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주말 저녁, TV에서 여야 패널들 사이 정치행보의 비평과 논쟁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한 우리는 전 세계적 경기악화, 심각한 취업난 등 풀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을 안고있다.
나는 '역사' 속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고민해보았다. 한국인들에게 조선 최고의 국왕이라 평가받는 세종대왕에 관한 책인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는 세종의 득위과정부터 죽음까지 세세히 기록된 책이다. 세종대왕을 더 자세히 알아가면서 이 시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치 리더십, 정치 지도자를 엿볼 수 있었다.
세종은 내적으로 대단히 성숙한 인물이었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진 세종은 정독하는 습관으로 학식과 논리적 언변, 그리고 중국어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내성적이고 사색적이며 신중한 면으로, 예체능에는 흥미가 없었고 오로지 학문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세종의 정치는 '곰'으로 비유할 수 있다. 누구나 약점은 있기 마련이다. 득위 후, 어린나이, 부족한 경륜이라는 약점은 세종이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 태종이 사망 한 후, 양녕의 귀양에 관한 상소로 왕권과 신권의 충돌에서 패배하게 된다.
하지만 몇 년 후, 마침내 그는 신하들과의 갈등을 줄이고 권력을 얻는다. 그는 남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은 정치하는 체통이 아니다라며 포용력과 중용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달래고 어를 줄 아는 인물이었다.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으로 신하들을 설득하여 왕권 강화를 이루었다. 자신을 뜻을 이루기 위해 무조건 상대방을 비난하고 헐뜯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조선시대 역시 지금과 같이 나라의 발전에 도움을 줄 인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현재 대한민국 취업시장에서는 철저히 공대생 채용 우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수출 지향적인 국가, 제조업 국가답게 언제나 공대에 대한 수요는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률이 저조해지자 대학에서는 학과 통폐합까지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가하고 불가사의하게도 우리나라의 기업에서는 인재가 부족하다고 불평을 한다. 세종 역시 인재를 절실히 원했다.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유교적 이상국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세종은 유교적 지식인을 대거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는 순수 이론가형 학자가 아닌 현실적 실용성, 표용성까지 계산하였다. 현실에 대한 파악과 이해를 가지는 동시에 학문이 갖는 힘과 의의를 잘 알고있었다. 세종은 집현전의 인적 구성 작업에 공을 들였고 집현전에 어마어마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훈민정음이 만들어졌고, 측우기와 같은 실질적 도움이 되는 과학 기구도 만들어졌다. 한쪽으로 치우친 인재 채용이 반드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 국가차원에서 학문 출신에 구애받지 않는 고른 인재 채용을 위해 나서야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된 인문학 교육의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대학 역시 취업을 위한 교육이 아닌 진정한 학문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