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는 어떤 것이 있을까. 얼었던 땅은 녹아서 새싹이 피고, 앙상한 나뭇가지는 잎보다 꽃을 먼저 틔운다. 깊은 산골짜기 계곡엔 바위와 부딪히며 흐르는 물소리가 시끄럽게 몸부림친다. 21일. 지리산이 품은 구례 화엄사. 계곡에서 하얀 거품을 내며 굉음을 내는 물소리가 여행자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고 있다.
<화엄경>의 '화엄'이란 두 글자를 따서 이름 지은 '화엄사'. 사적 505호로 지정된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로,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창건했다. 이 사찰은 지리산국립공원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국보와 보물 그리고 천연기념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로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12호),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35호), 화엄사 각황전(67호), 화엄사영산회괘불탱(301호)이 있다.
보물로는 화엄사 동오층석탑(132호), 화엄사 서오층석탑(133호), 화엄사 대웅전(299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300호), 화엄사화엄석경(1040호), 화엄사 서오층석탑 사리장엄구(1348호), 화엄사대웅전삼신불탱(1363호), 대웅전 삼신탱화(1463호), 화엄사목조비로자나 삼신불좌상(1548호)이 있다. 이밖에도 화엄사 구층암석등(전남유형문화재 제132호), 화엄사 보제루(시도유형문화재 49호)와 천연기념물인 화엄사 올벚나무(38호), 화엄사 매화(485호) 등 많은 볼거리로 연중 여행자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이름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세속과 부처님이 계신 경계인 일주문을 넘어 금강문과 천왕문을 지나니 보제루다. 그런데 여느 사찰과는 달리 화엄사 보제루는 누하진입(누각 아래로 진입하는 방식)이 아닌, 측면인 동쪽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 화엄사의 이런 건물 배치 방식에는 숨은 의도가 있다. 누하진입으로 절 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각황전을 정면으로 바로 보게 되는데, 각황전보다 크기가 작은 대웅전이 더 작게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동쪽으로 돌아가면 가까이 있는 대웅전과 멀리 있는 각황전은 원근감에 의해 두 건물의 크기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시각적인 효과를 최대한 활용한 건물배치가 아닐 수 없다.
양산 통도사와 구례 화엄사의 상징인 홍매화, 꼭 한 달 간격으로 피어 나
각황전이 그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 훌륭한 법당이라도, 불자라면 대웅전에서 먼저 참배해야 할 일이다. 대웅전 삼신불에 앞에 삼배를 올렸다. 이어 각황전 앞에 서니 몸이 움츠려들고 나 자신이 참 보잘 것 없음을 느낀다. 건물의 웅장함 때문만은 아니다. '각황'이란, '깨달음의 황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고자 떠나는, <108산사순례> 기도여행에서, 그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게 될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 깨닫지 못하고, 잡생각으로 가득한 채, '엎드렸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십여 분 동안이나 혼신의 힘을 다해 108번이나 똑 같은 동작을 해야만 했다. 한참이나 법당에 앉아 무심에 빠진 나를 보고 있다.
각황전 옆 홍매화는 이제 막 하나 둘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 2월 21일 통도사를 여행했을 때 본 홍매화와 꼭 한 달 차이로 꽃을 피우고 있다. 나무의 나이나 꽃모양은 엇비슷한데, 가지는 버드나무 줄기처럼 부드러운 모습이 색다름이다. 대형캔버스에 물감을 칠할 때마다 홍매화 한 송이 피어나게 만드는 화가의 열정에 격려를 보냈다. 지금은 홍매화가 활짝 꽃을 피웠으리라.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은 통일신라 9세기 말경 조성됐으며, 높이 6.4m로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제일 크다. 간주석은 통일신라 석등의 팔각기둥과는 달리 북처럼 배가 부른 형태를 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보물 제300호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이 있다. 네 마리의 돌사자가 사천왕상을 받들고 있다. 육중한 고통의 무게를 무표정한 모습으로, 또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돌사자. 이 돌사자의 얼굴에서 온화한 부처님의 미소를 보는 듯하다.
삶이 곧 고통이다. 고통으로 가득 찬 인생살이, 저 돌사자를 닮고 싶은 마음이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보물 두 점이 있는데, 각각 5층 석탑의 형태이나 그 모양새는 다르다. 동오층석탑(보물 제132호)은 탑신에 아무런 조각장식도 없고 기단이 단층으로 돼 있는데 비해, 서오층석탑(보물 제133호)은 이층기단에 탑에는 12지신, 팔부상(여덟 무리의 신), 사천왕을 함께 조각해 놓은 점이 특징이다.
화엄사 뒤쪽에 자리한 천불보전이 있는 구층암으로 가는 대숲 길이 아늑하고 포근하다. 걸음걸이를 동반한 여행은 육체적 피로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라는 노랫말이 생겨났을까. 그래서 '늙어지면 못 노 나니'를 겪지 않으려 발악(?)을 쓰고 젊어서 여행을 즐기려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봄바람에 우는 대숲 바람소리가 정겹다. 쌓였던 피로도 계곡물의 흐르는 물처럼 녹아서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여행을 마치면 항상 2% 부족함을 느끼는 것, 그래서 사전 공부가 필수적
구층암. 이 암자는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마당에 서 있는 신라말기 조성된 허물어진 탑은 듬성듬성 쌓아 놓은 채 복원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다. 나라에서 많은 돈을 들여 문화재 복원사업을 시행하는 지금의 행태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지 않고 버텨 서 있는 탑, 그래서 여행자는 행복하다. 언제 적이었을까, 탑이 무너진 그때의 시대를 더듬어 볼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 자연이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요사채 기둥. 이 기둥은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썼다. 집을 지은 사람의 인간미를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천불보전 앞에는 단아한 석등과 배례석이 자리하고 또 한 그루의 모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저 모과나무도 언젠가는 집 기둥으로 제 몸을 바칠 것이리라. 작은 텃밭에 새싹을 틔우는 채소, 수줍음을 감춘 앙증스럽게 핀 매화꽃은, 구층암의 자연적인 미를 돋우게 하는 좋은 벗들로 함께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108산사순례> 기도여행은 잘 알려진 사찰 중심으로, 어리석음으로부터 깨어남을 위한 기도수행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와 더불어 불교역사와 문화재 공부도 함께하고 있다. 화엄사 사찰여행도 준비가 부족함을 여실이 드러내고 말았다. 떠나기 전 어느 정도 정보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진작 화엄사의 보물인 국보 제35호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을 둘러보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것. 집에 돌아와 인터넷 사진으로 보는 이 석탑이야말로 조각예술의 참 맛을 느낀다.
여행은 사전에 많은 공부를 하고 떠나야 한다. 그래야만 아는 것만큼 느낄 수 있다. 업무보고든, 글쓰기든, 여행이든, 그 무엇이든, 일을 마치고 나면 뭔지 허전하고 항상 2%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보러 다시 떠나야만 할 구례 화엄사 여행은 숙제로 남겨 놓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안개 속에 산은 있었네>에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