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1912~1954)이라는 영국의 수학자가 있었다. 천재로 알려져 있었지만 무슨 대단한 '공식'이나 '법칙'을 만들어낸 수학자는 아니다.
튜링의 업적은 대부분 2차대전 독일과 영국 사이의 전투와 관련되어 있다. 당시 영국은 세계최고의 암호체계라고 불리었던 독일의 '이니그마(Enigma)'를 해독하지 못해서 고전하고 있었다.
독일의 잠수함 'U-보트'들은 한 달 동안 100척 가까운 선박을 침몰 시켰고, 영국군은 여기에 속수무책이었다. 독일군들이 주고받는 암호를 해독할 수 없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 암호를 해독해낸 인물이 바로 앨런 튜링이다. 독일군들은 기계를 이용해서 암호를 만들어냈고, 앨런은 그 암호를 해독할 기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기계는 현대 컴퓨터의 초석이 되었다. 앨런은 이런 말을 했었다.
"기계를 이기는 것은 기계뿐이다."한 천재 수학자의 삶과 죽음반면에 그의 사생활은 그다지 깔끔하지 못했다. 그는 잘 씻지도 않았고 면도도 하지 않았다. 벨트가 아니라 노끈으로 바지를 묶고 다녔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고 조직의 규율도 모두 무시했다. 대신에 자신의 일에는 무섭도록 몰두했다. 시쳇말로 '미치광이 천재'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동시에 동성애자였다. 1950년대 영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형법상의 범죄였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었고 '성문란죄'로 기소되었다. 그리고 42살의 나이로 자살을 선택했다.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은 바로 이 앨런 튜링의 생애를 추적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1954년의 영국. 형사 코렐은 한 가정집에서 앨런 튜링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 앨런의 옆에는 수학 방정식으로 가득한 수첩 한 권. 그리고 베어 문 사과 반쪽이 놓여 있다.
형사 코렐은 이 사건을 수사한다. 여러 가지 정황상 자살이 분명하지만 그 뒤에 다른 뭔가가 있을 것도 같다. 앨런은 전쟁 당시에 정확하게 어떤 일을 했을까. 혹시 국가안보와 관한 중요한 일은 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닐까. 코렐은 앨런과 관련된 인물들을 만나면서 과거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50년대 영국 사회<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은 전형적인 히스토리 팩션(Fact+Fiction)이다. 작품 속에서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을 함께 뒤섞고 있다. 동시에 사회 분위기도 묘사하고 있다. 1950년대 영국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거의 불치병 환자 취급을 받았다.
앨런 튜링은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했지 이런 사회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다. 앨런은 법원으로부터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복용하라는 처벌을 받는다.
그 복용기간이 끝나자 앨런은 자살을 선택했다. 사과에 독극물을 주입한 후 그것을 베어먹고 침대에 누운 것이다. 2차대전 당시의 업적으로 영국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던 인물의 최후였다.
앨런이 베어먹은 사과는 이후 애플 컴퓨터사의 로고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애플 측에서는 이를 부정하지만, 그만큼 앨런은 현대 컴퓨터의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자살하면서 앨런은 아래와 같은 유언을 남겼다.
"사회는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덧붙이는 글 | <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 조영학 옮김. 박하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