡는다. 그것은 미쿠리가이케가 무로도에서 가장 큰 호수이기 때문이다. 연못의 둘레는 631m, 깊이는 15m이다.
날씨가 좋으면 이 호수에 다테야마가 비친다고 하는데, 오늘은 안개 때문에 어림도 없다. 그나마 안개가 조금 걷힐 때 호수의 모습을 완전하게 볼 수 있다. 호숫가에는 한창 여름인데도 만년설이 보인다. 또 물가라 그런지 야생화들이 더 청초하게 보인다. 대표적인 야생화로 흰색 꽃잎에 노란 꽃술을 가진 칭구루마(チングルマ)가 있다. 그리고 노랑 꽃잎에 노란 꽃술을 한 시나노킨바이(シナノキンバイ)도 보인다.
더 귀한 꽃으로 이와이초(イワイチョウ)가 있다. 이 꽃은 에델바이스와 유사한 점이 있다. 흔한 꽃으로는 산수국과 원추리가 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꽃을 더 보았는데 이름을 잘 알 수가 없다. 호수를 지나면 길은 무로도 산장으로 이어진다. 무로도는 원래 종교적인 건물로 에도시대에 세워졌다. 그래서 기도와 수도를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묵어가는 사당 겸 숙소였다.
다시 내려가는 길은 무로도다이라 광장으로 이어진다. 그곳에는 위령비가 있다. 이제 무로도 버스터미널로 가 다테야마 고원버스를 타기만 하면 된다. 나는 다시 자연보호센터에 들러 <중부 산악국립공원 다테야마·구로베>, <무로도다이라의 식물>, <다테야마 신앙의 역사>라는 책을 산다. 이 책에 보니 다테야마에는 뇌조, 솔개, 동고비 같은 조류, 담비, 산양, 곰 같은 포유류, 나비 종류도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날씨 때문인지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덴구다이라와 미다가하라로 내려가는 길
고원버스는 자욱한 안개를 뚫고 비조다이라를 향해 내려간다. 중간에 들르는 곳이 해발 2300m의 덴구다이라(天狗平)와 1930m의 미다가하라(彌陀ケ原)다. 5월 중순까지는 덴구다이라로 가는 도중에 도로 양쪽으로 높이가 10m에 이르는 눈의 계곡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들판이 온통 키 작은 나무와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을 제대로 보려면 차를 내려 1시간 정도 산책을 해야 한다.
덴구다이라에서 미다가하라까지도 걸어서 1시간 내외면 도착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길을 이치노다니미치(一の谷道), 시시가하나(獅子ヶ鼻)라 부르는데, 그것은 다테야마 숭배자들이 이 길을 수행을 위해 걸었기 때문이다. 주변 습지에는 못이 있어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고도를 낮추면서 주목과 같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차는 이제 비조다이라를 향해 내려간다. 중간에 우리는 잠깐 폭포와 스기(杉木)나무를 바라본다. 폭포는 높이가 350m나 되는 쇼묘폭포(称名滝)로, 일본 제일의 낙차를 자랑한다. 호넨(法然)스님이 이곳을 지나갈 때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나무아미타불처럼 들렸다고 한다. 이에 스님은 그 소리를 염불소리라고 이름 붙이게(称名)되었다. 이 칭명을 일본식으로 읽으면 쇼묘가 된다.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봄에는 쇼묘폭포 오른쪽으로 또 하나의 폭포가 나타나는데 이를 하노키폭포라고 한다. 그리고 장마철에 유량이 많아지면, 하노키폭포 오른쪽으로 소멘폭포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노키폭포의 낙차는 500m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지금은 쇼묘폭포만 눈에 보인다. 8월이라 장마철이 지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발 1280m의 다키미다이(瀧見台)에서 폭포를 바라보기만 하고 내려간다.
이곳에는 직경이 10m, 높이가 30m에 이르는 거대한 스기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보질 못하고 내려간다. 스기나무가 이 정도 되려면, 수령이 1000년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스기나무는 일명 늙지 않는 나무(不老樹)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다시 10여분을 내려가면 해발 977m의 비조다이라에 이른다.
안녕! 비조다이라
비조다이라는 미녀의 평원이라는 뜻인데, 미녀라는 지명이 비조스기(美女杉)에서 나왔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1300년 전 한 젊은이가 다테야마 지역을 개척했다. 그에게는 정혼한 여인이 있었으나 다테야마가 금녀구역인지라 함께 살 수 없었다고 한다. 다테야마를 찾아온 여인은 할 수 없이 발을 돌려 산을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다 현재 비조다이라 근처에서 한 그루의 스기나무를 만나게 되었다.
여인은 스기나무를 향해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한다.
"아름다운 스기나무여! 그대에게 마음이 있다면, 나의 이 간절한 기원을 들어주세요."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여인의 소원이 이루어져 정혼한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스기나무를 '비조스기'라 부르게 되었고, 비조스기가 있는 이 지역을 비조다이라라고 부르게 되었다.
해발 977m인 비조다이라역에서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475m 다테야마역으로 내려간다. 케이블카는 1.3㎞의 거리를 7분 만에 내려간다. 다테야마 케이블카는 그 역사가 60년이나 되었다. 1954년 8월 1일 다테야마역-아와스노(粟巣野)역간 철도가 개통되었기 때문이다. 다테야마역에서 도야마역까지는 34㎞로 60분이 걸린다. 그러나 우리는 도야마로 가지 않고 오쿠히다(奧飛驒) 산속으로 들어간다.
히다는 히다산맥의 서쪽지방으로, 현재는 기후(岐阜)현의 북부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쿠히다는 히다의 동쪽 더 깊은 산중에 있다. 이곳을 가려면 471번 지방도를 따라 다카하라가와(高原川) 상류로 올라가야 한다. 오쿠히다는 3000m급 호다카다케(穗高岳)에서 노리쿠라다케(乘鞍岳)로 이어지는 히다산맥의 서쪽에 있고, 산맥 동쪽에는 나가노현의 가미코지(上高地)가 있다.
의미 있는 사실은 이 산맥 아래에서 태평양판과 북아메리카판이 만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단층이 불안해 화산활동이 심하고, 주변에 온천이 많다. 우리가 찾아가는 오쿠히다 역시 온천향이다. 그곳 신히라유(新平湯)에 있는 야구시노유(薬師のゆ)에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