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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서귀포에서 친언니와 함께 '달리네 민박'을 운영하는 김혜영 씨. 김 씨는 지난해 서울에서 12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도전하기 위해 제주도로 입도했다.
서귀포에서 친언니와 함께 '달리네 민박'을 운영하는 김혜영 씨. 김 씨는 지난해 서울에서 12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도전하기 위해 제주도로 입도했다. ⓒ 유성호

봄이 벌써 온 걸까. 전날까지만 해도 쌀쌀하더니, 두꺼운 외투가 거추장스럽다. 8일 오전 9시 30분,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앞. 올레 7-1코스를 함께 걷기 위해 올레꾼들이 모였다.

이들 가운데 파란색 후드티를 입은 여성이 눈에 띈다. 등 뒤에 '제주올레 아카데미 총동문회'라고 적혀 있다. 오늘의 '아카자봉', 김혜영(42)씨다. '아카자봉' 즉 '아카데미 자원봉사자와 함께 걷기'는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운영하는 '제주올레 아카데미' 수료자들로 이루어진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이다.

혜영씨는 "2013년 여성분 혼자 올레길을 나섰다가 변고가 있었다, 그러면서 올레길이 확 침체가 됐었다"면서 "이후 제주올레 아카데미 수료자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함께 걷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올레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아카자봉과 함께 올레길을 걸을 수 있다. 

이날 올레길에는 혜영씨와 함께 올레 아카데미 19기를 함께 수료한 동기 3명 그리고 올레꾼 1명 등 모두 5명이 함께 했다. 월드컵 경기장을 시작으로 엉또 폭포, 고군산, 외돌개까지 이어지는 코스다. 물병을 하나 챙겨들고 같이 길을 나섰다.

"살다보면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 잘 나갔든 못 나갔든"

 '달리네 민박' 한쪽 벽면에는 주인장인 김혜영 씨의 제주도 사랑을 가득 느낄수 있는 사진들로 벽이 꾸며져 있었다.
'달리네 민박' 한쪽 벽면에는 주인장인 김혜영 씨의 제주도 사랑을 가득 느낄수 있는 사진들로 벽이 꾸며져 있었다. ⓒ 유성호

지난해 '입도'한 혜영씨는 현재 친언니와 함께 서귀포시에서 '달리네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올레길을 함께 걸으며, 제주 오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쩌다 모든 것을 버리고 제주로 오게 됐는지 등 흔한 레퍼토리의 질문을 하려고 하자, 혜영씨가 말했다.

"저는 회사 생활 정말 재밌게 했어요. 제주에 대한 특별한 환상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에요. 제가 시니컬한 게 그런 거예요. '잘 나가던 회사를 때려 치우고...' 모든 기사의 서두가 그래요. 살다보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순간이 있잖아요. 잘 나갔든 못 나갔든. 잘나가는 사람한테만 터닝 포인트가 오는 게 아니잖아요."

혜영씨가 말을 이어갔다. 

"결혼을 하는 사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성장하는 걸 보면서 변화가 계속 오잖아요. 그런데 싱글들은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이 단조로운 생활을 극복하기 어려워요." 

서울에서 했던 12년간의 직장생활. 혜영씨는 그동안의 회사 생활이 정말로 즐겁고 재밌었단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었다. 그러다 2013년 1월 1일. 회사에서 새해를 맞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혜영씨는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왔다. 해외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일정이 어그러졌다. 한 번도 혼자 장기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데, 해외는 부담스럽고. '그럼 제주나 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는 이전에도 월차를 내고 한 달에 한 번씩 왔던 곳이다.

경주 출신인 혜영씨는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던 친언니와 함께 고향 경주로 돌아가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구상한 것은 게스트하우스와 로컬푸드 식당. 경주에 가기 전에 게스트하우스의 천국인 제주에서 경험을 쌓아보자는 계획도 있었다. 한 달은 너무 짧고, 1년은 너무 길고, 제주에서 100일만 살아보기로 했다. 2013년 6월이었다.

"6월에 제주 들어올 때 짐을 이삿짐처럼 차에 싣고 왔어요. 한 번도 2박3일 이상 장기간 여행을 간 적이 없으니까. 그러고는 여행을 너무 일처럼 열심히 한 거예요. 계획 하나하나 다 세워서 내일 어디 가지, 내일 어디서 자지. 그게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그러다가 한 달 만에 대상포진에 걸렸어요(웃음). 그때부터 한 곳에 숙소를 잡아 놓고 쉬면서, 그 주변부터 여행을 시작했어요."

혜영씨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몇 개월 동안 스태프 생활을 했다. 성수기에는 게스트하우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게스트하우스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노동력을 제공하는 '스태프' 문화가 만들어졌다.

혜영씨는 "스태프 문화라는 게, 자리를 잘 잡아나간다면 괜찮다"고 하면서도 "그런데 스태프에게 요즘 이야기 나오는 '열정페이' 식으로 돈도 안 주면서 너무 많은 일을 시키거나, 심지어 스태프에게 게스트하우스를 맡겨놓고 해외여행을 나가는 주인장도 있다"고 말했다. 혜영씨는 그런 주인장들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배운다는 것

 '아카자봉'에 나선 김혜영 씨가 8일 오전 서귀포 제주올레 7-1코스 출발지점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와 '제주올레 아카데미' 동기들과 함께 무사완주를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아카자봉'에 나선 김혜영 씨가 8일 오전 서귀포 제주올레 7-1코스 출발지점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와 '제주올레 아카데미' 동기들과 함께 무사완주를 기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제주올레 아카데미'를 수료한 김혜영 씨(첫번째)는 제주올레 여행자들과 함께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올레 아카데미'를 수료한 김혜영 씨(첫번째)는 제주올레 여행자들과 함께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아카자봉'에 나선 김혜영 씨가 제주올레 7-1코스 중간지점에서 제주올레 여행자들의 수첩에 기념 스탬프를 찍어주고 있다.
'아카자봉'에 나선 김혜영 씨가 제주올레 7-1코스 중간지점에서 제주올레 여행자들의 수첩에 기념 스탬프를 찍어주고 있다. ⓒ 유성호

 '아카자봉'에 나선 김혜영 씨가 8일 오전 서귀포 제주올레 7-1코스 도착지점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와 '제주올레 아카데미' 동기들과 함께 무사완주를 만끽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카자봉'에 나선 김혜영 씨가 8일 오전 서귀포 제주올레 7-1코스 도착지점에서 제주올레 여행자와 '제주올레 아카데미' 동기들과 함께 무사완주를 만끽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유성호

100일만 살아보기로 하고 제주에 왔는데, 그 시간은 길어졌다. 경주에서 하려고 했던 게스트하우스는 땅 문제가 걸렸다. 문화재의 '보고'답게 어느 땅에 어떤 문화재가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공사를 하려면 몇 년이 걸린다고 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 다시 3개월을 제주에 머무른 뒤, 혜영씨는 지난해 4월 17일, 제주도에 왔다. 이번에는 정말 '이사'였다. 

"저희 집에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TV가 없었어요. 4월 16일에 이삿짐을 싸고 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어디냐고. 어떻게 보면 저희의 1년이 그 아이들의 1년일지도 몰라요. 언니랑 민박집 리모델링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실제로 세월호에 제주 이민 오려고 했던 가족도 탔었잖아요."

혜영씨는 지난해 9월부터 제주올레 아카데미 일반과정과 심화과정을 이수했다. 제주의 역사, 문화, 식생 등을 현장 체험 학습과 함께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전날(7일)인 토요일, 혜영씨는 그 다음 과정인 '길동무' 교육을 들으며 올레길을 걸었단다.

그는 "이주민들을 위한 귀농·귀촌 수업 같은 것도 있지만, 저는 제주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좀 더 전반적으로 알 수 있는 수업을 듣고 싶었다"면서 "제주올레 수업을 듣다보니까 제주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양파껍질 벗기듯이 알면 알수록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에는 1만8천 개의 신이 있다"면서 "신마다 이야기가 있고, 마을마다 이야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혜영씨는 어릴 때부터 토요일마다 박물관 학교를 다녔다. 박물관에 가면 학예사 선생님이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시곤 했다. 경주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경험을 살려 경주가 단순히 역사의 도시가 아니라, 이전의 문화와 지금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그 꿈은 지금도 유효하다.

"제주에는 네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대요. 1번 제주 토박이, 2번 이주자, 3번 제주에서 살다 육지로 나갔다가 다시 제주로 온 사람, 4번 '제주것'인데 육지에 왔다 갔다 하는 재외 제주도민. 제주올레가 좋은 건, 이 1, 2, 3, 4번이 정말 적절하게 섞여 있어요.

교육은 보통 제주 토박이 분들이 많이 해주세요. 이 분들은 제주에 대해서 정말 많이 알고 있는데, 그걸 전달을 잘 못하시는 거죠. 이 분들이 교육을 받아서 제주올레 강사가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원주민들 교육이 이해가 안 갔어요. 제주어도 모르겠고. 그런데 계속 듣다보니까, 이제는 제주어로 후렴구도 넣고(웃음). '아, 제주문화를 안다는 게 따로 공부를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이런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교육이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이렇게 욕망에 충실하게 산 적이 있었나"

이날 올레길에 동행한 올레 아카데미 동기 3명 중 이샛별(40)씨와 고혜훈(42)씨는 각각 서울과 인천에서 왔다. 전날 '달리네 민박'에서 하루를 묶었다. 이샛별씨는 제주가 좋아서, 거의 매주 주말이면 제주에 온단다. 또 다른 동기 한 명, 제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박은봉(42)씨는 혜영씨와 마찬가지로 제주이민자다.

박씨는 "제주가 정말 좋은데 은퇴하고 내려올 것이냐, 일찍 내려와서 정착하고 살 것인가 고민하다가 정리하고 내려왔다"면서 "가장 중요한 건, 제주는 다른 문화니까 처음 몇 년 동안은 자신을 오픈하고 제주 문화를 받아들이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처가가 제주에 있고, 가정이 있다 보니 게스트하우스를 한 번도 못 가봤다"면서 "혜영씨가 서귀포에 사시는 분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사는 게 참 부럽다"고 덧붙였다.

제주에 정식으로 이사 오기 전 여행과 스태프 생활을 하면서 만든 인맥은 혜영씨의 큰 자산이다. 민박집을 열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혜영씨는 자신을 '어디든 달려가는 김반장'이라고 소개했다.

"민박집 해서는 마트비 정도 나오고요(웃음). 귤도 따고, 바느질로 인형 만들기 아르바이트도 하고, 잼도 만들고... 전방위로 하고 있어요. 일당만 주면 달려갑니다. 언니는 제주에 와서 철인 3종 경기 훈련 받는데, 훈련비 충당하려고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요. 미래를 위한 투자, 이런 건 없고요(웃음). 우리의 순수한 욕망을 위해서 경제활동을 하는 게 정말 즐거워요. 둘 다 정말 바쁜데, '이렇게 욕망에 충실하게 산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고근산에 올랐다 내려가는 길, 혜영씨는 식당에 예약전화를 걸었다. 최근 발견한 저렴한 식당이란다. 5500원에 점심을 해결했다.

"제주 와서 꼭 하고 싶었던 건, 올레길에 있는 저렴한 밥집. 제주에서 식당을 하면 왜 그렇게 다들 비싸게 받는지 모르겠어요. 작년부터 식당과 민박집을 같이 할 수 있는 곳을 구하다가 결국 못 구하고 집만 구했어요. 제주는 기다림의 연속이거든요. 그런데 알고 지내던 친구가 7-1 코스, 저희 민박집 있는 곳 근처에 카페를 오픈한대요. 카페는 보통 오전 11시쯤 열잖아요. 어차피 저희 민박집은 조식이 나가니까 일찍 일어나거든요. 주변에 독거인들도 많고, 올레길도 시작하는 곳이니까, 거기서 '아침식당'을 열어보려고요."

혜영씨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우리 민박집에 오신 분들 공통된 질문이 그거예요.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오는 게 아깝지 않았어요?' 내가 뭘 버렸지. 버린 거 하나도 없어요. 회사를 버린 거? 회사야 여기서도 찾을 수 있고. 연봉을 버린 거? 살다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아요. 가족을 버렸나? 엄마랑은 원래 떨어져 있었고. 친구를 버렸나? 제 친구들 제주 진짜 자주 오는데. 전 버린 게 없어요. 삶의 터전? 서울에 살면서 저는 제가 늘 경계의 이방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에서는 오로지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데만 열중을 하잖아요. 내가 나를 오롯이 먹여 살려야 한다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여기도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늘 '잘 나가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제주로...'로 하죠? 여기서도 잘 나갈 수 있는데(웃음).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제주 오기 전부터 두려움을 가져요. 너무 무겁게 시작을 해요."

'2년만 민박집을 해보자' 생각하고 제주에 왔지만 그가 얼마나 더 제주에 머물지는 모른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건, 그는 '명랑한 달리네'일 것 같다.


#1인가구#마을#제주#달리네#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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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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