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년이 되어 간다. 광화문 농성과 단식, 촛불 집회가 국내외에서 지난 1년 동안 이어졌지만, 1년을 앞두고 들려온 소식은 어렵게 구성된 세월호 특별위원회(특위)가 무력화될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의 많은 양보로 어렵게 구성된 특위인데 제대로 활동도 하기 전에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정부에서 말한대로 단순 해양 교통사고가 맞다면 원인을 규명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보상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터인데 이게 1년 동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세월호에 대한 음모론을 부채질한다. 무엇을 밝힐 수 없기에 특위구성에 그토록 갈등이 많았으며 구성된 특위의 활동이 제약을 받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구조실패의 책임이 있는 정부는 조사의 대상인데 정부 기관이 조사를 좌우할 시행령을 입법하려는 시도에 이르게 되면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인터넷 공간에는 수많은 음모들이 떠다닌다. 잠수함 충돌설, 고의 사고설, 핵폐기물 처리의 목적을 가진 세월호, 배에서 구조된 선원이 재판정에서는 뒤바뀌었다는 설 등 셀 수 없는 이야기들이 춤을 춘다. 그 중에는 그럴듯한 것도 있고 선원 바꿔 치기처럼 황당한 이야기들도 있다.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어야 이런 음모설들이 사라지겠지만 진상 규명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유가족은 '정치 선동'과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쇼'를 하고 있고 나머지 자녀들은 대학 특례 입학을 하게 되었다는 낭설들이 유가족을 압박한다. 피해자가 졸지에 수혜자로 바뀌어 (유언비어상으로) 그들이 받게 된다는 천문학적 보상금의 액수보다 적은 재산을 가진 중산층들은 자식 팔아 돈을 벌려 한다는 막말을 던진다. 사고 1년 지난 지금에서야 보상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정부와 보수 언론은 보상금을 부각시켜 본질을 흐리려 한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사고의 원인에 관계된 음모론보다 유가족을 폄훼하는 음모가 대중 속에 훨씬 깊게 들어와 있다. 음모론의 전쟁으로만 보자면 피해자와 함께 하려는 이들이 믿는 음모론이 진 셈이다. 전상진은 <음모론의 시대>(문학과 지성사,2014)에서 음모론을 통치 음모론과 저항 음모론으로 나눈다.
유가족을 폄훼하거나 진상 규명 요구를 '정치'로 정의하는 것은 통치 음모론의 일종이다. 통치 음모론에 의해 서민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삼고 화살을 겨누고 '정치'와 '순수'를 나누자고 주장한다.
반면 저항 음모론은 고통 받는 소수자, 약자들에게 필요한 대항담론이다. 저항 음모론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상한 것에 우리를 몰두하게 만듦으로써 진정 필요한 실제적 탐구와 정치적 행동을 방해" 한다.
전상진의 말처럼 노련한 통치 음모론에 의해 대중은 분열되고 저항음모론은 역량을 상실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음모론에는 보다 뿌리 깊은 보혁갈등이 있다. 전쟁을 겪으면서 음모론은 반대 진영을 압박하는 도구가 되었다. 진영논리를 벗어나라는 말은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진영을 강화하면서 저자의 견해와 달리 음모론은 '실제적 탐구와 정치적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 세월호 사건처럼 진상규명이 더뎌지면 음모론은 정치적 결속의 좋은 도구가 된다.
시민들이 정부와 언론을 절대적으로 불신한다는 점에서 음모론은 분명 건강한 논리는 아니다. 정부와 언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SNS를 통하여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 게다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보면 뭔가 분명히 있다는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천안함 사건부터 의혹을 키우는 쪽은 정부다. 전상진의 책은 음모론의 배경이 되는 정치와 언론 환경을 다루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음모론의 기원저자는 음모론의 기원을 막스 베버의 이론을 빌어 신정론(神正論)에서 찾는다. 신정론은 욥기의 기본 주제고 하나님의 정당성에 관한 이론이다. 베버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무신론을 가진 프롤레타리아가 불공정한 현실세계에 대한 답을 신이 아닌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찾으면서 세속적 신정론이 생겨났고 세속적 신정론은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고통 이면에 내가 아닌 누군가의 책임이 있다는 명확한 그림(음모론)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전상진은 서민들이 음모론에 빠져들수록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만 더 커진다고 말한다. 대화와 합의가 아니라 상대를 제거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악마적 관점'으로 사회를 인식하게 된다. 그 틈에서 기득권 세력은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 되어 버린다.
이 책은 세월호 사건 이후인 작년 12월에 나왔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에 나타난 각종 음모론의 분석을 담아내지 않은 것은 비겁해 보인다. 한국 사회의 음모론이 가진 동력을 저자가 연구한 서구의 음모론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에게는 신정론과 같은 것이 본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도 책에서 소개하고 있지만 서구 역사에서 대표적인 음모론은 그 유명한 <시온 장로들의 포로토콜>을 이용해 유대인을 향한 증오를 키운 것이다. 유대인 장로들이 세계의 모든 사건을 기획하고 있다는 이 거짓 의정서(프로토콜)는 히틀러의 반유대주의의 기원이 되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프라하의 묘지>(열린 책들, 2010)에서 위서의 실체를 밝힌다. 이 거짓 문서에 대해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했다는 말을 에코는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민족의 삶은 끊임없는 거짓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저 유명한 <시온장로들의 프로토콜>에 분명하게 나와 있다. <프랑크 푸르터 자이퉁>은 매주 징징거리며 주장하기를 ,그 문서가 허위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그 문서가 진짜라는 가장 훌륭한 증거이다. .... 그 책이 온 국민의 공동 자산이 될 때에는 유대 민족의 위험이 제거된 것으로 여겨도 되리라, (<프라하의 묘지 2>, 766쪽 )유대인 장로들의 기획서라는 것은 러시아에서 1903년 러시아에서 처음 출판되었는데 프랑스의 모리스 졸리가 쓴 < 마키아벨리와 몽테스키외의 지옥에서의 대화>라는 정치적 풍자물에서 힌트를 얻은 위서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이 히틀러에게는 진실이 되었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외면했던 평범한 독일인들도 그렇다고 믿었다. 그런 점에서 통치음모론과 저항음모론은 나뉜다기 보다는 서로 교묘하게 엮여 있다.
교회는 어떤가? 교회 통치 음모론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집단처럼 보인다. 아는 목사는 세월호 이야기를 설교에 잠시 포함시켰다가 교회를 사직할 뻔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호 만이 아니다. 각종 증오(포비아), 선별복지, 종북몰이에서 교회는 항상 통치음모론에 가세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국 교회가 반유대주의 음모론에는 빠져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대인이 노벨상을 많이 타서 그런가, 힘이 세고 돈이 많아서 그런가.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미가 2:1)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기대 기자는 LA평화의 교회 목사로 기독교 매체 <뉴스 M>의 편집장도 맡고 있습니다. 이 글은 <뉴스 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