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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에서의 <세월호 유가족 초청 강연회> 모습
뉴욕에서의 <세월호 유가족 초청 강연회> 모습 ⓒ Dami Choi

어느덧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온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가 9명이 있다.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이 지금 국민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 하던 중, 지난 3월 14일 토요일 저녁 <세월호 유가족 초청 강연회>가 뉴욕 플러싱의 타이완 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회는 희생자 및 실종자들을 위한 묵념, 세월호 참사 브리핑, '4.16 잊지 말아요' 동영상 상영, 유가족 소개, 유가족에게 직접 듣는 '세월호의 진실'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객과 유가족의 질의, 응답시간이 있었다.

지난 9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을 방문한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게 물었듯이, 330여일이 지나는 동안 세월호 문제는 얼마나 진척이 됐을까? 유가족 대표로 오신 어머님 두분과 자리를 꽉 메운 다양한 연령대의 참석자들이 3시간 내내 진지하게 이어갔던 이야기 가운데 일부를 옮겨 본다.

 세월호 유가족, 동혁군과 경빈군 어머니
세월호 유가족, 동혁군과 경빈군 어머니 ⓒ Dami Choi

관객과 유가족의 질문과 대답

- 골든타임에 해경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구조장면을 보여줬다. 선진국 대열에 있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그렇게 열악하고 무능한 해경의 모습이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 김동혁 군 어머니 김성실님(이하 김) : "세월호 참사의 앞과 뒤를 엮어보면 다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에 어른들의 책임이 있다. 생각을 해야 할 사람, 행동해야 할 사람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절차와 원칙을 따지느라 구조를 못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조사위에서 밝혀내어 처벌할 것도 절차와 원칙대로 해야 한다. 피해자 지원에 관한 논의도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진상규명부터 하고 난 후에 의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이건 그냥 정부의 잘못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책임이다라고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보상은 지금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들과의 연대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김 : "600여 개의 단체, 그리고 세월호 국민대책회의가 있다. 처음에는 여기에 참여하면 종북이니 좌파니 이런 취급을 받으니 나가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다. 여기 뉴욕 세사모처럼 국내에서는 노란손수건 등 각 지역에서 우리를 위해 모여줬다. 그걸 보면서 이렇게 다같이 하면 뭔가가 될 거라고 느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덕분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감사하다. 물론 강력하게 싸워야 할 때 그러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점점 발전되고 변하고 있다. 우리도 변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영혼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느낀다. 언젠가는 큰 물결이 일거라고 생각한다."

- 세월호 성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고 임경빈 학생 어머니 전인숙님(이하 전) : "1200억 정도 들어왔다, 어느 단체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가족들은 성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지원 배보상 시행령 초항이 나왔다. 거기에 배상금의 일부분을 성금으로 채운다고 적혀있었다. 국민들이 국가에게 낸 성금이 아닌데 그 성금으로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보상을 충당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정말로 컨트럴 타워의 뜻을 몰라서 어머니들께 해석을 부탁드린다. 컨트럴 타워가 무엇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7시간동안 사라졌고, 청와대는 컨트럴 타워가 아님을 스스로 밝혔다. 그렇다면 이런 재난이 났을 때 국민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어머니들이 답을 줬으면 좋겠다.
김 : "질문 속에 답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4월 16일 이전의 국가는 믿을 만한 국가였다. 왜냐하면 내가 당해보지 않았으니까…. 생각해 보면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의식이었다. 우리가 각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다 잘 될 수 있는 나라가 될 거라고 여기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국가는 국가의 역할을 하지 않았고 국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보다는 조작과 은폐를 거듭하는 국가를 가만히 보고만 있는 국민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참사가 났고, 그 희생자가 내 아들 동혁이였다."

- 4월 16일 이후로 고국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 특히 교회에 대한 실망이 제일 크다. 종교계의 입장은 어떠한가? 종교계와의 연대와 협조는 어떠한가?
김 : "큰 교회에서는 도와주지 않더라. 작은 교회들은 많이 도와주고 있다. 교회뿐만이 아니다. 정토회에서도 서명 등 많이 도와주고 있다. 성공회대 학생들이 청운동에 와서 "예수님이 나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 옆에 있다"라는 말을 했다.

지금 이 자리에 그분이 계시다고 해서 내가 "그럼 하나님, 하나님이 가장 지금 힘없고 약한 자가 누구인지 봐달라"고 했다. 동혁이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던 아이였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은 동혁이가 하나님에게 꼭 필요하니까 데려갔다고 했다. 분명히 그 계획이 어머니 눈앞에 보일 거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 보인다. 동혁이 만나면 이야기 하고 싶다. 너 만나서 정말 행복했다고. 그리고 이런 일 내가 겪는 거 원망 안 한다고."

- 젊은이들이 SNS 등을 활용해서 많이 알렸으면 좋겠다. 유가족들이 내년에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좀 더 글로벌하게 이슈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김 : "여러분 너무 고생 많이 하는 걸 보았다. 무척 감사하다. 여러분의 나라가 이게 세월호 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년에도 오라고 했지만, 올해 4월 16일 이전에 배가 인양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진상규명이 한창 이뤄져서 다시 왔을 때는 제가 여러분을 위로 할 수 있는 위치였으면 좋겠다."

전 : "국내에서 젊은 친구들도 홍보하고 있다, (잠시 멈칫) 지금 내가 이렇듯 저희 가족이 자주 이렇다. 자꾸 길을 가다가 잃는다. 좋은 말씀 잘 들었지만 소리를 잘 낼 수가 없다. 맞서 싸울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랑 이렇게 같이 해주는 소리 없는 힘이 나중에 더 힘을 발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소리를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 말고 기운 잃지 말고 힘내서 같이 가자."

- 작년에는 유가족이 사체를 찾아야 한다며 인양을 막았는데 지금은 인양을 주장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사실인가? 그리고 정부가 인양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전 : "사고가 나고 진도에 가서 7시간이 지난 이후에 그날 저녁에 이 정도면 아이들이 살아 있을 수가 없으니 배를 인양해달라 했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학생 부모들이 반대를 해서 인양을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인양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인양하기 전에 아이를 꺼내고 싶다는 부모가 있어서 다같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유가족은 증거가 그 안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인양을 하자고 하는데 정부는 계속 미루고 있다. 그러면서 이상한 기사가 많이 나가고 세월호 피해자 가족이 세금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 돌고. 그러다 보니 국민들이 세월호 때문에 세금 피해를 본다는 생각까지 갖게 됐다. 유가족은 쓴 세금이 없다. 국민이 다같이 함께 이 상황을 헤쳐 나갔으면 좋겠다."

- 특위가 잘 하고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지금 새누리당이 걸고넘어지는 게 예산 문제다. 120억이 많다고 깎였다. 그리고 회의 중에 한두명이 나가기 시작하더니 5명이 나갔다. 그래도 12명이 남아서 안건에 대한 결정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다. 그런걸 보면서 누구는 차라리 유가족인 우리가 하면 안 되냐고 한다. 그런데 국민은 본인들이 잘 하는 걸 해야 한다. 제발 의원들이 방해를 안 했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 후 그리고 일 년...

어머니들은 낯선 팽목항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그날처럼 내 자식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을 곳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무려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말이다.

모두가 알고 있 듯 세월호 참사는 책임자가 없었다. 유가족은 문제해결을 위해 직접 팽목항과 안산, 광화문과 청운동을 포함한 전국을 다녔으며 해외에까지 대국민호소를 하였다. 그결과 다행스럽게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되었다. 이 법에 따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 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위)'라는 기구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월호 특위는 한 여당의원에게 '세금도둑'이라는 모욕을 당하며, 지난 5일에서야 17명의 위원들이 임명장을 받았으나 아직 제대로 출범도 못한 상태다.

제정 후 시행령을 확정, 그 법을 시행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할 국무회의가 결정권이 있는 지금, 정부는 절차대로 라는 이유로 시행령 확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소극적 협조만을 취하고 있다.

또 다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가? 유가족들이 잊지 말아 달라며 아직도 전국에서 국민들을 만나고 그리고 뉴욕으로까지 그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수백의 생명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되던 그날의 순간순간을 또렷하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세월호는 바다 속에 있고 참사의 원인과 책임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사회는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근본적 해결이 이뤄지지 않는 한 실종자와 유가족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아픔 역시 반복될 것이다. 기억만이 시간을 연결해 준다고 한다. 416을 잊지 않는 현재가 우리의 미래를 인양해 줄 것이다. 유가족의 한결같은 바람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억을 준비해야한다. 아래 강연회 중에 어머님이 하신 당부처럼 말이다.

김 : "4월 16일은 중요한 날이다. 피해자 가족의 계획은 분향소에서 추모제를 하고 광화문 쪽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간담회 때 만났던 사람들 다 서울광장에서 만났으면 한다. 그날이 왔을 때 다같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정부가 그때까지 인양을 안 한다면 4월 16일 그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전 : "4월 16일에 우리 다같이 함께 하자."

 세월호 유가족과 뉴욕에서의 강연회 참가자들
세월호 유가족과 뉴욕에서의 강연회 참가자들 ⓒ Dami Choi



#세월호 유가족 미국 초청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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