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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번 야라강 브릿지에 놓인 노란의자는 기다림을 보여주는 듯 했다
▲ 기다림을 전하는 노란 의자 멜번 야라강 브릿지에 놓인 노란의자는 기다림을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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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멀리 뱃고동이 울리면 네가 울어주렴
아무도 모르게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서

안녕 내 작은 사랑아! 멀리 별들이 빛나면 네가 얘기하렴 아무도 모르게
울면서 멀리 멀리 갔다고." 

그룹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이 만들고 부른 '안녕'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후 추모곡으로 더 유명해졌다. 귀여운 친구들, 작은 사랑들이 울면서 멀리 간 후에 말이다. 그저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었던 2014년 4월 16일.

진도 팽목항에서 전해온 '사고 소식'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시작으로 단순한 사고가 아닌 일이 돼버렸다. 사고 당일, 세월호는 수학여행 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선원 26명 등 459명과 차량 180대, 잡화 등 화물 3608톤을 싣고 운항 중이었다. 그리고 그 후의 일은 많은 사람이 신문 보도 등을 통해 접한 대로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자신들도 제발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호주에서도 세월호 추모제... "잊지 않을게"

한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세월호 사건 당일 부터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눈물을 보인 호주 중년 남성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 눈물을 감추지 않은 호주 아저씨 한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세월호 사건 당일 부터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눈물을 보인 호주 중년 남성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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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로서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일에, 더구나 정치적인 이야기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습니다.

단지 추모의 의미를 담아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뜻을 밝히니 예상 외로 돕겠다며 뜻을 같이해주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전혀 알지 못했던 분들을 알게 됐고, 오늘 이렇게 추모 행사를 하게 됐습니다."

호주의 멜번 시내 중심을 흐르는 야라 강에 있는 통행자 전용 다리에서 추모 행사를 기획·진행한 백소요씨의 말이다.

아직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어린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다가 깊은 바닷속으로 잠겨 버린 이 사건. 1년 동안 유가족의 거리 농성이 이어지자 꽤 많은 사람이 '지겹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백소요씨는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지겹다는 말을 할 수 있느냐"면서 "오늘 행사처럼 이렇게 단순히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부모의 비통한 마음을 헤아린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날 추모는 단순히 노란 리본 달기에서 끝나지 않고, 현대 무용을 전공한 신혜진씨의 퍼포먼스, 미술가 윤종희씨의 세월호 유화 제작 퍼포먼스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진행됐다.

멜번시청으로부터 집회 허가를 받고 지난 16일 이른 아침 현장에 도착해 준비를 마친 후 오전 11시부터 추모 행사를 시작했다. 야라 다리를 오가는 많은 이에게 전단을 나눠주며 직접 설명을 한 박성훈씨는 남아프리카에서 어릴 때부터 살다가 지난달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왔다고했다. 호주에 오기 전에는 잠시 광화문 근처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이곳의 누구보다도 유가족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최근까지 봐 온 셈이었다.

한국인 친구와 함께 추모제 현장을 찾은 호주 젊은이는 '가슴이 많이 아프다'며 '빨리 유가족들 마음이 치유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늘어나는 현지 동참자 한국인 친구와 함께 추모제 현장을 찾은 호주 젊은이는 '가슴이 많이 아프다'며 '빨리 유가족들 마음이 치유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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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월호 참사에 처음엔 놀랐고, 유가족의 모습을 보고 정말 가슴이 아프던 차에 지금 머물고 있는 멜번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왔다"면서 종일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했다.

곧 개인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는 미술가 윤종희씨는 이날 중국인 친구 양재건씨와 함께 페인팅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희생 당한 아이들의 사진을 하나씩 다시 보며 캔버스를 채워갔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강 위에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그의 얼굴이 변해간 것은 비단 차가운 바람 때문만은 아닌듯 싶었다. 그리는 동안 그의 눈은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 그림 앞에서 즉흥 무용을 보여 준 신혜진 현대 무용가는 "희생 당한 아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춤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또 포스터 제작에 참여했던 이신혜씨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면서 "속히 유가족이 원하는 진실이 밝혀져 모두가 이 슬픔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무용 '살풀이'를 생각하며 현대무용에 접목시킨 즉흥 무용으로 세월호를 기린 신혜진 현대무용가
▲ 가슴 시린 춤사위 한국 무용 '살풀이'를 생각하며 현대무용에 접목시킨 즉흥 무용으로 세월호를 기린 신혜진 현대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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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부는 이날 일찍부터 추모 행사장에 나와 이런 저런 일을 돕고 있었다. 이 주부는 몇 차례나 눈물을 흘리며 "지난 1년, 물론 살아가는 일이 바빠 매일 기억할 순 없었지만 수시로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아팠다"면서 "우연히 SNS를 통해 이 행사를 알게 됐고, 무엇으로든 힘을 보태줘야 할 것 같아 행사장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 지 참 막막했다"는 이 주부는 "단순하게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면 이 슬픔을 공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가는 호주인들이 하나 둘, 관심을 보이며 노란 리본에 글을 적어 다리 난간에 매달던 중, 점심 시간쯤에 갑자기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몰려왔다. 멜번 시내 견학을 나온 Boronia K 12 College 학생들이었다. 인솔교사에 이끌려 행사장으로 온 이들은 차례 차례 노란 리본에 얼굴을 알지 못하는 또래 친구의 명복을 비는 글귀를 적어 매달았다.

이 인솔 교사는 "지난해 사고 이후 지금까지 깊은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면서 "마침 멀리서 노란 리본이 가득 달린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도 의미있는 기억을 남겨주고 싶어 이리로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벌써 1년이 됐다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는다.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작은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앨리스 박씨, 음악을 전공하는 유학생 다나 박씨 등 많은 한인도 행사장을 찾았다. 다나 박씨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면서 "참여를 하는 것도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고, 이런 작은 힘이 모이면 된다는 생각에 행사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주부는 "리본 하나 단다고 뭐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찾아왔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엄마는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오늘 가슴이 벅차다"면서 "아이들에게 자신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 이 곳을 찾았다"고 덧붙였다.

또 노란 리본을 달며 울음을 터뜨린 한 사람이 있었다. 안산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호주에 와서 살고 있는 A씨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산고등학교 고창석 선생의 제자라고 했다. "자식 잃은 거... 그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고통이죠. 제발 나머지 아이들도 빨리 돌아오길 바라고 무엇보다, 너무 오래 전이라 저를 기억하시지는 못하겠지만, 고창석 선생님... 수줍어 하셨던 선생님으로 기억합니다. 어서 돌아와 주세요"라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리본을 달며 눈물을 흘린 호주인도 상당수였다.

한 호주인 중년 남성은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리며 "앞날이 창창한 아이들이 그 꿈을 펴지 못하고,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슬픈 일이냐. 나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진실 밝혀져야... 정의 지켜야 다신 이런 사고 일어나지 않아"

리본을 단 많은 한인과 호주인은 "이 마음이 아이 잃은 부모들에게 닿아 작게 나마 위안이 되길 바란다", "위로가 마땅한데, 다른 시선이 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고 불편하다",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정의를 지키려고 해야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등의 소감을 남겼다.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가을이 시작된 듯 날씨가 바뀐 이날, 작은 추모회는 의외로 많은 참여자가 함께 하며 오후 다섯 시에 끝났다. 백소요 씨는 "미리 홍보할 여유가 없었다"면서 "와 달라고 알리는 것 보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마음이 모이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소요씨는 또 "후원해 주신 교민 여러분, 젊은 친구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혼자서 뭘 어떻게 할지 막막했지만, 하나 둘 뜻을 같이 해주시는 분이 늘어나 오늘 행사를 하게 돼 정말 고맙게 느낀다"면서 "진실을 향해 힘쓰시는 분들에게 작은 목소리나마 보태는 일은 정말 중요하니, 더 많은 분이 '행동'해 주시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단원고 희생자들의 사진을 하나씩 다시 보며 화폭에 세월호를 담는 퍼포먼서를 보인 윤종희 화가
▲ 화폭에 담은 세월호 아이들 단원고 희생자들의 사진을 하나씩 다시 보며 화폭에 세월호를 담는 퍼포먼서를 보인 윤종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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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멀리 뱃고동이 울리면 네가 울어주렴
아무도 모르게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서
안녕 내 작은 사랑아!  멀리 별들이 빛나면
네가 얘기하렴 아무도 모르게
울면서 멀리 멀리 갔다고."

취재 수첩을 덮고 찬 바람을 마주하며 야라 강을 걸었다. 노래라도 흥얼거려야 눈물이 감춰질 줄 알았는데... 가슴이 자꾸 아려왔다. 눈물이 흐르던 눈이 더 많이 아팠던 이유는, 야라 강에 불던 바람 때문이었을까?

덧붙이는 글 | 4월 24일 발행 되는 <멜번저널>에 중복 게재 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월호 , #멜번 추모제, #야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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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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