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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박범준 씨와 황용운 씨는 제주 선흘리에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우사를 마을 이장을 통해 빌려 세월호 '기억공간 re:born', 바람도서관, 팟캐스트 스튜디오 그리고 생활공간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박범준 씨와 황용운 씨는 제주 선흘리에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우사를 마을 이장을 통해 빌려 세월호 '기억공간 re:born', 바람도서관, 팟캐스트 스튜디오 그리고 생활공간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 유성호

[기억하는 사람]
황용운(36)씨는 아직도 1년 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을 비롯해 모두 476명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했다. 바다 위로는 배의 선미 부분이 떠올라 있었다.

'저 안에 사람이 있는데...' 전 국민이 TV를 통해 지켜보았다. 용운씨도 그들 중 하나였다. 당연히 모두 구조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망자 259명, 실종자 9명. 수학여행을 떠났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2015년 2월, 용운씨는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에 입도했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려했던 그곳이다. 용운씨는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야기 만드는 사람] 박범준(43)씨는 올해로 제주 이주 10년차다. 서울에서 30년을 살아온 범준씨는 2006년 제주 와흘리에 정착했다. 이후 자신의 집 별채에서 작은 마을도서관인 '바람도서관'을 운영해왔다. 범준씨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일 하나를 시작했다. '남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송', '최초의 남성중심방송'을 지향하는 팟캐스트 '21놈의 세상'이 그것.

팟캐스트 제작은 즐거웠다. 주로 글을 쓰던 범준씨에게 팟캐스트는 새로운 소통 방식이었다. 제작 노하우를 공유해, 이 즐거움을 제주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누렸으면 했다. 범준씨가 팟캐스트 스튜디오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다. 

'기억하는 남자'와 '이야기 만드는 남자'의 만남

 박범준 씨와 황용운 씨가 제주 선흘리 소를 키우던 우사에서 폐자제를 옮기며 짐을 정리하고 있다.
박범준 씨와 황용운 씨가 제주 선흘리 소를 키우던 우사에서 폐자제를 옮기며 짐을 정리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3월 초, 제주시 선흘리 삼거리에 위치한 '공존공간 선흘창고'에서 이 둘을 만났다. 이들은 이곳을 세월호 '기억공간 re:born', 바람도서관, 팟캐스트 스튜디오 그리고 생활공간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선흘창고는 원래 소를 키우던 우사였다. 공간은 132㎡(40평) 정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이 공간을 범준씨는 3년간 무상으로 빌렸다. 

"5년을 졸라서 빌린 거예요. 이 우사가 선흘리 전 이장님 소유예요. 제가 예전에 거문오름에 관련된 책을 쓸 때, 이장님이 거문오름을 잘 아시는 분이라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친해졌어요. 그때부터 제가 이 마을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빈 집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계속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이장님이 안 쓰는 우사가 하나 있는데, '미술 작업 하겠다는 사람, 카페 하겠다는 사람들이 와서 빌려달라고 해도 안 빌려줬다, 근데 여기에 도서관을 하면 빌려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도서관이 들어오면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렇게 공간을 빌린 게 지난해 10월이었다. 지붕도, 문도 제대로 안 달려 있고, 안에는 낡은 짐들이 쌓여있고... 폐가나 다름없던 공간을 범준씨는 하나하나 고쳐 나갔다.

용운씨는 '아름다운 가게'에 있는 업사이클링 디자인 브랜드 '에코파티 메아리'에서 일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에코파티 메아리'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된 물품 가운데 재사용이 어려운 의류 등을 활용해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곳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용운씨는 나중에 40대 중반쯤, 도시를 벗어나 살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바다가 좋을까, 산이 좋을까. 휴가 때마다 은퇴 후 살고 싶은 곳들을 찾아다녔다. 제주도도 그 중 하나였다.

지난해 5월 18일, 용운씨는 처음으로 연행이라는 걸 당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세월호 시위에서였다. 41시간을 경찰서에 갇혀 있다 나온 후 지금까지, 용운씨는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있다. 그만큼 당시의 경험은 용운씨에게 충격이었다. 그러다 머리도 식힐 겸, 다시 제주를 찾게 된다. 비행기 아래로 푸른 바다가 보였다. 아이들이 가려고 했던 제주 바다.

"그런 질문이 생겼어요.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에코파티 메아리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가 'RE'라고, 제주에서 폐자재를 활용해 가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하고 있어요. 그 선배에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 하다가, 제주에 세월호 기억공간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세월호 기억공간, 도서관, 팟캐스트 스튜디오가 '공존'

 세월호 참사 충격으로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온 황용운 씨는 '공존공간 선흘창고'에서 세월호 '기억공간 re:born'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충격으로 6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온 황용운 씨는 '공존공간 선흘창고'에서 세월호 '기억공간 re:born'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 유성호

 바람도서관을 운영해 온 박범준 씨가 '공존공간 선흘창고'에 채워질 책을 황용운 씨와 함께 옮기고 있다.
바람도서관을 운영해 온 박범준 씨가 '공존공간 선흘창고'에 채워질 책을 황용운 씨와 함께 옮기고 있다. ⓒ 유성호

처음 용운씨는 'RE'가 입주해 있는 공간에 이동이 용이한 폐컨테이너를 설치해 전시·배움 공간과 숙박 공간을 만드는 것을 구상했다. RE 신치호 대표를 비롯해 제주 현지에 있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폐자재를 활용한 친환경 공간을 만드는 것. 지난해 12월부터 크라우드 펀딩도 했다. 그러나 1월 중순, 공간 대여가 어려워지면서 기존의 계획은 무산됐다.

"당장 다른 공간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범준이형은 그전에 신치호 대표를 통해서 알고 있었어요. 제 상황을 들은 범준이형이 선흘에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공간이 있는데, 같이 들어와서 하자고 해준 거예요. 정말 고맙죠."

범준씨는 말했다.

"제주에 오면, 다들 자기 공간을 갖고 싶어 해서 뭔가를 만들어요. 그런데 한 공간을 제대로 채우기는 어려워요. 용운씨 같은 경우에도, 혼자 내려와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었지만, 낮에는 생업을 위해 나가서 일하게 되면 그 공간은 온기가 없는 공간으로 남게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있는 공간'을 잘 나눠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거고, 살고 싶은 삶의 방식도 있을 텐데, 자기 공간은 아무리 좁아도 확실히 확보하고, 같이 쓸 수 있는 공간은 효율적으로 함께 사용하는 거죠."

두 사람이 얼마 전 함께 만든 명함에는 '공존공간 선흘창고 삶 꿈 함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용운씨는 '기억하는 사람', 범준씨는 '이야기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개인공간이 따로 있는 주거공간도 만들고 있다. 범준씨는 이런 공간이 제주에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구나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공간에 드는 비용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이렇게 해서 공존할 수 있는 모델이 나온다면,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주에 이런 공간이 많거든요. 감귤밭 같은 곳에는 항상 창고가 있어요. 저희는 어쩌다 남자들끼리 모였지만(웃음), 여자들, 가족들끼리도 모여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겠죠." - 박범준

"만나는 친구들 가운데 청년들이 많았어요. 다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실제로는 취업, 취업, 취업... 다들 월급에 매여 살거든요. 이런 실험이 하나의 케이스가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 황용운

"관광객, 제주도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되길"

세월호 기억공간은 어떤 식으로 구성될까.

"여기는 일상에서 조금 벗어난 공간이잖아요. 여기에서 아이들을 기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플랫폼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 황용운

당초 생각했던 주제는 '수학여행'이었다. 사진작가들이 단원고 3박4일 수학여행 일정을 사진으로 담는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서 제주에 왔다면 봤을 풍경들을. 그런데 '4·16 기록저장소' 측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계획을 수정했다. 4월 16일 1주기를 맞아 서울, 안산, 제주에서 열리는 '아이들의 방' 전시회를 제주에서는 '기억공간 re:born'에서 하기로 한 것.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아이들의 방을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그때에 맞춰 현재 용운씨와 범준씨는 열심히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4월 10일 정도에 공사가 마무리 될 계획이란다. 용운씨는 "1년 정도 상설 전시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방' 웹포스터
'아이들의 방' 웹포스터 ⓒ 416 기록저장소

"제가 맨날 세월호 집회가고 그러니까,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너무 오버하지 말라고. 그런데 저는 그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예요. 그 선미의 이미지가, 저한테는 잔상이 너무 컸어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살았구나',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니까 삶에 대한 관점 자체가 바뀌는 거예요.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이 잘 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로 갈 수 있다면. 평생 그것을 위해 살다가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주로 온 거예요. 여기는 제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게 '마음과 마음, 사람과 사람, 더불어 함께'거든요. 이 공간도 관광객들도 그렇고 도민분들도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이후, 예정보다 10년이나 빨라진 퇴직. '생계에 대한 걱정은 없냐'고 묻자, 용운씨는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생각"이라며 웃는다. 브로콜리 밭도 가고, 당근 밭고 가고, 서울에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감귤을 판매하는 일도 생각하고 있단다.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으로 유명한 선흘리. 범준씨는 이곳이 10년간 제주에 살면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마을이라고 했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 선흘리에서 두 남자가 함께 만들어갈 공존공간의 모습이 기대된다. 공존공간 선흘창고는 4월 16일 오후 2시 문을 연다.

한편, <오마이뉴스>에서는 4월 15일 '아이들의 방' 웹 전시 페이지를 오픈한다.

 제주 선흘리 '공존공간 선흘창고'에서 박범준 씨는 '이야기 만드는 사람', 황용운 씨는 '기억하는 사람'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 선흘리 '공존공간 선흘창고'에서 박범준 씨는 '이야기 만드는 사람', 황용운 씨는 '기억하는 사람'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 유성호

덧붙이는 글 | 기억공간 re:born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20140416yellow?fref=ts



#1인가구#마을#세월호#아이들의 방#공존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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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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