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같은 학년에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일란성이었는지 이란성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눈에는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됐다.
얼굴과 키, 헤어스타일까지 똑같았던 그들은 이후에 고등학교도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 심지어 군대도 같은 부대에서 같은 보직을 받아서 생활했다.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보면서 '쌍둥이들은 항상 저렇게 같이 있으려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동시에 좀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저러다가 한 명이 크게 다치거나 일찍 사망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자신의 2003년 작품 <그림자밟기>에서 쌍둥이에 대해 그림자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쌍둥이는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려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림자를 밟기 위해서는 가까이 있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명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한 명 역시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많다.
2년 간의 옥살이 후 출소한 절도범<그림자밟기>의 주인공 역시 쌍둥이다. 일란성쌍둥이의 형으로 태어난 34살의 마카베 슈이치가 그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 생김새는 물론 정신과 마음속까지 똑같은 복사판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주했다. 차라리 사라져버려. 그렇게 빌었다.
그의 직업은 절도범이다. 그동안 수없이 타인의 집에 침입해서 절도행각을 벌였고, 그 혐의로 경찰의 신문을 받아도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철벽의 마카베'다.
그에게도 부모와 쌍둥이 동생이 있었지만, 15년 전의 불행한 화재로 인해서 가족을 모두 잃었다. 동생도 사망했다. 어찌보면 마카베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그때부터 혼자남은 마카베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작품의 시작에서 그는 절도혐의로 2년간 옥살이를 하고 막 출소한 상태다.
그렇지만 제 버릇 남 주지 못한다고 그는 다시 절도를 시작한다. 그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정신 속으로 들어온 쌍둥이 동생의 목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리는 것이다. 동생은 하루에 수도없이 형에게 질문을 던지고 말을 붙인다. 마카베는 이런 동생과 함께 절도행각을 벌이며 경찰의 추적을 피해다니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죽은 동생요코야마 히데오는 그동안 <그늘의 계절> <사라진 이틀> <64> 등 사회성이 높은 작품들, 또는 경찰조직이나 기자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다. 이는 작가 자신이 10년 넘게 기자로 생활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그림자밟기>에서는 그런 성향을 줄이고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발표 순으로 보자면 <64>가 가장 최근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먼저 떠나버린 쌍둥이 동생을 생각하는 형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불행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생은 구천을 떠돌다가 자신의 반쪽인 형의 정신 속으로 들어온 셈이다. 자신이 갈 곳은 그곳 밖에 없다는 듯이. 동시에 모든 가족을 잃은 형이 동생을 불러들인 것일 수도 있다. 그림자가 없는 어둠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꼭 쌍둥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함께 있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목소리는 조언이나 따뜻한 위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잔소리일 수도 있다. 과거에 나누었던 대화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렇게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벗어나기 싫을지도 모른다. 그거야 말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다.
덧붙이는 글 | <그림자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최고은 옮김. 검은숲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