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기자말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킬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공해에 찌든 도시의 삶에서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시골에서 즐기는 나의 일상에서, 사람보다는 자연에 더 살가움을 느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평소에는 당연한 것이려니 하며 살았다.
하긴 이런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유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읽으며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은 듯하여 행복하다. 시골의 삶은 당연히 사람보다는 자연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시간을 더 많이 보낸다는 것은 곧 그들과 더 관계가 많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자연과 더 친하다는 말이다. '친하다'는 말의 개념 속에는 이미 '사랑'이란 말이 도사리고 있다. 사랑 없이 친할 수는 없다. 그걸 느끼든 못 느끼든 우리는 가장 친한 것들과 어울리고 살아간다.
사랑은 관계를 맺는 것
자칫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사랑한다면서도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 때문일까. 욕심 때문이다. 사랑하는 게 아니고 소유하려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사랑을 소유욕과 착각하지 말라고 다부지게 충고하는 이가 있다. 생텍쥐페리다. 진정으로 사랑을 했던가, 생각해 보라.
"사랑을 소유욕과 착각하지 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당신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 소유욕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사막의 도시>"-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 27쪽도시의 삶은 자연을 집안으로 들여다 놓으려는 욕심에 나무며 풀포기를 가져다 정원에 심는다. 그러나 문만 열면 자연이 싱그러운 시골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도시인은 자연을 소유하려 한다. 반면 시골에서는 자연을 그저 봐주고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자연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집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발걸음에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는 집'은 무의미하여 사랑할 수가 없다. 집이 아무리 좋은 재료로 지어졌어도, 아무리 널찍한 공간을 제공해도, 아무리 가격이 높이 책정되었어도 나와 관계가 없거나 추억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당신들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집과 훌륭한 자동차의 모형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그곳에서 살고 그 자동차를 운전할 사람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았으니,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카르넷>"-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 33쪽"네 개의 벽과 기둥이 지붕을 덩그러니 받치고 있다고 해서 모두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붕을 올리고 벽돌을 쌓아올린다고 모두 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 공간에 대한 추억과 애착만이 그것을 진짜 집으로 만들어주며, 그곳에 담긴 인간의 영혼을 보호해준다. <바람과 모래와 별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 167쪽사랑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관계를 맺지 못하면 그 어떤 사물이나 사람도 무의미하다. 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무의미를 유의미라고 착각하며 살 때가 너무 많아 생텍쥐페리의 당연한 논리는 무시되기 일쑤다. '내 것을 주고도 언제나 잃기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란 말은 얼핏 들으면 '기브 앤 테이크'의 타산적 사랑을 말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나와 관계가 없는 일방적 움직임이 사랑일 수 없다는 뜻이다.
생텍쥐페리와 김춘수의 만남'진정한 관계란 상대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수많은 장미가 아름답게 자신을 뽐내도 어린 왕자는 오직 한 송이의 장미에게만 사랑을 느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물을 주고 가꾼 장미이기 때문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네가 장미를 위해 보낸 시간이 네 장미를 소중하게 만들었다"는 말을 한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신학자 에밀 부르너의 말로 한다면 '나와 너의 관계'다. 나와 관계하지 않는 사람은 무의미하다. 나와 관계하지 않는 신도 무의미하다. 이런 의미에서 생텍쥐페리와 김춘수는 닿아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일부김춘수 식으로 하면 꽃의 이름을 부른 것이고, 생텍쥐페리 식으로 하면 장미와 시간을 보내며 물을 주는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관계적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고, '사막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곳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물을 품고 있는 사막의 사랑을 읽을 수 있는 눈은 그리 흔한 게 아니다.
생텍쥐페리는 1900년 프랑스의 리옹에서 태어났다.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청소년기에는 1차 세계대전이 터져 전쟁에 참가했다. 21세 때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창공을 날았다. 그의 비행 경험은 이후 그가 쓴 작품들의 소재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 다시 조종사로 참전했다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그 유명한 <어린 왕자> 외에도, <야간 비행> <남방 우편기> <인간의 대지> <바람과 모래와 별들> 등 잊힐 수 없는 명작들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의 명작들 중에 가려 뽑은 주옥같은 문장들을 송혜연이 다시 가려 옮긴 책이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다.
'사랑을 한다는 건 책임을 안다는 것'이란 부제가 말하듯 생텍쥐페리의 사랑과 관계의 신비를 한 모둠 꽂아놓은 꽃다발이라고 할까, 책은 그런 내용으로 풍성하다. 일테면, "타인이 자신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경우는 단 하나, 사랑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뿐이라고 강조한다.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그 무엇도 무의미하다.
옮긴이도 "이 책은 <어린 왕자>를 비롯하여 생텍쥐페리의 저작 중에서 사랑과 우정, 만남 등 관계에 관한 글을 중심으로 발췌하여 엮었다"고 친절하게 말해 주고 있다. 신록과 꽃이 주변 산을 덮는 이 때, 사랑해 보지 않겠는가. 주변에 있는 사람과 사물을 다시 보라. 그리고 그들과 당신이 무슨 관계가 있나 헤아려 보라. 관계가 없다면 관계를 맺어라. 사랑 가득 품은 행복들이 줄줄이 그 관계들에 엮여 다가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 생텍쥐페리 잠언 / 송혜연 옮김 / 생각속의집 펴냄 / 2015. 3 / 196쪽 /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