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돈과 조직을 이기지 못한다."홍준표 경남지사가 2010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당시 안상수 후보에게 석패한 뒤 한 말이다. 그러면서 "나도 앞으로 조직을 좀 (관리)해야겠다"라고 덧붙였다. 말이 씨가 됐을까. 홍 지사는 1년 뒤 다시 열린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5년, 홍 지사는 자신의 발언을 번복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숨지기 전 2011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홍 지사에게 1억 원을 전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홍 지사는 이를 적극 부인하고 있다.
그는 2011년 전대 경선 당일 "나는 30년 동안 당당한 사람으로 돈, 여자 어떤 문제도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그러나 앞서 본인이 말한 대로, 당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와 '돈'이 전혀 관계 없다고 말하기 힘들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다시 되짚어봤다.
[2008년] 당명까지 바꿔버렸던 '돈봉투 전대'
2008년 전당대회가 대표적 사례다. 고승덕 전 한나라당 의원은 4년 뒤인 2012년 '18대 국회에서 치러진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시 대표 후보 중 한 명이 다른 사람을 통해 300만 원이 든 봉투를 전해와 곧바로 돌려줬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그가 지목한 '후보'는 2008년 전대 때 당대표로 선출됐던 박희태 현 새누리당 상임고문이었다.
터질 일이 터진 셈이다. 2008년 전대 당시 2위를 차지했던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경선을 나흘 앞두고 연 오찬 간담회에서 "자리를 약속하고 금품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데 그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물증도 갖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그의 주장은 경쟁자였던 박 고문을 향한 셈이다. 박 고문은 전대 직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자금으로 1억868만 원을 썼다고 신고했다.
박 고문은 폭로 이후에도 '돈봉투 전대'를 극구 부인했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박 고문은 순방 외교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관련 기사 :
"나는 '돈봉투' 모른다... 총선은 불출마" 귀국한 박희태, 국회의장직은 사퇴 거부). 그러나 그는 수사 결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은 당의 '이름'도 바꿨다. 당시 한나라당은 2011년 10월 재보궐선거 당시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사건으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결국 '돈봉투 전대' 의혹이 확산되면서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고 당헌당규도 고치는 등 사실상 재창당 수순을 밟았다.
2010년 전당대회 역시 금권선거라는 의심을 받았다. 이 전대에서는 안상수 현 창원시장이 당대표로 선출됐다. 안상수 시장은 전대 후 1억4950만 원을 선거자금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10년 7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의원이 동원의 대상이 되는 순간 '돈선거'를 안 할 수 없는 구조"라며 "호남·충청 지역의 당협위원들은 (전대 덕에) 대목을 맞았다는 얘기도 들린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전대 출마자는 "'300표 줄게 2000만 원 다오' 하는 브로커가 있었지만 난 거절했다"며 "이 브로커가 분명히 딴 데(후보에게) 가서 1000만~1500만 원 달라고 제안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홍 지사 본인은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 이 같은 의혹을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홍 지사는 2010년 7월 21일 CBS라디오 <사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한 인터뷰에서 "상대편은 돈과 조직을 동원했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당내 경선은 선거법상 제한을 받지 않는다"라며 사실상 금권선거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상대 후보들은 (법정 비용 이상으로) 더 돈을 썼다는 얘기인가"라는 질문에도 "내가 얘기하기 어렵다"라며 여운을 남겼다.
[2011년] 이재오 "수백 명씩 호텔에 불러 밥 사주고... 부패 아니냐"
홍 지사가 당대표로 선출됐던 2011년 전당대회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당대회 경선 '룰' 변경을 두고부터 논란이 시작됐다. 당시 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여론조사를 배제하고 1인2표제에서 1인1표제로 룰을 변경하려 했다. 선거인단을 일반 국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확대하면서 대의원의 영향력이 축소돼 조직선거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모임이었던 '민본21'과 여러 후보들이 "금권선거와 조직투표를 확산시키는 행태"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당 선관위가 선거비용 자체를 올려 버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앞서 한나라당은 전대 후보들에게 각각 8000만 원의 기탁금을 걷었다. 그러나 당 선관위는 2011년 전당대회 당시 후보들의 기탁금 액수를 1억20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즉, 돈 쓸 일이 많아진 셈이다. 그러나 홍 지사는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전대 선거비용으로 1억1178만 원을 신고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홍 지사의 '친이계 재결집설'에 반박, 금권선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2011년 6월 트위터를 통해 '자신을 비롯한 친이계가 원희룡 당시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홍 지사의 주장에 반박하며 "섬(여의도) 사람들은 이 판에 무슨 돈이 있어 수백 명씩 호텔에 불러 밥 사주고, 술 사주고, 표 부탁하고 하는 것은 부패가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황우여 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당대표로 선출된 2012년 전당대회는 앞서의 경우와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었다. 고승덕 전 의원의 '돈봉투 전대' 폭로 후 처음 치러진 전대였기에 당에서도 '돈 선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당 선관위가 전대 출마 후보들에게 기탁금도 받지 않을 정도였다. 또 전대 당일 도열 인사·피켓 사용 등을 금지하며 돈이 들어갈 곳을 사전에 차단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선출된 2014년 전당대회 땐 기탁금(후보 1인당 8000만 원)이 다시 부활했다. 김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은 전대 기간 동안 서로 '고비용 정치·세몰이 정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만 19세 이상~40세 미만, 당원 아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구성한 청년선거인단 모집을 두고 각 후보 측에서 경쟁적으로 '동원'에 나섰다는 후문도 잇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