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다시 봄이 왔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삭발을 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1년 전의 약속을 지키고 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잊지 않겠다는 약속,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실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
#1. 현순애(41·여·교사)씨
두 아이의 엄마인 현순애씨는 유가족 육성기록집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다. 읽고 나서 '이런 일이 또 생길 수도 있겠구나, 내 일이 될 수 있구나' 하고 절감했다. 아이들에게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하게 됐다.
"유가족들에게 부채감이 있었어요. 제가 아무런 힘을 보태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시간이 지나도 제대로 해결이 안 되고 유가족들은 거리로 내몰리고요. 유가족들은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요. 저라도 도와야 할 것 같았어요. 내 주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2. 이명승(42·남·직장인)씨"배(세월호)가 가라앉고 나서, (집에서) 자는 (우리) 애를 만져봤어요. 잘 자고 있는지 보려고요. 자는 애를 다시 확인할 정도로 너무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일곱 살 딸을 둔 이명승씨. 유가족들이 거리에 나서고 단식을 해도 국가는 변하지 않는다고 절감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했다. 내 아이만 안전하게 키울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현관문에 '세월호 인양'이라고 적힌 긴 리본을 붙여 두었다. 지난 5일에는 세월호 유가족 도보행진에 참가해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광화문광장까지 걸었다.
도봉 주민들, '카톡방'에서 세월호 1주기를 도모하다8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창동역. 전동차의 문이 열리고 시민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 서명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 아래에서 나명주(49)씨가 '세월호 온전한 인양 촉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세월호 1주기인데요. 세월호가 아직 차가운 바다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는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시민들이 서명 용지가 놓인 테이블 앞에 섰다. 허리를 숙여 성명, 주소, 전화번호, 문자수신 확인란을 채웠다. 서명을 마친 뒤 시민들은 "수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부터 한 시간 가량, 창동역 2번 출구에서 진행된 '4·16약속지킴이 도봉모임(도봉모임)'의 서명운동이 현장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금요일 저녁에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날은 주민 열 명이 한 시간 가량, 총 220여 명에게 서명을 받았다.
도봉모임은 지난 2월, 카카오톡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소속 서울 동북부지회 회장을 역임한 나명주씨가 모임을 이끌었다. 지난해부터 도봉 지역을 중심으로 세월호 추모 활동을 벌여오다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온라인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가입비, 회비 없이 자발적인 성금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두 명씩 카톡방에 초대된 사람들이 지금은 220명이다. 직장인, 주부, 고등학생, 대학생 등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오는 11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도봉구 방학동 도봉구청 2층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어린이·청소년·일반 주민까지 공연 연습 서명 운동을 마친 이들은 인근의 작은도서관인 '책읽는 사람들'로 향했다. 도서관 회의실에 도봉모임 회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후 8시 20분,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2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북콘서트에서 부를 노래를 연습하기 위해서다. 어린이들은 '진실은침몰하지않는다', 청소년들은 '거위의꿈', 일반 주민들은 '약속해'를 부르기로 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현순애씨가 입을 열었다.
"오후 8시쯤에 도서관에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안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겁이 났는데, 이렇게 다들 와주셨네요. 감사해요. 한창 '야동(야한 동영상)' 볼 나이의 중학생들도 참가를 했네요."현씨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먹해하던 신방학중학교 3학년인 손명훈·김유민·이현호군도 크게 웃었다.
반주가 흘러나왔다. 민중가수 윤민석씨가 작사·작곡한 '약속해'라는 곡이었다. 악보를 손에 든 사람들은 박자를 맞춰 고개를 까닥거렸다. 악보를 바라보는 눈빛이 진지했다. 그들은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가 너희의 엄마다. 우리가 너희의 아빠다. 너희를 이 가슴에 묻은 우리 모두가 엄마 아빠다. 그 누가 덮으려 하는가. 416 그날의 진실을 그 누가 막으려 하는가. 애끓는 분노의 외침을."
"세월호 타고 제주도 여행 부러워했던 아들... 내 일이었을 수도"이날 연습에 참가한 이들 중에는 학부모가 많았다. 나명주씨는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나이의 아들을 뒀다. 나씨의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인 지난 2013년 봄에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다른 학교 친구들은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를 갔다 왔다고 들었다. 1년 뒤 세월호가 침몰했고, 나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수행여행을 다녀온 아들 친구가 세월호에 오락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좋다고 자랑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애가 정말 부러워했었죠. 세월호 참사는 정말 내 일, 내 아들 일이 될 수 있었던 거예요. 정말 누구라도 유가족이 될 수 있었던 일이에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더 열심히 나서게 된 것 같아요."나씨는 지난 2일, 광화문광장에서 있었던 유가족 삭발식에 나갔다. 머리를 밀 사람이 부족해 나씨가 직접 나섰다. 이발기를 들고 엄마들의 머리를 밀었다.
"저는 손 떨려서 못한다고 했는데, 사람이 없다고, 유가족이 유가족을 밀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갔어요. 모자 다섯 개를 사갔어요. 햇볕 받으면 머리가 너무 뜨겁잖아요. 햇볕 가리라고 사갔는데 어머니들이 열 명이 넘더라고요."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연습에 참가한 이경숙(44)씨는 "아들도 알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같이 나왔다"면서 "아들과 같은 친구들이 희생이 되니까 남의 일의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명승씨는 "행사를 기획하게 만든 주민들의 자발적인 힘은 세월호 사고가 이어준 작은 기적"이라며 "1주기가 지나도 2주기가 지나도 마음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회의실 밖에서는 일곱 명의 어린이들이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윤민석씨의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였다. 반주가 나오자 일곱 살인 김단비양과 홍예령양이 껑충껑충 뛰며 노래를 불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편집|최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