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일본 훗카이도 동쪽 츠루이마을에서 우핑한 이야기입니다. 우프(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1971년에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전세계 유기농 농장 네트워크입니다. 유기농 농장을 포함하여 친환경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사는 곳에 가서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입니다. - 기자 말평범한 일본 여행 대신 선택한 '우핑'
어렸을 때 내가 관심 있던 나라들은 모두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자연스럽게 일본은 나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다 프랑스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일본이라는 나라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프랑스인들은 일본을 좋아한다. 일본 문화, 음식, 젠도 등, 무언가 '일본'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관심부터 갖고 본다.
처음에는 갸우뚱했지만, 차츰 나 역시 일본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문화와 친절한 일본인들에 빠져들게 됐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일본의 문화 마케팅이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파리에만 가도 일본이 자신의 문화를 알리는 데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다.
프랑스를 찾는 대부분 관광객이 가는 파리 에펠탑을 보고 지하철을 타러 가려면 반드시 일본 문화원을 지나치게끔 돼 있다. 반드시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보이는 신비로운 동양의 모습은 이웃 나라 사람인 나 역시도 관심 갖게 만들었다. 파리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나라 문화원과는 차별되는 점이다.
아무튼 나는 자연스럽게 일본어도 배우게 됐고 동시에 일본 문화도 공부했다. 그러다 문득 일본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냥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특별한 교류가 있는 여행이 하고 싶었다. 비싼 일본의 물가도 고려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때 내 머리를 스친게 바로 '우프'였다.
일본에서 우프를 한다면 분명히 평범한 여행보다 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우선 내가 열심히 공부해온 일본어를 사용할 것이며, 그 지역의 친환경 농업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며, 대안적인 삶은 택한 일본인 가정을 만날 수 도있다. 물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온 전 세계의 다른 우퍼들과도 교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일본 우프 웹사이트에 들어가 회원가입을 하고 농장을 찾기 시작했다. 일본 우프 농장을 매우 다양했다. 전 일본 열도에 우프 농장이 없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대도시 도쿄 근처에도 농장이 있었다. 오래전 여름 일본 방문 때 매우 더워 기진맥진했던 것을 기억하고 최대한 서늘한 북쪽 지역으로 알아봤다. 또 후쿠시마 현 주변은 아무래도 방사능 위험 때문에 꺼려졌기에 그보다 더 북쪽인 홋카이도가 목적지가 됐다.
홋카이도에는 우프 농가가 매우 많았다. 농장뿐 아니라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기념품 매장까지 선택의 폭도 다양했다. 나는 요리, 농장이 있는 곳을 찾았다. 또한 최대한 멀리 외진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발견한 곳은 바로 하트엔트리였다. 나는 준비를 마치는 대로 바로 짐을 싸서 일본으로 향했다.
미나미 치토세역에서 JR 열차를 타고 네 시간 정도를 달리면 홋카이도의 동쪽 끝에 다다른다. 기차가 넓은 대지를 가로 질러 열심히 달리다 보니 맑던 하늘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조금 더 달려가니 옅은 안개 밑으로 강한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가 도로가 나왔다. 프랑스에서 서핑으로 가장 유명한 비아리츠처럼 홋카이도 동쪽 해변은 강한 파도가 몰아쳤다.
홋카이도가 개발되기 전의 가장 자연스러운 홋카이도의 경관을 간직한 곳이라서일까, 오비히로를 지나 구시로에 다다를 즈음에는 구불구불한 하천 사이로 드문드문 있는 습지가 눈에 들어왔다. 쿠시로 습원 국립 공원 일본 최대 습원 지대로 일본의 천연 기념물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야생 물새들과 두루미의 서식지로도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넓은 평야에 펼쳐져 있는 습지를 넋 놓고 바라보던 것도 잠시, 기차는 어느새 쿠시로 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마사토씨가 마중 나와 계셨다. 마사토씨는 하트엔트리의 주인 사치코씨의 남편이다. 츠루이의 관광 센터에서 일한다고 했다.
허브 숲길 사이... 꿀맛 같은 저녁
하트엔트리는 츠루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었는데, 이는 두루미가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답게 드넓은 평야가 좌우로 있고 멀리는 높은 산이 보였다. 끝 없을 것 같은 대로를 오르다 보면 저 멀리 평지와 습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경치를 바라보며 연실 감탄을 하는 것도 잠시, 40분이 어떻게 지난지도 모르게 우리는 츠루이의 하트엔트리에 도착했다.
다양한 허브가 심어진 가든 사이로 난 길을 에너지 넘치는 쿠피가 안내해줬다. 안으로 들어가니 쏘냐, 사치코씨 그리고 마모토씨의 둘째 딸 모모코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레스토랑 내부는 아늑했고 허브의 향기로 가득했다. 모든 테이블과 의자는 나무로 만들었고 부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났다. 늦은 오후가 되니 날씨가 점점 쌀쌀해졌다. 분명 7월인데, 덥기로 소문난 일본에서도 역시나 홋카이도 지역은 예외인 것 같았다.
쏘냐와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치 서로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아마도 서로가 일본에서 일본어에 지쳐 있던 터에 오랜만에 입을 풀 상대를 만나 반가웠나 보다. 쏘냐는 미국에 살고 있는 크로아티아 사람이다. 홍콩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학교에서 교육과 관련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조잘조잘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사치코씨가 준비한 저녁 식사는 말 그대로 자연식이었다. 싱싱한 야채가 담겨 있는 샐러드부터, 레스토랑에서 직접 만든 치즈가 듬뿍 들어간 피자, 폭식폭신하고 달콤한 빵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사치코씨의 친구들이 함께 와서 저녁 식사를 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즐겁게 웃다가 하루가 끝나 버렸다. 내일은 어떤 재밌는 일이 일어날까. 일본에서의 우프 첫 번째 날이 마무리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일본, 홋카이도 - 유기농 허브농장&레스토랑 하트엔트리 우핑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