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두부를 찾았다. '두부는 어딨지?' 두부를 찾아 헤매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두부를 찾고 있기는 하지만, 두부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두부는 맛이 없는 것 같다고. 두부가 참 맛있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긴 하다.
그때 내가 먹은 게 두부였는지, 푸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던 사촌 동생 집에 며칠 머물 때, 동생은 두부인지, 푸딩인지를 모를 것을 내게 선물을 주듯 내밀었었다.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무지 맛있으니 얼른 먹어보라며. 아마 두부였을 것이다. 푸딩이었다면 그렇게 놀라진 않았겠지. 두부가 너무 부드럽고 달콤해서 놀랐던 거겠지.
그때 먹은 그 달콤한 두부를 떠올리며 나는 두부 진열장 앞에 섰다. 생각보다 두부가 참 많았다. 모양도 다양했다. 하지만 모양과 상품명을 조금씩 달리했을 뿐 큰 틀에서의 두부는 네 종류로 나뉘는 듯 했다. 부침 두부, 찌개 두부, 순두부, 연두부. 이렇게 보니 새로울 것 없는 두부들이었다. 두부에 문외한인 내게도 익숙한 두부들일 뿐이었다. 조금 실망스러웠다.
먹어보지도 않고 새로운 게 없다니? 그리고 실망스럽다니? 하며 두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론할 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말을 다시 해야겠다. 내가 가본 대형마트의 두부 진열장에서는 그 어떤 세계관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나는 실망한 것이다. 그렇다. 나는 두부에서 세계관을 찾고 있었다. <오토코마에 두부>를 읽은 후유증이었다. 두부 진열장을 기웃거린 이유 역시 이 책 때문이었다.
두부 진열장 기웃거리게 한 책 <오토코마에 두부>
세계관이 뚜렷한 사람을 만나면 입에 침이 고인다. 그의 말을 계속 듣고 싶어 안달이 나서이다. 궁금즘과 부러움이 한데 섞인 침을 티나지 않게 꿀꺽 삼키며 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머리 속에선 연신 질문이 쏟아진다.
뻥 뚫린 일차선 도로 같은 이 세상에서 그는 어떻게 자기 자신만의 오솔길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걸까. 대부분이 일차선 도로를 걷고 있는데 그는 무슨 용기로 홀로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일까. 오솔길 위에서 그는 얼마나 자주 고군부투했던 것일까. 오솔길 위에서의 삶, 행복할까.
'오토코마에 두부점'의 사장 이토 신고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자기 자신만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고, 두부에 그 세계관을 (조금은 억지로) 심어 넣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게 사람들에게 먹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세계관인데도. 두부에 대고 아래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도.
조니, 언제나 너는 바람에 나부끼고 있구나. 먼 곳을 응시하는 너와 언젠가 마주앉아 이야기하고 싶다. 바람에 나부끼고 있으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조니'는 두부이다. 풀네임은 '바람에 나부끼는 두부장수 조니'. 정확히 말하자면 조니는 연두부이고, 바게트 빵을 반으로 가른 모양의 용기 속에 담겨 있다. 두부 이름이 '바람에 나부끼는 두부장수 조니'인 것이 언뜻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두부에 무슨 이름이 있느냐고 궁금할 수도 있겠고.
두부 진열장에 가본다면 모든 두부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테면 '고소한 두부', '맛있는 콩두부', '부침 두부' 등과 같이. 이런 이름처럼 조니의 이름도 '바람에 나부끼는 두부장수 조니'인 것이다. 조니가 먹고 싶은데 조니를 찾을 수 없으면 마트 직원에게 이렇게 말하면 된다. '조니는 다 떨어졌나요?'
조니는 평범한 두부가 아니다. 캐릭터도 있는 두부니까. 캐릭터 조니는 '오토코마에 두부점'의 교토 공장 앞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외투를 입고 낭만에 젖은 채 허세 가득한 모습으로 서있다. 어딘가를 응시하면서. 내가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두부라는 자부심을 안고.
이토 신고는 1993년, 스물네 살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산와토유 식품에 입사한다. 산와토유 식품은 싼 가격의 두부를 대량생산하던 회사였다. 이토 신고에게는 회사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부를 만들고 있으면서도 'oo식품' 회사라고 하는 것이 영 거드름 피우는 모습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특성 없는 두부 맛도 불만이었다. 자고로 모든 것은 개성이 있어야 제맛인데. 하지만 지금 막 입사한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그의 회사는 매일 똑같은 두부만 찍어냈고, 그 사이 두부 회사들은 대형 유통업체의 하청 업체로 전락하고 있었다. 하청 업체로 전락한 두부 회사들은 대형 유통업체가 자체 브랜드, 즉 PB 상품을 내놓기 시작함에 따라 유통 업체가 요구하는 두부만을 만들어야 했고, 가격 경쟁에 내몰리며 점점 더 싼 가격에 두부를 제공해야 했다. 두부 회사들은 기로에 놓였다. 파산할 것인가, 변화할 것인가.
1998년, 상품개발 담당자가 된 이토 신고는 변하기로 마음 먹는다. 싼 두부를 마구마구 찍어내는 대량 생산 이미지를 탈피하고, 맛도 좋고 눈에도 확 띄는 개성 있는 두부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그는 제조 과정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뜯어고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을 재차 숙고하는 과정을 거쳐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두부들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한다.
가격은 일반 두부의 세 배이고, 겉 표지엔 '고소한'이나 '부침'이 아닌 '男'을 찍어 넣은 촌스러운 두부에 사람들은 서서히 반응을 보인다. '오타마 두부', '도카타마 두부', '돈도코 두부'를 거쳐 탄생한 두부가 바로 '오토코마에 두부'. 오토코마에의 뜻은 '남자다운'이다. 즉 두부의 이름이 '남자다운 두부'라는 것이다. 왜 오토코마에인가?
나는 초등학교 때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기면서 외모에 관심이 많아졌다. 하루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곱게 가르마를 냈다. 그 모습을 본 부모님은 '어이, 오토코마에!"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잔뜩 멋을 낸 귀여운 어린 아들을 향해 "우와, 남자다운데" 하고 놀린 것이다. 바로 그 느낌을 두부에 담고자 했다."우와, 남자다운데"라는 느낌을 왜 두부에 담고자 했을까. 그냥이란다. 그냥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뭔가 허세스러우면서도 촌스럽고 또 그러면서도 멋진 그런 느낌. 이후 '아쓰아게 형님'과 '간모 형님'을 거쳐 만들어진 두부가 바로 '바람에 나부끼는 두부장수 조니'이다. 두부는 담백해야 한다는 통념을 깡그리 무시한 달달한 두부.
광고하지 않아도 입소문 탄 조니, 비결은?인위적인 달달함이 아닌 창의적인 제조 방식을 통해 두유 그 자체에서 뽑아낸 달달함을 내세운 두부였다. 그런데 왜 하필 '조니'인가? 이 역시 그냥 감각적인 문제란다. 조니라는 발음이 아무 이유 없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니 열풍은 시작됐고, 일일 출하량 1만 모를 훌쩍 넘기더니 어느새 10만 모가 되었다. 광고를 일절 하지 않았음에도 고객들의 입소문을 탄 조니는 일본 방방곡곡을 여행하게 된 것이다.
이즈음 산와토유 식품에서 독립한 이토 신고는 오토코마에 두부점을 설립한다. 그리고 더욱 더 박차를 가해 그만이 만들 수 있는 두부, 즉 세계관을 지닌 두부를 생산해낸다. 두부 하나하나에 캐릭터를 심어 넣고, 캐릭터 상품을 출시하고, 홈페이지에서는 두부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연재한다. 그는 책에서 "오토코마에 두부점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세계관이란 결국 그 자신의 세계관이었다. 오랜 시간을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했던 외로운 남자의 세계관.
어려서부터 남과 다른 것을 추구했던 이토 신고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들어가서도 괴롭기만 했다고 한다. 언제나 극소수파에 속했던 그인지라 자기 자신을 꽁꽁 숨긴 채 다수파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억지로 버텨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세상은 너무나 재미없었고, 또 싫은 공간이었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듯 주류 세상에선 편치 않았던 그이기에 그 어떤 두부도 따라올 수 없는 개성만점의 두부를 만든 두부 회사 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남과 같을 수 없었던 그였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취였다. 그는 말했다.
이제는 '남과 달라도 괜찮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에 한결 마음이 편하다.남과 다른 것이 쉽게 용인되지 않는 사회. 혼자만 두드러지는 것을 두려워해야만 하는 사회.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렇다. 그래서 영 재미없게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원망하고 또 때론 실망하면서. 더 많게는 이런 세상에 익숙해지지 않는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흔들리면서.
오토코마에 두부점의 두부를 먹으며 이런 이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귀를 쫑긋 세운 채. 침을 꿀꺽 삼키며. 이런 이들이라면 자기 자신만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을 것 같기에. 자기 자신만의 세계관을 지닌 이들은 누구나 매력적이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터프한 두부를 먹으면 조금은 더 터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기에. 아닐지라도 맛이 있으면 그만이기에.
덧붙이는 글 | <오토코마에 두부>(이토 신고/가디언/2011년 12월 30일/1만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