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대법관에 임명제청된 직후 서기호 정의당 의원실은 박 후보자가 검사 시절 맡았던 사건들을 검색했다. 박 후보자가 과거에 사건들을 공정하게 처리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서 의원실은 그렇게 정보를 검색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축소·은폐 사건(아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한 검사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인사청문회 자료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사실이었다. 지나쳤을 '박상옥 청문회'의 최대 쟁점이 이렇게 살아났다.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로서의 책임의식도 없었다"11일 오후 3시 30분 의원실에서 만난 서기호 의원은 "박 후보자가 수사팀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라며 "부(部)에서 수사하다 보면 주임검사가 있고, 그 외 검사는 주임검사를 보조하는데 '수사팀'의 일원이 되면 각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라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박 후보자는 1차 수사 때 물고문경찰관인 강진규 경사를 전담해서 수사했고, 나중에 물고문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진 황정웅 경위와 반금곤 경장뿐만 아니라 박종철 열사 하숙집 주인과 그의 가족, 서울대 선·후배 등 사건 관계자들과 주변인을 두루 조사했다"라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차 수사팀(1987년 1월 20일-23일)과 2차 수사팀(1987년 5월 20일-28일)에 모두 참여했고, 물고문 경찰관 5명이 기소된 이후에는 공소유지 검사까지 맡았다. '4년차 검사'라고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서 의원은 "그러니까 '말석검사'였다는 해명은 사실과 맞지 않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그는 "박 후보자는 1987년 대학생들의 시위를 민주화 요구라기보다는 좌익용공세력들이 선동한 것으로 봤다"라며 "그런 연장선상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좌익용공세력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재수없게' 사망사건이 발생한 것 정도로 인식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과연 박 후보자가 대법관에 임명제청됐을 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렸을까 싶다"라며 "박 후보자의 기억 속에는 재수없이 발생한 사건, 즉 박종철만 안 죽었다면 (고문 등 가혹행위가) 드러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건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 의원은 "당시는 죽지 않으면 고문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재수없었던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 같다"라며 "게다가 같이 수사했던 신창언 부장은 헌법재판관으로, 안상수 검사는 정치인(한나라당 대표 등)으로 출세했기 때문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자신에게도 문제가 안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라고 꼬집었다.
서 의원은 "박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한국사회의 대전환점을 마련할 사건으로도 보지 않았고, 고문으로 사람을 죽인 반인도적 범죄를 철저하게 수사하지도 못했다"라며 "역사적 책임의식이나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로서의 책임의식도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부실수사 드러났는데 부끄러워하지 않아"
또한 서 의원은 "독일의 경우 전쟁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나치에 협력했던 사람들까지 처벌했다"라며 "반면 한국에서는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친일행위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졌는데, '말석검사'라면서 박 후보자의 편을 드는 것이 바로 그러한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대법관은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야 하는 자리다"라며 "그런데 박 후보자는 과거에 실체적 진실을 덮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대법관으로서 기본자질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설사 할 수 없이 부실수사했다고 해도 그것을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대법관 후보자로 나서면 안된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서 의원은 "헌법에서조차 근절 의지를 드러냈을 정도로 고문은 반인도적 범죄인데 박 후보자는 그런 고문치사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지도 않았고, 철저하게 수사할 의지도 없었다"라며 "(부실수사가 드러났는데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법관으로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의원은 "박 후보자는 최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검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최선을 다 해서 수사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그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진실이다"라며 "그 뒤에 나온 화려한 미사어구는 (부실수사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말이다"라고 말했다.
서 의원은 "또한 대법관은 외부로부터 독립해 양심과 헌법, 법률에 따라서 판단해야 하는데 과거에 그렇게 외부 압력에 굴복해 수사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과연 대법관으로서 외압에 굴하지 않고, 독립적인 재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라며 "그런 경력을 가진 사람이 대법관이 되는 것은 국격의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서 의원은 "공교롭게도 박 후보자는 지난 2009년 촛불재판에 개입해 사퇴압력을 받았던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으로 제청됐다"라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재판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검찰과 법원이 정치권력에 예속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재판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대법관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자의 하자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책임이기도"또한 서 의원은 대법관 후보자 추천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장이 심사대상으로 올린 인사들만 심사하고, 후보자 추천절차도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라며 "추천위원 10명 가운데 6명이 대법원장의 의중을 따를 수밖에 없는 위원이고, 의사종족수도 과반수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 서 의원은 최근 ▲ 추천위원 가운데 선임 대법관과 일반 법관 배제 ▲ 추천 과정 공개 ▲ 의사정족수 3분의 2 이상 ▲ 법적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추천받은 사람 모두 심사대상 포함 등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서 의원은 "대법원장이 미리 점찍은 후보와 그렇지 않은 두 명의 후보를 형식적으로 올리기 때문에 추천과정에서 후보자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라며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수사검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도 (대법원장이나 추천위가) 몰랐다는 것은 자체 검증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 의원은 "대법관 후보자를 대법원장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니까 대법원장의 역할이 큰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임명 제청 과정에서 청와대와 협의하는 것이 필수다"라며 "심지어 협의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먼저 제청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전했다.
서 의원은 "최종적인 임명권자와 인사청문회 요청자도 대통령이어서 청와대에서 거절하면 대법원이 난처해지니까 청와대에서 거부하지 않을 인사를 제청하거나 청와대의 제청 요구를 받아들인다"라며 "그런 점에서 박 후보자의 하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서 의원은 인사청문회 개최 불가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박 후보자는 의혹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치기 전에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대법관 자격이 없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청문회를 거칠 필요도 없이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 후보자가 빨리 사퇴하는 것만이 역사와 국민 앞에 진정으로 사과하는 길이다"라고 거듭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서 의원은 "인사청문회를 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불가피하게 인사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면 공범 3명의 존재를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형식적으로 수사했다는 것을 검증하겠다"라며 "검찰이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하고 있지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공개했던 수사기록을 다운받아서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라고 '강도높은 검증'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