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서울광장에 갔다. 딸과 함께 세월호 추모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엄마로서, 지식인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난 일 년 간 한 일이 없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였다.
1987년, 대학생이라면 모두 거리로 나왔다는 그 시절에도 광장에 서 보지 않았던 나다. 시청 앞 광장에 앉아 있노라니 만감이 교차했다. 세월호 모형이 높이 솟아오를 땐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후 차벽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충돌과 연행, 불법집회 논란을 보며 착잡했다. 법적근거를 들어 광화문 집회가 불법이라는 설명과 해석을 들었지만, 공간디자이너인 나는 다른 관점에서 질문하게 된다.
도시에 광장이 있어야 할 이유가 뭘까? 광장은 원래, 모이고, 머물고,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라고 만들어진 곳이다. 한 도시의 질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도시의 옥외공간에 머무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사람으로 둘러싸여있지 않은 에펠탑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상상하기 어렵다.
길거리의 카페와 과일 자판, 그 주변에 가득한 인파가 없다면 우리는 유럽의 도시를 지금처럼 동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어떡하면 사람들을 도시에 머물 수 있게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물론 쉽진 않은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옥외공간에서 머무를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량이 통제된 광장은 사람들을 머물게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춘다.
1994년 이탈리아에서 목격한 놀라운 광경1994년 여름 나는 친구들과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마침 열렸던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이탈리아 전역을 흥분과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이탈리아는 강호 브라질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패했지만, 결승까지 가는 동안 이탈리아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광장에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화염병과 최루탄, 방탄복과 닭장차의 기억밖에 없던 80년대 학번인 내게, 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모여 축구를 응원하느라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모습 자체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축구경기를 각자 집에서 TV로 보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함께 본다는 콘셉트도 충격적이었다. 도시가 그렇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경험한 내가 그 이후 우리 도시를 새롭게 관찰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우리도 2002년을 경험했다. 걸어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서울시청과 광화문 앞, 남대문 주변을 지금은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됐다. 개발논리에 의해 허겁지겁 달려왔던 도시계획을 반성하며 인간을 위한 도시,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도시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우리 삶이라는 것이 희로애락으로 이뤄져 있으니, 무슨 수로 좋고 기쁜 일만 그 그릇에 담아낼 수 있나? 노엽고 슬픈 일들까지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인생이 되는 것을. 도시의 광장은 축구응원을 위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고 세월호 추모제를 위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광장을 만든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건국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