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밥을 두 그릇씩 먹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것도 흰 쌀밥만을 고집한다. 유년시절 겪었던 배고픔과 가난 때문이다. 작은 키에 비쩍 마른 체형도 어렸을 때 밥을 못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릿고개 시절, 홍 지사의 부모님은 장리쌀을 빌리는 대신 홍 지사의 친구 집에서 머슴처럼 무상으로 농사일을 했다. 때로는 어린 홍 지사도 부모님을 따라가 일을 도와야 했다. 그는 "내 또래 친구 집에 가서 머슴처럼 일 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했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앞 은행에서 일했던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전북 부안에 있는 처가에 인사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홍 지사의 빈상(貧相)을 보고 탐탁지 않게 여긴 장인이 결혼을 반대했다. 어렵게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홍 지사에게는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가 됐다. 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검사가 된 뒤에도, 홍 지사는 딸네 집에 놀러 온 장인이 미워서 용돈 한 푼 쥐어주지 않고, 장모만 챙겼다고 한다.
어렵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따지면 이재명 성남시장도 만만치 않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 시장은 가정형편 때문에 성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시계 공장에서 일을 하다 장애를 입었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주경야독(晝耕夜讀)' 하며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쳤고,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수시로 밥을 굶으며 고된 유년시절을 보낸 점이나 나중에 법조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닮은 두 사람의 행보는 정치권에 들어와서 극명하게 대조된다. 특히 아이들의 밥그릇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욱 그렇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늘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던 홍준표 지사는 전국 처음으로 학교 무상급식 보조금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뼛속까지 사무친 가난이 '어린 홍준표'를 철저한 시장주의자로 바꿔놓은 것일까. 홍 지사에게 무상급식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좌파 포퓰리즘'에 불과했다.
입지전적인 인물 홍준표, 이재명의 서로 다른 행보... 왜?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논쟁으로 국면을 끌고 간다는 점에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연상시킨다. 홍 지사가 진주의료원을 강제 폐업시키면서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만성적자' 논리가 역풍을 맞자, '강성노조', '해방구' 등의 자극적인 수사를 동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상급식 지원이 중단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공짜 밥을 먹는다'는 낙인으로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게다가 경상남도가 무상급식을 중단한 돈으로 실시하는 '교육복지카드' 발급 제도 역시 아이들에게 마찬가지의 낙인과 상처를 줄 것이다. 아이들은 가난을 증명해서 발급받은 50만 원짜리 카드로 학습교재를 사고 각종 수강권을 끊어야 한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그 카드를 쓸 때마다 주위의 시선에 위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시장은 홍 지사와 분명한 대척점에 있다. 성남시는 초·중·고교 무상급식 예산을 확대해 친환경 무상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무상급식 중단은) 수혜자들의 집단화로 드러나기 십상인데 사춘기 학생들에게 '가난을 증명하라'며 먹는 밥으로 상처주셔야겠느냐"고 홍 지사를 비판했다.
이 시장은 2012년부터 저소득계층 중·고교생들에게 무상교복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각 학교를 통해 지원하던 교복구입비를 동주민센터를 통해 시가 직접 지원하게 했다. 해당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취약계층이라는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시장은 중학교 모든 신입생에게 교복 구입비를 지원하는 '무상교복' 사업도 4년 만에 다시 추진하고 있다.
공공의료에 대한 관점 차이도 명확하다. 이 시장은 "공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착한 적자'는 감수해야 한다"며 지역 내 10년간의 논쟁을 극복하고 성남시립의료원 건립을 추진했다. 이 시장은 최근 '무상 공공산후조리 사업 계획'까지 발표했다.
복지가 빈민구제와 다른 점은 가난한 사람이든, 잘사는 사람이든 모두에게 공평히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부자들은 안 받고 가난한 사람만 받도록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린 홍준표'가 가난을 선택하지 않았듯, 가난은 사회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아이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또 한 번의 사회적 낙인찍기를 해서는 안 된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이 누려야 할 의무급식이다.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로 편을 가르고, 가난한 아이에게 낙인을 찍어 기죽이는 반교육적 행위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정치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다.
경남 하동의 한 초등학생이 일기에 "무상급식을 안 하는 이유를 말해 달라"고 적었다고 한다. 부자 친구의 집에서 머슴처럼 일을 했던, 점심시간에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웠던 '어린 홍준표'는 이 초등학생의 질문에 뭐라고 답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