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이 총리가 지난 2013년 4월 재선거 출마 당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14일 제기되면서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사퇴론이 커지고 있다.
이날 오후 긴급 소집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 총리의 거취를 두고 지도부 간 이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 총리 거취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만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국무총리부터 빨리 수사해 달라"는 의견을 정리하는 데 그쳤다.
이완구 거취 놓고 이견... 커지는 이완구 사퇴론유승민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요구하는) 직무 정지는 법적으로 (근거가) 없는 일이라서 이 총리가 직을 계속 유지하든지 그만두든지 둘 중 하나"라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또 "사퇴 요구가 명시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문제를 상당히 고민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의 거취에 대해서도 "의견 정리를 못했다"라고 전했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는 4·29 재보선을 앞두고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이 총리 사퇴 카드까지 과감히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3년 대선 자금 수사 때 '차떼기 파문'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이한 여권으로서는 이 총리를 포함해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과 과감히 결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당에서는 현직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검찰에 공개 소환되는 장면이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순간 이번 재보선은 물론 내년 총선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 총리가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사정정국을 연 지 한 달 만에 본인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상황"이라며 "과연 정부의 영이 서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관망하는 청와대... 만만치 않은 신중론하지만 여권 내에서 이 총리 거취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 총리가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총리 사퇴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특히 이 총리가 정치적 압박으로 자리에서 먼저 물러날 경우 성 전 회장의 현금 전달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돈을 받은 게) 사실이 아니라면 이 총리가 그만둘 이유가 없지 않느냐?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거취 표명을 해야 할 것"이라며 "진실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야권의 총리 직무정지 주장에 대해 "검찰에서 수사하고 있으니 지켜보시라. 앞서 가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총리의 잇따른 거짓 해명으로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은 사퇴론을 부추기고 있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과의 친분에 대해 "19대 국회 1년 동안 의정활동 한 것 외에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라고 하거나 "동향 출신의 현역 의원이라는 점 외에 특별한 개인적 관계는 없다"라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완구 신뢰도 추락... "돈 안 받았다고 하지만 누가 믿겠나?"
이후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한 행사에 함께 참석해 찍힌 사진들의 보도 사례가 발견되면서 두 사람이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이 총리는 13일 대정부질문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 총리는 2012년 대선에 관여했느냐는 질문에 "혈액암 투병 중이어서 관여하지 못했다"라고 말했지만, 당시 새누리당 충남선대위 명예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와 함께 직접 현장에서 지원유세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총리는 13일 오후 들어 "유세장에 간 적은 있다"라고 말을 바꿨다.
새누리당 지도부 내에서도 이 총리의 거취를 두고 미묘한 균열이 감지된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과거 천막당사 시절을 언급하면서 "무엇이 당이 사는 길이고, 또 무엇이 임기가 3년 남은 대통령을 진정으로 보호하는 길인지 우리는 같이 고민을 해야 한다"라며 "이럴 때일수록 우리 당은 국민만 바라보고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유 원내대표가 이 총리를 비롯해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의 거취 결정을 간접적으로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친이(이명박)계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도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을 겨냥해 "당장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이 의원은 "당사자들은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를 누가 믿겠느냐"라며 "국민들은 금품 수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데 방치하면 당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이완구 사퇴 압박... 이완구 "증거 나오면 목숨 내놓겠다"전날까지 이 총리의 직무 정지를 요구했던 야당은 이날 공세 수위를 높여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야당은 검찰 수사 지휘권을 갖는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제청권을 행사하는 총리가 현직을 유지하면서 검찰 수사를 받을 경우 수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날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현직 총리와 비서실장이 피의자로 수사 받는 일은 역사상 없었던 일"이라며 "박 대통령은 현직 총리가 피의자로 수사 받게 된 상황을 어떻게 할 건지 입장을 밝히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사 관여 차단 방안도 밝혀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또 "(이완구 총리와 이병기 비서실장) 두 사람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 의혹을 더 키우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자진사퇴를 압박했다.
이 총리는 결백을 주장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 전 금품 수수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돈 받은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면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날 오후 대정부질문 답변 과정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돈을 받았다는 어떤 증거라도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라고 말했다.
○ 편집|손병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