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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론먹노이즈의 모습. 원탑(round tower)은 수도원의 랜드마크(landmark)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적이 침략했을 때 대피를 하거나 감시를 하던 곳이었다.
클론먹노이즈의 모습. 원탑(round tower)은 수도원의 랜드마크(landmark)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적이 침략했을 때 대피를 하거나 감시를 하던 곳이었다. ⓒ 김현지

아일랜드의 동쪽 더블린(Dublin)과 서쪽 골웨이(Galway) 사이에 애틀론(Athlone)이라는 비교적 큰 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아일랜드의 5대 도시에는 들지 못하지만 아일랜드의 심장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다른 타운에 비해선 교통이 발달된 곳이다. 애틀론 타운에서 골웨이 쪽으로 약 25분을 달리면 아일랜드의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수도원을 만날 수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리처드 카벤디쉬 외 공저, 2009)'에도 들어 있는 이 수도원의 이름은 발음하기도 힘들고 쓰기도 힘든 클론먹노이즈(Clonmacnoise). 아일랜드 사람들은 '클론맥노이즈'라고 말하지만 한국 포털 사이트에 적혀 있는 한국식 발음은 '클론먹노이즈'이다(이하 클론먹노이즈). 이곳은 6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으로 아일랜드 위클로우 지역(Co. Wicklow)에 남아 있는 글렌달록(Glendalghough) 수도원과 함께 아일랜드 초기 기독교의 역사와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수도원이 있던 터 앞에는 섀논강(River Shannon)이 흐르고 있다.
수도원이 있던 터 앞에는 섀논강(River Shannon)이 흐르고 있다. ⓒ 김현지

실제 클론먹노이즈의 뜻은 노스 자손의 목초지(Meadow of the Sons of Nos)란 뜻으로 Ad 545년 경에 시아란(St. Ciaran) 사제가 세웠다. 그는 꿈을 통해 받은 계시에서 영감을 얻어 근처의 섀논강(River Shannon) 근처에 이 수도원을 세웠다.

아일랜드는 유럽 대륙에 속해 있지만 섬나라인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도시 중심지가 늦게 형성되었다. 대신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근처의 수도원으로 몰려들어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식이었고 클론먹노이즈는 비교적 초기에 지어진 수도원이었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곳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시아란 사제는 수도원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무덤은 하나의 성지 역할을 하면서 이곳의 규모는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한다. 가장 전성기였던 8세기에서 12세기 사이의 클론먹노이즈는 종교, 무역, 교육 등의 도시 공동체 형성에 필요한 역할을 모두 감당하게 된다.

최소 40번 이상 외부 민족(다른 지역의 아일랜드 사람들, 바이킹족, 노르만 족 등)의 침입이 있었던 것만 봐도 이 곳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곳이었고 외부 민족들이 탐을 내는 곳이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대부분의 교회의 지붕은 없고 교회터와 비석만 남아 있다.
대부분의 교회의 지붕은 없고 교회터와 비석만 남아 있다. ⓒ 김현지

또한 9세기부터 이곳은 이 지역의 왕들이 묻히는 장소가 되었는데 왕이 이곳에 묻히게 되면 막대한 후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수도원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자주 벌어지곤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클론먹노이즈는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고 12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근처 애틀론 타운의 성장으로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애틀론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은 마침내 황폐해져 버렸다.

클론먹노이즈 수도원은 금속 세공과 수도사들의 필사본, 그리고 석조 세공이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물은 석조 세공인데 이곳에 있는 '성서의 십자가(Cross of the Scriptures)'는 높이 4미터의 돌 십자가로 아일랜드에서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십자가 중 하나다.

이 십자가는 콜맨(Colman) 대수도원장이 자신의 친구이자 아일랜드 왕이었던 플란 왕(Flann Sinna) 추모하기 위해 세운 십자가다. 십자가 안의 장식은 각각의 패널로 나눠져 있고 각 패널 안에는 예수의 마지막 심문, 십자가 처형, 무덤에 묻힌 기록 등 성경의 장면을 하나씩 새겨놓았다.

 수도원 터 입구에는 각 세기별로 새워진 교회의 위치를 표기해 놓았다.
수도원 터 입구에는 각 세기별로 새워진 교회의 위치를 표기해 놓았다. ⓒ 김현지

현재 클론먹노이즈 터에는 과거에 세운 교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시아란 사제가 세운 목조 교회는 사라졌지만 그 이후에 각 세기 별로 세워진 교회들(약 7개)이 남아 있어 과거 초기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아일랜드는 가톨릭 국가이지만 기독교와 가톨릭이 나눠지기 이전의 기독교에 관한 문헌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곳은 아일랜드의 초기 신앙 공동체의 역사와 삶의 현장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많은 수도원들도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했듯이, 이곳의 사람들도 차갑고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그들의 신앙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비록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지만 클론먹노이즈는 수세기를 지나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한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나는 후대에게 어떤 흔적과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클론먹노이즈의 모습
클론먹노이즈의 모습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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