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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일본 훗카이도 동쪽 츠루이마을에서 우핑한 이야기입니다. 우프(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1971년에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전세계 유기농 농장 네트워크입니다. 유기농 농장을 포함하여 친환경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사는 곳에 가서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입니다. - 기자 말

아침에 눈을 뜨니 이미 밖이 환해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눈은 안 떠지고 피곤해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20분이었다. 이곳의 아침은 그 어느 곳보다도 일찍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가장 먼저 해가뜨는 곳이라더니 역시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다시 잠을 청했다. 잠깐 다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농장에는 옅은 안개가 깔려있었고 축축이 젖은 흙 향기가 물씬 났다. 내가 묶고 있는 곳에서 천천히 걸어나와 레스토랑 하트엔트리로 가는 길에 나를 맞이해 준건 다름 아닌 흰 염소와 검은 돼지였다. 염소 세 마리와 돼지 한 마리는 쿠피와 더불어 이곳의 애완동물이다.

 하트엔트리 레스토랑 옆 작은 우리에 살고 있는 염소
하트엔트리 레스토랑 옆 작은 우리에 살고 있는 염소 ⓒ 이지은

나는 이곳의 귀여운 동물들에게 인사하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이 창가에 앉아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9시에 일이 시작한다고 해서 그래도 일찍이 8시에 갔는데, 쏘냐와 사치코씨는 이미 7시부터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나름 아침도 일찌감치 먹고 일을 하려고 한 시간이나 먼저 갔던 건데 모든 사람이 그보다 더 일찍 일을 시작하고 있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쏘냐가 나에게 커피 한 잔 할 거냐고 물어봐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냉장고 안에 있는 간장같이 생긴 병에 담긴 시원한 커피를 주었다. 아무래도 어제 만들어 놓고 남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아침 식사로 어제 저녁에 미처 다 굽지 못한 피자 도우를 구워서 버터에 발라먹었다. 일본에서 프랑스식으로 빵을 먹고 있자니 뭔가 아쉽긴 했지만, 시원한 커피를 마시니 정신이 깨어나고 상쾌했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어제 저녁 식사 후에 남은 설거지들을 했다. 설거지는 매우 친환경적이었다. 우선 식기들을 사용하고 남은 올리브오일로 만든 세제로 간단하게 닦는다. 오일성분때문에 약간 미끌미끌한 상태에서 식기 세척기에 넣고 약 2분 정도를 돌리면 그릇들 사이로 뜨거운 물이 빠르게 통과하면서 깨끗하게 세척된다.

굳이 슈퍼에서 파는 강력한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뜨거운 물만으로도 깨끗하게 세척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식기 세척기에 들어갈 때는 분명 미끄덩거리며 기름 성분이 남아 있었는데 2, 3분이 안 돼서 뽀드득하고 뜨끈뜨끈하게 세척된 식기들이 나오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나도 집에 가서 이런 식으로 식기를 씻는다면 세재사용을 줄이고 깨끗하게 씻을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쪽파에 꽃이 올라오고 있었다. 보라색 예쁜 꽃은 샐러드등의 음식에 멋진 장식이 되었다.
한창 쪽파에 꽃이 올라오고 있었다. 보라색 예쁜 꽃은 샐러드등의 음식에 멋진 장식이 되었다. ⓒ 이지은

개똥 잡초는 '세계적'

손님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모두 떠난 뒤, 사치코 상이 나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다. 그것은 바로 허브 밭에 가서 잡초를 뽑는 일! 그렇지 않아도 농장에 가서 일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나에게 딱 어울리는 일을 하라고 한거다. 오전 내내 허브 밭에는 태양이 내리쬈다. 구부정하게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등이 따끈따끈 했다. 공기는 시원했지만 태양은 뜨거웠다. 나는 9시부터 11시반 정도 까지 열심히 잡초를 뽑은 것 같다.

예전에 프랑스에서 우핑을 할 때 개똥이라는 이름의 잡초를 며칠동안 뽑은 적이 있었는데, 이 개똥이가 일본 허브밭에도 있었다. 일본까지 와서 내가 개똥을 뽑을 줄이야! 개똥 잡초는 정말 세계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개똥잡초는 뿌리가 대나무 뿌리처럼 주변으로 길게 자라며 주변에 새로운 개똥이를 생산해내는 생명력이 강한 잡초였다. 그래서 뿌리의 뿌리를 뽑아내다 보면 가끔 수평으로 1미터가 넘게 발견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너무 지겹게 뽑아데서 당분간은 보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약 3년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그것도 일본에서.

하트엔트리 허브농장이 시작한지는 약 3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조그만한 화분에서 옮겨 심은 허브들이 군데군데 조금씩 있었는데 지금은 농장을 다 뒤덮을 정도로 부쩍 자라있었다. 민트, 타임, 오리건, 캐모마일, 라벤더등 무려 10가지가 넘는 허브들이 조화롭게 자라고 있었다.

허브농장은 사치코상이 아닌 관리하는 다른 분들이 계셨다. 근처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었는데 낙농업을 하시는 분도 계셨고, 야채를 키우고 계시는 분들도 계셨다. 이 분들은 남는 시간에 하트엔트리 농장에 와서 사치코상 대신 허브밭 관리를 해주셨고 밭에서 나온 허브들을 함께 공유한다고 했다. 나는 잘 되지 않는 일본어로 조잘조잘 떠들며 이 분들과 신나게 잡초를 뽑았다.

 허브밭에 있는 다양한 허브들
허브밭에 있는 다양한 허브들 ⓒ 이지은

잡초도 뽑고 중간에 딸기도 따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침도 시원찮게 먹고 일도 많이 하고 땀도 많이 난지라 무척이나 허기가 졌다. 하지만 레스토랑 안에 들어가니 점심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로 가득했다. 주방안에서는 쏘냐와 사치코 상이 분주하게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물만 마시고 잠깐 쉬고 나서는 다시 주방 보조를 시작했다. 얼마나 일했을까.. 거의 두 시가 다 되고 나니 슬슬 다리에 힘이 풀리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난밤에 잠을 잘 못잔지라 더욱 피곤했다. 점심은 어떻게 먹냐고 물어보니, 점심준비 후 남은 파스타와 메론 한 개를 까서 주었다. 차디찬 파스타를 먹고 있자니 뜨끈한 밥이 생각났지만, 모두가 바쁘게 일하고 점심에 그다시 신경쓰는것 같지 않아서 또다시 냉커피와 파스타를 먹었다. 그리고 한 20분 정도 쉬고 나서 다시 일 시작. 역시나 농장과 레스토랑이 같이 있는 곳이다보니 다른 곳보다도 일이 많은것 같았다. 지금은 우퍼가 두 명이 있어서 이정도이지만, 우퍼가 없다면 사치코 상이 혼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상상이 안갔다.

내일은 정부 위생청에서 레스토랑 검사를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방 대청소를 시작했다. 나와 사치코상 모모코짱 그리고 쏘냐는 주방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사실 늘 정리정돈을 했던것 같다. 그래서 크게 다시 손을 보거나 청소를 해야 하는 일들은 많이 없었다. 5시가 다 되어서 모모코가 바닥 청소를 하는 동안 잠시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사치코 상이 오늘은 그만 일해도 된다고 했다.

같이 청소하던 중이라서 그런지 뭔가 찜찜한 해방이긴 했지만,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숙소로 돌아와서 침대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배도 고프고 힘도 없었지만, 첫날은 적응하는 날이려니 하고 웃어 넘겼다. 침대에서 쉬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 몇분이나 흘렀을까, 아랫층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깨서보니 마모토씨가 일을하고 돌아와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같이 둘러앉아 저녁식사 하는 모습.
다같이 둘러앉아 저녁식사 하는 모습. ⓒ 이지은

풍성한 회 앞에서 나의 다짐은 어디로...

저녁식사로는 마모토씨가 근처에서 회를 떠와 먹었다. 회를 마른 김에 싸서 먹거나, 낫토랑 함께 먹었다. 마모코가 술한잔 하겠냐고 물어봐서 그러겠다고 했더니, 우리나라 소주에 (커다란 페트병에 한국어로 진로라고 쓰여있었다.) 우롱차를 섞어 주었다. 소주를 마시는 것도 놀라웠지만, 우롱차를 섞어 얼음을 타서 먹는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어떤 맛일지 궁금해서 맛보니, 이건 물처럼 술을 먹을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소주의 쓴맛을 우롱차의 고소한 맛이 잡아줬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삿포로 맥주가 더 좋았기 때문에 이후에는 맥주만 마셨다. 저녁식사는 정말 오랜만에 먹는 밥이라서 그런지  너무나도 행복했다. 물론 후쿠시마 사태이후 일본에서 절대 생선과 버섯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지만, 풍성한 회 앞에서 나의 다짐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우리는 둘러 앉아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전세계의 서로 다른 언어 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나이 세는 법, 청소년이 술 먹는 문화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저녁 9시 반 쯤해서 모두가 피곤한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쉬었다.

첫 날이라서 그런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물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아 조금 답답했다. 내가 알아서 눈치껏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요령껏 내가 알아서 남이 하라고 하기 전에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사실 일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정해주고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알려주었다면, 일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좀더 알차게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도 일본어가 잘 안되고 사치코씨와 모모코도 꼭 필요한 영어 아니면 하지 않고 일본어로 이야기 했기 때문에 다양한 의사소통은 힘들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낄수 있었던 건,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 적극적이지 못한 나의 탓이리라. 아직 첫 날이니 좀 더 지켜보고 스스로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와중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마사토 씨은 조곤조곤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우퍼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가끔씩 농담도 하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주는 모습이 참 다정하다고 느껴졌다.

 허트엔트리 농장 곳곳 어디에나 작은 화분이 놓여있다
허트엔트리 농장 곳곳 어디에나 작은 화분이 놓여있다 ⓒ 이지은

하트엔트리가 생긴지 15년이 되었으니 고작 하루 일해서 오랫동안 쌓여온 이 곳의 분위기를 쉽게 알 수는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모든 문을 열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따뜻한 일본 가정 속에서 분명 하루하루가 다르게 특별한 경험을 할거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일본우프#홋카이도우프#유기농농장체험#허브농장#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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