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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애의 온도> 한 장면. 영화 속 영(김민희)과 동희(이민기)는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
영화 <연애의 온도> 한 장면. 영화 속 영(김민희)과 동희(이민기)는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스물네 살이었다. 내 나이. 그는 스물다섯. 그러니까 '첫사랑'이었다. 순서상 두 번째 연애였지만 분명 첫사랑이었다. 온 세상이 환해 보이고, 심지어 겨울도 춥지 않았으며, 어디서건 그가 가장 커 보이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우리를 갈라놓을 건 죽음밖에 없을 것 같던.

그런데 우라질,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은 고작 7개월 남짓이었다. 나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무척 예민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그러면서 거의 매일, 그렇게 온종일 그와 같이 있는 시간이 점점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떠났다. 낯선 이국으로 혼자. '헤어지자' 말하지 않았지만 맘 속에서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우습게도 비행기를 탄 순간부터 후회했다. 눈물까지 철철 흘리면서. 한 달 후 돌아와 그에게 전화를 했고, 우리는 재회했다. 하지만 이미 '깨진 그릇'이었다.

사랑이란 게 그런 것 같다. 한 쪽이 식으면 다른 한 쪽이 아무리 애(愛)를 끓여도 예전처럼 뜨거울 수 없는. 내가 먼저 식었고, 다시 뜨거워졌을 땐, 그가 식어갔다. 우리는 결국 헤어졌고 1년 후 깨진 그릇을 또 한 번 붙이려다 더더욱 무참히 깨졌다.

거기까지가 둘이서 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혼자만의 사랑이 이어졌다. 목까지 찬 그리움을 술로 삼키고, 취기가 오르면 받지도 않는 전화에 미련을 토해내고, 다른 사람을 만났다가 결국 헤어지고의 반복…….

그렇게 7년이 걸렸다. 잠이 깨는 아침이 무섭지 않고, 그가 생각나도 눈물은 나지 않고, 술을 마셔도 전화를 안 하게 되기까지. 20대의 절반과 30대의 1/3에 해당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단 한 번 떠올리지 않고 달고 뜨거운 연애도 한 차례 했다.  

어느 날, <오마이뉴스> 쪽지함에 도착한 편지 한 통

어느덧 삼십 대 중반. 어느 날 <오마이뉴스> 쪽지함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무심코 열어본 그것에서 너무도 낯설고 익숙한 이름을 보았다. 이기린(가명). 몇 번을 봤다. 그때마다 한참을 봤다. '현실이었구나. 이 사람, 나랑 같은 세상에 사는 게 맞구나' 하면서.

'너는 예전처럼 멋지게 살고 있구나.'

편지의 대략적인 첫 문장이다. 다른 말은 기억나질 않는다. 벌써 1년여 전의 일이고, 얼마지 않아 쪽지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여튼 유치하지만 기분 좋은 내용이었다. 말뿐일지언정 그가 나를, 과거에도 현재도 멋지다 해주는 것이.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이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바일 메신저로 몇 번인가 연락을 주고받았다. 전화번호는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행여 다시 잊히지 않는, 누를 수도 없는 번호로 각인될까 봐.

처음 두어 번은 그가 먼저 연락을 했다. 첫 번째는 각자 하는 일에 관해 얘기했는데 그는 대학 졸업 후 들어간 회사에 계속 다닌다고 했다. 두 번째는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곧 퇴근을 한다는 짧은 내용이었다. 그때 '불금'이란 용어를 모른다는 그를 놀려댔다. "순진한 척 하지 말라"며.

금요일의 문자를 받고부터였다. '그가 아직 혼자일지도 모른다' 생각한 게. 그리고 부끄럽지만, 영화처럼 돌고 돌아 서로를 다시 만나는 상상도 했다. 얼마 후 세 번째 연락은 내가 먼저 했다. 정월대보름 한낮이었을 거다. '오곡밥은 먹었냐'고 물었으니까.

그는 '못 먹었다'고, '어머니도 안 챙겨주신다'고 답했다. 이때 확신했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고. 그러자 마음이 더욱 애틋해졌다. 지난 십수 년의 시간이, 그 안에 겪은 고초들이 무색할 만큼. 나 없이, 나처럼 고독한 나날을 보냈을 그를 떠올리며.

'내가 결혼했다고 말했던가?'

그래서 보다 적극적이고 다정한 말투로 그에 대해 걱정을 했다. 그러자 대뜸 그가 물었다. 

'내가 결혼했다고 말했던가?' 

응? 뭐라고? 뭘 했다고? 뭐라고? …… 말 그대로 뒤통수를 한대 제대로 맞은 기분. 거기에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곧이어 화도 치밀었다. 우연히 내 글을 읽고 쪽지를 보낸 건 그렇다 치자. 추억이 그리울 만한 삼십대 중반의 우리니까.

하지만 금요일 저녁의 퇴근 보고는? 아님 적어도 오곡밥을 먹었냐 물었을 때 어머니가 아닌 부인 얘기를 했어야 자연스럽지 않나? 그때만 말해줬어도 내 착각은 내 안에서 끝날 수 있었고, 나는 수치스럽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리고 분출 시켰다. 저만치 묵혀둔 지난 분노와 설움을 더해, 나도 몰랐던 내 안 한가득 미련도 얹어. 언젠가처럼 내가 아는 가장 못된 말들을 엄선해 벽돌 한 장 길이만큼의 문장을. 그리고는 답장이 올세라 메신저를 차단해 버렸다. 처음 받은 쪽지 역시 그때 지웠다.  

그렇게 끝이 났다. 오래도록 간절히 바랐던 그와의 재회는. 너무 늦게, 너무 빨리,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그가 유부남인 걸 안 이상, 상상 속에서조차 그는 내 사람일 수 없었다. 애틋한 사랑의 기억은 나만의 것이었단 자각이 '웃프게' 밀려왔다.

그런데 말이다. 왜 매번 남김 없이 다 퍼부었다 생각한 순간에 꼭 한 가지가 남는지. 그것은 바로 '후회'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짧게나마 아름답게 사랑은 했지만, 단 한 번도 '우아한 이별'을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또 한 번 옴팡지게 퍼마신 김칫국물을 토하느라 여념 없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하려 한다. 그가 봐도 안 봐도 상관 없는, 다만 내 가장 찬란하고 따스했던 한 사랑을 위한 우아한 작별 인사를.

"기린(가명) 오빠, 나는 지금도 강남역에서 처음 봤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나 살던 동네에 찾아온 당신의 두 번째 모습도, 그날 들은 고백의 말도, 어느 비오는 날 버스에서 내리던 당신도, 어느 날엔 약속한 듯 같은 색 옷을 입고 나와 웃었던 기억도, 나 대신 입은 팔뚝의 화상까지도. 

고백하건대, 지금껏 살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당신과 함께일 때였습니다. 당신이 최고의 남자였다는 의미는 아니지만요. 지난날 우리가 저지른 어리석은 일들은 다음 생애 업으로 돌리고, 내 원망의 말들은 다 잊어주시길. 이 생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끝으로 부디, 이번 정월대보름엔 부인의 정성어린 오곡밥을 드셨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내내."

덧붙이는 글 | '거짓말 같은 이야기' 응모글



#거짓말#첫사랑#옛사랑#우아한거짓말#그때그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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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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