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 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기자말
다시 중국으로 떠나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내려앉은 공기가 돌덩어리처럼 발부리에 차인다. 오후 1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미 학기가 시작해 마음이 조급하면서도 졸업반이라 수업이 없어 늑장을 부려도 된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생필품과 옷가지는 사흘 전 EMS(우체국 국제특급우편)로 부쳤는데도 가지고 가야 할 짐이 산더미다. 20㎏을 보내는데 요금이 10만 원이다. 비행기로 배송하니 싸지 않다. 하지만 비교적 속도가 빨라 학교까지 일 주일 정도면 도착한다.
아직 한국 통신사에 연결된 휴대폰이 손에 쥐어져 있다. 유심칩을 빼야 하는데 핀을 가져오지 않아 중국 유심칩으로 바꿔 낄 수가 없었다. 학교까지는 먹통 휴대폰인 것이다. 도착할 때까지 전화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재수 없는 날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였을 줄이야.
선행은 과연 행운을 가져올까?시간이 남아 인천공항 이곳저곳을 거니는데 카트 안에 덩그러니 남은 휴대폰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다. 아마 없어진 것을 알면 꽤 애간장이 탈 것이다. 주워 분실물 센터에 맡겼다. 착한 일이란 생각에 뿌듯해하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비행기는 관제탑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한 시간이 연착됐다. 예상보다 늦은 두 시 반이 되어서야 다롄(大连)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기차역으로 가려면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았다. 진저우로 가는 고속 열차는 다섯 시 전에 끊기기 때문이다. 한 시간 전에는 역에 도착해야 시간이 넉넉하다.
날이 날인지 택시조차 오지 않는다. 발을 동동 구르기를 십여 분. 두 명의 승객을 태운 허름한 택시가 선다. 기차역으로 가는 사람은 타란다. 합승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조급한 와중에도 일단 가격을 물어본다. 나중에 딴말하는 택시 기사가 많기 때문이다.
"아저씨, 얼마에 가는 거예요? 아니면 미터기를 켜고 가는 거예요?""30위안!"뻣뻣한 대답이다. 어쩔 수 없이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출발하자마자 담배를 꺼내 뻑뻑 피우기 시작한다. 짜증이 났지만 한편으로 중국에 왔다는 느낌이 물씬 밀려든다. 도착하니 미터기에 찍힌 32위안을 달란다. 내가 타기도 전에 켜있는 걸 봤지만, 2위안(약 350원)에 말싸움하기 싫어 어금니를 물고 기차표를 사러 향한다. 다행히 오후 4시에 출발하는 120위안(약 2만 1500원)짜리 고속열차 표를 살 수 있었다.
이제 진저우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가면 모든 게 끝인 것이다. 제시간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기차. 승차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순간, 문득 허전함이 느껴졌다. 급하게 짐을 확인했다. 25인치 캐리어, 크로스 가방과 빨간 배낭. 그런데 배낭이... 아무리 생각해도 배낭을 기차 선반에 놔둔 기억이 없다!
없어진 배낭,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기억한 배낭의 모습은 기차역 대기실에서였다. 보통 중국에서 물건을 놓고 오면 잃어 버렸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이미 기차역을 떠나온 지 한 시간이 흘렀다. 망했다! 온몸을 조이던 나사가 일순간에 풀려 버렸다.
배낭에는 이번에 새로 구입한 노트북과 카메라 등의 전자 기기와 화장품, 기숙사 열쇠 등 핵심 물건이 들어 있었다. 나라가 망한 기분이었다. 한국인을 관리하는 선생님께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아직 바꿔 끼우지 못한 유심칩 때문에 휴대폰은 무용지물이다. 한숨을 멈추고 펄쩍 뛰어 승무원에게 달려가 사정 설명을 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녀에게 횡설수설했다.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인상 좋은 승무원은 차분했다. 침착하게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역으로 전화를 걸어 그쪽 서비스 센터에 상황 설명을 해주고 나를 바꿔줬다.
"잃어버린 물건이 빨간색 배낭이라고 했나요?""네! 빨간색 배낭이에요. 제가 대기실에 놓고 기차를 탔어요."배낭 안에 뭐가 들어 있었냐고 묻는다. 노트북과 화장품이라고 답하니 노트북이 하얀색이냐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낭떠러지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기분이다.
"네, 맞아요! 제 거예요!""저희가 보관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오셔서 전화주시고 바로 찾아가세요."다리에 힘이 풀렸다. 인천공항에서 휴대폰을 주워 준 것이 내게 보답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진심으로 '착한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게 뭐라고 나를 교화 시키다니. 어느새 주위에 승무원들이 모여 들어 "아이고... 이 아가씨야"하는 표정으로 빙긋이 웃고 있다. 어쨌든 가방을 찾았으니 '아무렴 어떠냐' 싶었다.
이곳이 제2의 고향임을 일깨워준 고맙고 착한 중국인들
고마운 승무원들은 내가 다시 다롄역으로 가방을 찾으러 갈 수 있게 하나하나 도와주었다. 유심칩을 갈아 끼워 주고 도착해서 서비스 센터에 전화할 수 있도록 휴대폰 요금도 대리로 충전해 줬다. 그리고 다음 역에서 내리면 몇 시에 다롄으로 돌아가는 기차가 있는지 알아봐 주기까지 했다. 심지어 내가 내릴 때 그 역 역장에게 나를 인수인계해줬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혼자 할 수 있었는데 외국인이라 걱정됐나 보다. 역장이 나를 표 사는 데까지 친절히 안내해줬다. 고마웠지만 국제 미아 취급에 약간 창피했다. 다롄역에서도 그 곳 역장이 마중 나와 서비스 센터까지 데려다 줬다. 왠지 VIP가 된 기분이었다. 저녁 8시가 돼서야 다시 가방을 만났다.
"모두 다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다 있어요.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아니에요. 그런데 어디까지 가는 길이었어요?""진저우로 가요.""이런, 다롄에서 진저우로 가는 기차는 모두 끊겼는데 어쩌지... 그럼 이렇게 해요. 지금 택시를 타고 일반 기차역으로 가요. 우선 다른 도시로 가서 진저우로 가는 걸로 갈아타요."
직원은 고속 열차는 모두 끊겼지만, 일반 기차는 새벽에도 운행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한 번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일반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큰 배낭을 메고 20㎏ 캐리어를 종일 끌고 다니니 죽을 것 같다. 손에 물집이 잡히려 했다. 기내식 이후 쫄쫄 굶어 배가 고팠지만, 혀에 모래를 뿌린 듯 음식이 당기진 않았다. 빨리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었다.
일단 표를 사기 위해 창구로 가서 상황 설명을 하고 도착 시각을 물어봤다. 다롄에서 오후 10시 28분 기차로 진저우 근처 도시에 도착하면 새벽 2시 반, 그곳에서 갈아타면 네 시 반에 진저우에 도착이라고 했다.
'새벽 4시 반이라...' 하루 내내 가방 때문에 이러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기차 대기실에서 계속 실성한 사람처럼 '허허허' 웃었다. 결국 새벽 5시가 되어서야 기숙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두 달 만에 찾은 방은 폭탄을 맞은 것처럼 난장판이었지만.
중국 친구에게 이날의 모험(?)을 들려주니 행운아라고 했다. 가방을 놓고 왔는데 다시 찾았다는 것 자체가 운이 굉장히 좋은 것이라고 한다. 친구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재수가 없었던 건지 그 반대인지 헷갈렸다. 분명 생고생을 했는데 운이 좋다니.
논문을 쓰기 위해 다시 돌아온 진저우. 두 달 만에 오니 고향에 온듯 반가운 마음이 든다. 새 학기의 시작치고는 과분한 신고식이었지만, 졸업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라는 경고 같기도 했다. 꿈보다는 해몽이다.
결과적으론 몸은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안겨준 나의 건망증에 아주 약간 고마웠다. 더불어 철 없는 늦깎이 유학생을 위해 동분서주해준 친절한 중국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중국이 제2의 고향으로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