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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잊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획해 인터뷰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 기자말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연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다시 한 번 원폭이 떨어졌다. 원자폭탄이 일제 식민으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준 '착한 핵'으로 기억되는 동안 투명인간처럼 살아온 이들이 있다. 원자폭탄 투하로 피폭된 이들 중 10%, 7만 명은 한국인이었다, 이들 중 히로시마에서 약 3만 명, 나가사키에서 약 1만 명이 사망했고, 생존자 중 약 2만 3천여 명이 귀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폭 피해자와 그의 자녀인 피폭 2세들은 여전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 거주 중인 피폭 2세는 약 1만 명으로 추정된다. 피폭 피해자와 2·3세들은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는 이러한 피폭 2세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해 온 단체다. 해결되지 않고 있는 피폭자와 피폭2세 문제를 듣고자,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한정순(56) 회장을 지난 달 25일에 만났다.

 ▲ 인터뷰 중인 한국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
▲ 인터뷰 중인 한국원폭2세환우회 한정순 회장 ⓒ 안현진

한정순 회장은 어릴 때부터 다리에 원인 모를 심한 통증이 왔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병명을 찾을 수 없어 고생하다가 32세에 대퇴부무혈성괴사증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병을 판정받아 지금까지 4번의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저도 2세 환우지만, 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어요. 제가 아픈 것이 저의 체질이라 생각했지 부모님이 피폭 피해자기 때문에 아프게 된 것인지 몰랐어요. 그러다 피폭2세 문제가 <추적 60분>에 방영됐었는데, 사연을 들으니 저와 너무 비슷했어요. '나도 피폭 2세라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모임에 참석했고, 그때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나와 같은 처지의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잔인한 내림, 되물림되는 고통

"우리 가족은 히로시마에 살고 있었다고 해요.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버지의 8형제를 비롯해 14가족이 원폭이 떨어질 때 히로시마에 있었어요. 그 때 할머니와 둘째, 셋째 삼촌이 얼굴과 몸에 화상을 입으셨어요. 다섯째 삼촌은 발뒤꿈치에 화상을 당했는데 치료를 받아도, 연세가 드시도록 끝내 상처가 아물지 않았어요.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피가 흥건하게 흘러있기도 하셨어요. 가족 중에 70세 넘도록 산 사람이 다섯째 삼촌 밖에 없어요. 거기에 있었던 언니는 30대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65세에 돌아가셨어요.

제 어머니는 당시 임신 중이셨어요. 해방 이후에 돌아오지 못하고 출산 후 귀국했는데, 피폭될 때 태내에 있었던 아들은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홍역이나 다른 병세도 없이 앓다가 엄마 품에서 죽었어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제 어머니는 그 아들이 굶어죽었다 말씀하시는데, 어른이 먹을 밥이 있으면 아기는 굶어죽을 만큼 놔두지 않잖아요? 아기가 먹어도 얼마나 먹겠어요. 제 어머니는 그렇게 인정하고 싶으시겠지만, 우리만이 아니라 피폭 2세 중에 10세 미만에 질환이 아닌데도 원인 모를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네요. 아마 제가 살아온 세월은 책으로 써도 다 못 쓸 거예요."

한 회장의 어머니는 합천에 있는 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한 회장은 현재 대퇴부무혈성괴사증으로 인공관절 수술을 준비하고 있고, 그의 첫째 아들은 뇌성마비를 가지고 태어났다. 2012년에는 한 회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잔인한 내림 - 遺傳>이 나오기도 했다.

피폭 1세뿐 아니라 2세도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피폭 후유증으로 일반인보다 질병 위험도가 높은 것이 현실이다. 한정순 회장은 친남매들도 여러 질명에 시달리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제가 6남매인데 6남매가 모두 아파요. 첫째, 둘째 언니는 뇌경색 판정을 받았고 셋째 언니와 저는 대퇴부무혈성괴사증 판정으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제 바로 위 오빠는 심근경색과 협심증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았고, 막내동생은 잇몸이 약해 치아가 빠집니다.

피폭 2세들은 태어나서 10세 이전에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하거나 건강하게 자라더라도 성장 과정에서 질환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장애나 정신질환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해요. 한 가정은 4남매인데 그중 3남매가 정신질환이 있어 부모가 챙겨줘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가 언제까지 뒷바라지해줄 수 있겠어요. 그럴뿐만 아니라 한 가정 안에서도 다운증후군, 시각·청각 장애 등 여러 증세가 나타나요.

많은 2세가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살고 있어요. 회원 중에 40~50대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아요. 회원 한분 한분에게 신경을 못 쓰는 사이, 그 사람의 아픔을 읽어보지도 못한 채 세상 떠나는 것도 보지 못하고 떠나보내기도 했어요. 사실은 내 아픔도 참아내기 힘들어요. 곧 수술도 해야 하는데 수술비는 누가 마련해주나요. 수술 이후 회복기간의 생활비도 제가 마련해야 해요."

한 회장은 "너무 답답한 마음에 합천에 가보면 저보다 더 많은 사람이 많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며 정부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생계와 수술비 마련을 위해 일을 하며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아픔을 안아줘야 한다"

현재 피폭자에게는 한·일 정부가 의료비와 원호수당, 진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2·3세에 대한 지원은 없으며 정확한 실태 조차 파악되지 못하고 있어 2·3세를 포함한 피폭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한 특별법안이 17·18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충분한 논의도 못 하고 무관심 속에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는 4명의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공동대표로 발의했다.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릴 만큼 피폭 피해자가 많습니다. 대구와 부산에도 많이 살고 있어요. 때문에 경상남도에서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조례'가 제정돼 피폭 피해자 1·2·3세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편으로 설문조사를 했기 때문에 시각 장애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 등 정말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설문조사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조사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경상남도 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은 조사대상에 포함되지도 못했습니다.

피폭 2·3세 피해자들은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피폭 2세라는 것이 알려지면 자녀의 결혼 등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숨기기 급급했기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숨겨지고 덮어져 왔습니다. 피폭 피해자들의 문제는 만 단위로 추정됩니다. 그만큼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는 거죠.

올해가 투하된 지 70주기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어요. 정부는 피폭 2세 환우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의 모호한 태도를 이유 삼아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어요. 피해자 1세분 들은 평균 연령이 80세가 넘습니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역학조사를 통해 인과관계를 밝혀내고 실태조사를 해야 합니다."

"70년의 고통을 어떻게 단시간에 말하나요"

 ▲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본인의 가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본인의 가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안현진

8월 15일 광복절 즈음이 되면 피폭2세환우회에 '해방 몇 주기인데 해방된 기분이 어떠냐'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가 많이 온다고 한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폭 피해가 발생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광복절 기념행사를 보면 기분이 편치만은 않다고 한다.

"해방 이전에 8월 6일, 히로시마 그리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어요.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 내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요. 가족들의 생사도 모를뿐더러 확인한다고 해도 죽었는데, 가족의 생사를 알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해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겠나요.

수십 년이 지났는데 피폭자에 대한 지원도 없고, 어떤 교과서에도 조선인 피폭자에 관한 것을 다루지 않습니다. 단 한두 곳의 교과서에서 딱 한 줄을 다룹니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이들이 강제로 끌려가 노동해야 했고, 식민의 아픔, 가족과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아픔을 겪었습니다. 일제의 지배로 죽어가야 했고, 피폭으로 죽어가야 했지만, 그것들은 역사에 남지 않습니다. 그 아픈 시절을 본인의 몫으로 돌려놓고, 아픔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아요."

"사고는 예고가 없다... 결국, 남는 것은 핵 피해자다"

'한국원폭2세환우회'는 밀양 765kV 초고압송전탑, 고리·월성 등 노후원전 폐쇄 등의 문제에도 함께 연대하고 있다고 한다. 한 회장은 "다 하나의 핵 피해자이잖아요"라며 견해를 밝혔다.

"더 이상 이 세상에 핵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핵발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하기 편하다고 원전을 연장해서 위험하게 살 것이 아니라 핵발전을 중단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럼 너는 전기 안 쓰느냐?'고 합니다. 나 혼자 전기를 안 쓴다고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이미 전기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있습니다. 저는 이미 많은 이들의 고통을 알고 있고, 제가 직접적인 교통을 겪었습니다. 핵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나 혼자 사용하지 않아서 해결된다면 전기를 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예고된 것이 아니었어요. 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누가, 언제, 어느 시에 핵에 의한 피해자가 될지 모릅니다. 만약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대책은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 피해를 피해자가 죽는 날까지 겪어야 합니다.

정부가 송전탑과 원전이 안전하다고 하는데 저는 청와대와 국회에 먼저 세우고 나면 믿을 거예요. 안전하다면 왜 그곳에 먼저 세우지 않나요. 왜 힘없는 우리만 고통받고 희생되어야 하나요."

덧붙이는 글 | 안현진 기자는 <사람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사람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재됩니다.



#사람들#피폭자#피폭2세#한정순#원폭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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