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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주>를 13년만에 재출간한 만화가 이두호.
<객주>를 13년만에 재출간한 만화가 이두호. ⓒ 권우성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이두호 작가의 만화는 뭔가 사뭇 달랐다.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장독대라는 이의 외모는 이마가 훤하고 콧대가 없어, 잘 생겼다는 말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었다. 그저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가 <바람소리>에서 모둘빼기라는 재주로 단숨에 15명을 뛰어넘기도 하고, 숯불이 활활 타는 화로를 안고 뒤로 살판을 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강렬했다.

그래도 사당패는 어쩔 수 없는 천민. 그의 작품에서 장독대의 신분 상승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때로 장독대는 복수의 화신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외모의 소유자가 <덩더꿍>에서 단지 노비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짓밟힌 부모의 복수를 다짐하기 위해 자신의 눈을 송곳으로 찌르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아팠다.

그런 점에서 "이두호의 만화를 한 편이라도 본 적이 있는 지금의 장년층 독자라면, 만화를 보았다기보다 차라리 한 편의 그림으로 된 한국문학작품을 읽었다는 느낌이 더욱 강렬하게 남을 것"이란 손상익 만화평론가의 추천사는 확실히 '정답'에 가깝다. 장년층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질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만화 <객주>가 다시 문을 연다고 했다.

요즘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13년 만이라고 했다. 김주영 작가의 동명소설을 이두호(73)가 새롭게 그려냈던 만화 <객주>. 2002년 출간했던 바다출판사가 이번에 다시 내놨다. 그동안 절판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독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고시장에서 10권 1세트에 70만 원에 거래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나에게는 근 30여 년을 훌쩍 뛰어넘는 일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과거의 한 자락을 만들어 준 당사자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한국 역사 만화의 거장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이름이 이두호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줄곧 조선시대 역사와 민초들의 삶에 천착해 '바지저고리 만화가'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토록 '어제'를 파고들었던 사람이니 분명 '오늘'에 대해서도 나눌 이야기가 있지 싶었다. 헛헛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양복저고리'들이 귀를 열 만한 그 무엇을 담아내고 싶었다. 세월호 사건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작가 이두호를 만났다.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그리 높지 않아 옛 아파트의 정취를 풍기는 그곳에 1989년 입주했다. 그보다 더 오랜 시간, 45년 정도 함께 했던 작업실을 지난해 10월 정리했다고 했다. 이은홍 작가와 함께 시작한 <만화 한국사 수업>을 끝냈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학교 동창인 아내의 권유도 크게 작용했다.

"우리 집사람도 이제 제발 일 좀 그만하라고 해쌌고(웃음, 그는 1943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사실 좀 놀러 다니고 그래야 되잖아요. 그래서 금년 들어 아내와 두 번 여행 다녀왔어요."

 13년만에 재출간한 <객주>에 저자 사인중인 이두호 작가.
13년만에 재출간한 <객주>에 저자 사인중인 이두호 작가. ⓒ 권우성

- 요즘 작품 활동은?
"공원에 가서 그림을 그려요. 그런데 바깥 돌아다니다 보면 영어 간판이 참 많거든요? '스위밍 풀', 영어를 알면 다행인데 모르는 사람은 여기가 뭔가 싶을 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한글로 함께 수영장이라고 붙여놔야 한단 말이죠. 제 욕심으로는 먼저 크게 한글로 수영장이라고 붙이고, 그 밑에 영어로 쓰든지, 뭐 그래야 좋은데, 한글이 한 글자도 없는 거예요. 물론 제가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렇기도 하겠지만(웃음)."

소설 <객주>...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는 계속 '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만화 한국사 수업> 이야기를 하면서도 "무엇보다 제가 역사를 잘 몰라서 글은 다른 사람이 쓰길 요청했고 그래서 이은홍 작가와 연결됐다"고 했다. 겸양임이 분명했다. 국역 동사강목, 국역 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 언뜻 눈에 비친 책 제목들이었다.

그러니 이두호 작가가 영어 이야기부터 꺼낸 이유, 물론 "영어를 못해서 화가 나서"만은 아니었을 게다. 백정숙 만화평론가는 이번에 나온 만화 <객주>에 실린 '역사, 민초, 생활...그리고 인생'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두호의 사실주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옛 이들의 삶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바지저고리만 그린다고 그네들의 숨소리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그네들의 가정과 한, 땀과 눈물, 그리고 웃음이 있어야 한다. 만화에서 그것은 생생한 대사의 맛으로 귀결된다... 시대적 배경에 매치되는 생활언어를 복원하는 것. 그것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만화가 이두호에게 당연히 귀착되는 고민이었을 것이다."

- 소설 <객주>를 보고 놀라셨던 걸로 압니다. 모르는 순우리말이 너무 많아서.
"저한테는 충격이었거든요. 그때 이미 저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바지저고리 만화'만 그리겠다고 작심한 지 몇 년 됐단 말이죠. 그런데도, 이게 막상 책을 펴보니까, 이게 영어도 아니고 일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닌데, 순전히 한글인데 제가 모르는 단어가 그렇게 많아요. 모두 우리 선조들이 쓰던 말인데, 그러니까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죠."

13년 만에 다시 나오는 <객주>..."부끄러워요"

 <객주>의 한 장면
<객주>의 한 장면 ⓒ 이두호

충격, 그다음에는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내 걸 만들고 싶다", 이두호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었다. 직접 그리는 것이었다. "그래야 재창조가 되든 말든 하니까", 마침 한 신문사에서 소설 <객주>를 만화로 그려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왔다고 했다. 하지만 잘 안 됐던 모양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고 한다. 이두호 작가는 직접 김주영을 만난다. 행운은 그냥 따르는 법이 없다.

"나한테 김주영 선생을 소개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만났는데, 이 분이 자기가 필요한 게 4백만 원인데, '보아하니 이두호 선생 별로 돈도 없을 것 같다'고, 3백만 원만 달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제가 '어? 기분 나쁘다'고, 4백만 원 드리겠다고(웃음). 저한테는 참 행운이었죠."

행운, 알아서 손에 쥐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가 평소 일할 때, 스토리를 쓸 때는 라디오도 못 틀어요. 조용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는 괜찮아요. 그래서 소설을 쫙 읽어보고 정독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일하던 친구들한테 녹음을 시켰어요. 그리고 그걸 시간 날 때마다 틀어놓고 일을 한 거예요. 전체적인 내용은 알지만, 내 것처럼 다 소화해놔야 다시 출발하든지 할 거 아니에요?"

- 그런 작품이 13년 만에 다시 나옵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부끄러워요. 다시 나온다는 자체는 반가울 수 있지만, 내 작품 나온다고 하면 막 좋고 이래야 하는데, 좀 부끄러워요. 다시 <객주>를 뒤져봤어요. 그럼 이건 이렇게 그리는 게 아니다, 이건 복식이 틀렸다, 그런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제 눈에는 다 보이잖아요. 좀 더 완벽하게 내놨으면, 그런 욕심이 들죠."

- 선생님 눈에만 비치는 욕심이겠죠. 독자들은 잘...
"독자들도 알 거예요."

이두호의 사실주의, 검찰과 충돌하다

"<객주>에 나오는 집들은 단순히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누구네 집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표출된다...(중략)...번쩍 들려진 솟을대문을 위엄 있게 그려냄으로써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도 집주인의 권세를 말해준다. 한숨과 그림자가 드리워진 웅장한 한옥과 단아한 멋이 느껴지는 소박한 한옥, 번듯한 초가집과 초라한 초가집을 구분했으며 집집마다 그려 넣은 다양한 토담 무늬는 미적 감각마저 느끼게 한다." (백정숙 만화평론가, 만화 <객주> 중)

이두호 선생의 집을 둘러보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작업실로 쓰는 방은 물론 거실과 또 다른 방에 빼곡하게 들어찬 각종 자료였다. 앞서 소개한 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책들이 매우 많았다. 국어사전, 우리말 분류 사전, 우리말 갈래 사전, 한국민속대사전 등 사전의 종류 또한 다양했다. 기와집, 흙집, 옛 풍속, 불상, 경주 탑 등으로 분류된 파일들도 눈에 띄었다. 민초들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발로 만든 기록들.

 이두호 작가의 거실과 또 다른 방에 빼곡하게 들어찬 각종 자료
이두호 작가의 거실과 또 다른 방에 빼곡하게 들어찬 각종 자료 ⓒ 권우성

그는 2012년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복식이 골치 아프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 용포를 그린다면, 자료 영정 사진은 앞모습만 나와 있고 뒷모습은 없다"며 "구태여 뒷모습을 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 손자도 본다고 생각하면 뒷모습까지 구체적으로 그려 넣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봤다.

"그게, 사실은 앞뒤가 똑같은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 내가(웃음). 박물관 같은데 가면 보통 앞만 보이게 걸어놓잖아요. 그럼 그걸 뒤집어 볼 수도 없고... 그러다 어떤 사진을 봤는데 앞뒤가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 후로는 맘 놓고 그렸죠(웃음). 그런데 그렇게 해도 나중에 보면 미진한 구석이 있거든요? 사실, 완벽하게 한다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엉터리로 하면 안 되잖아요. 실오라기 같은 건 다 표현 못 해도 큰 틀에서는 같아야 하니까. 현대물 같으면 좋은데, 시대물이니까 그런 게 어려워요."

사실감을 더 제대로 살리고 싶다, 작가 이두호의 화두다. 비교적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정조의 수원 화성 행차지만 "세 번, 네 번씩 되풀이해서 그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나중에 뭘 뒤져보면 뭔가 잘못 그린 것 같아 고치고 또 고치고"하는 작가가 이두호다. 이토록 자기 일에 겸손한 작가에게 절필 선언을 하게끔 만든 일이 있었다. 검찰청에서 온 한 통의 전화가 그 시작이었다.

이두호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이두호#객주#김주영#덩더꿍#바지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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