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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용감히 출마해서 당당히 낙선한 시민운동가, 사회복지사.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 조금하고 결혼하고 서울 마포에서 12년 활동하고 애 키우고 나니 마흔이 되었다. 2014년 말 살고, 활동하던 마포를 떠나 신랑을 따라 춘천으로 귀촌했다. 앞으로 뭐하나? 뭐해서 먹고사나? 은근히 걱정하며 앞길을 모색하는 철없는 아줌마! 언제까지나 젊을 줄만 알았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나이는 유리장벽임을 느끼고 있다. - 기자 말

경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경기장에 있는 선수들, 감독, 부모들의 마음은 더 초조해지고 전의는 더욱 불타오른다.

4월 13일 춘천 상상마당 옆 춘천리틀야구장에서 강원도 소년체육대회 결승전이 열렸다. 춘천의 소양초등학교 야구부와 일산초등학교 야구부의 경기다.

"엄마 너무 힘들면 힘들다는 말도 안 나온다"

 학교 마치고 운동장에서 야구연습을 하는 소양초 야구부 선수들
학교 마치고 운동장에서 야구연습을 하는 소양초 야구부 선수들 ⓒ 설현정

매일 방과 후 3시간, 방학 때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큰 대회를 앞두고는 주말도 반납하고 다른 지역으로 전지훈련을 간다. 그렇게 준비해온 대회의 결승전이 바로 이 순간이다. 그리고 여기 소양초 선수들 중 우리 아들도 있다.

훈련을 마치고 밤 9시에 집에 도착한 아들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밥을 먹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너무 힘들면 힘들다는 말도 안 나온다. 아까 그랬어."

타자가 들어섰다

 야구 경기전 소양초 선수들 모습
야구 경기전 소양초 선수들 모습 ⓒ 설현정

경기가 시작되었다. 타석에 들어선 9번 김태현 선수는 엉덩이를 좌우로 약간 흔들어 타격자세를 잡는다. 특유의 습관이다. 앳된 얼굴이지만 의연하면서도 무심한 듯한 표정이 여느 프로선수 못지않다.

두 번 스트라이크를 맞고 점점 마음이 조급하련만 차분하게 타격자세를 취한다. 공이 오고…, 안타다! 엄마들은 "우와" 함성을 터트린다. 상대편 부모들은 북까지 준비해 북소리에 맞춰 제법 조직적인 응원을 펼치지만 우리는 수줍다. "우와 잘한다! 파이팅!" 그게 다다.

공격과 수비가 번갈아 펼쳐지고 6회말(초등야구는 6회까지만 한다) 마지막 수비. 4-2의 스코어에서 점수를 내주지 않고 6점 차이로 이겨야 전국소년체육대회에 강원도 대표로 출전할 수 있다. 소양초는 2차전에서 큰 점수 차이로 져서 이번 경기에서 승점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총 세 번의 경기를 해서 승점이 높은 팀이 대표로 결정된다.)

우리 팀이 수비를 시작하자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수비하는 우리 선수들, 비 때문에 공이 잘 안 보일까, 또 미끄럽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상대편은 마지막 공격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공격의 고삐를 조여오고, 상대편 관중석의 응원은 더 씩씩하고 위협적이다.

상대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상대편 타자가 잘한다. 기막히게 공을 쳐댄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이 믿음직스럽게도 '딱딱' 잡아낸다. "우와! 멋있다!" 소양초 선생님들이 자기 몫을 해내는 제자들에 감탄한다. 소양초 학생들도 경기장 망에 얼굴을 대고 초집중이다. 아빠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이 바싹 바싹 마르고, 엄마들은 이제 수줍음도 체면도 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언젠가 박지성 선수가 "그라운드에 올라갔을 때 관객들에게 믿음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인터뷰한 걸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우리 소양초 선수들의 수비가 딱 그렇다.

이제 소양초 마지막 공격 차례

3번 타자 10번 김태현 선수(소양초에는 김태현 선수가 두 명이다. 9번, 10번)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등학생인데도 덩치도 포스도 장난이 아니다. 류현진 선수 느낌이 난다. 1차 경기에서는 날아오는 공을 몸으로 그냥 받아내 '몸에 맞는 공'으로 만든 배짱의 소유자다.

소양초의 공격이 시작되자 비는 더 많이 쏟아진다. 세 번 공이 맞지 않았다. 결정적인 공격의 자리에서 모두 자기의 배트만 보고 있는 상황. 비까지 내리는데도 뚝심 있게 배트를 휘두른다. 투수의 공이 오고 역시~ 안타다!

뒤이어 4번 타자의 안타, 그리고 5번 타자의 추가안타로 만루가 되었다. 경기가 달아오를수록 대기석에서 선수들의 응원가가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진다. 4학년 막내 성현수는 1루로 나간 타자들의 장갑을 재빠르게 받아온다. 동그랗고 큰 눈을 반짝이며 형들의 경기를 지원한다.

주자만루에서 박제영 선수의 깔끔한 우중간 적시타가 터지고 모든 선수들이 1루에서 2루로, 2루에서 3루로, 3루에서 홈으로 이동한다. 드디어 1점 획득! 스코어는 5대 2가 되었다. 이렇게 3점만 더 내면 우승과 함께 전국소년체전에 강원도 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1루, 2루에 우리 선수들이 있는 상황. 안타가 나오고 또 안타가 나왔다. 경기의 페이스는 완전히 우리에게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홈으로 들어오던 선수가 잡히면서 경기는 끝났다. 5-2로 경기에서는 승리했지만 승점이 더 많은 일산초가 강원도 대표가 되었다.

자기 자리에서 몫을 다해내는 선수들

 시상식에서 매달을 받고 포즈를 취한 선수들
시상식에서 매달을 받고 포즈를 취한 선수들 ⓒ 박제영선수 어머니

정말 아쉬운 경기였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충분히 해볼 만 한 경기였는데…. 보는 이들이 이럴 때 선수들은 오죽하랴.

"얘들아! 고맙다. 너희들은 이미 최고다."

경기가 끝나고 조남현 감독은 선수들 이렇게 격려했다. 야구부 선수들은 연습이 없는 주말에는 동네에서 발야구를 하고, 집에서 놀 때는 병뚜껑야구를 한다. 한 선수는 잘 때도 글러브를 안고 자고 과자도 '홈런볼'을 가장 좋아한다.

아이가 야구를 시작한 작년 11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야구경기를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경기규칙도 몰랐다. 야구에 문외한인 나에게 이날 경기는 야구가 얼마나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인지를 알려주었다.

 선수 생일날 함께 축하하고 간식을 먹고 있는 소양초 야구부 막내 성현수 선수
선수 생일날 함께 축하하고 간식을 먹고 있는 소양초 야구부 막내 성현수 선수 ⓒ 박제영 선수 어머니

갈고 닦은 실력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한 선수 한 선수가 존재 대 존재로 만나는 라운드의 매력이 새롭게 다가왔다. 하나의 안타, 하나의 수비가 결정적이며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곳이 야구다.

어리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 해내는 선수들의 모습과 진지한 눈빛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빗줄기는 이제 제법 굵어졌지만 내 마음은 꽉 차 올랐다.

덧붙이는 글 | 소양초등학교 야구부 선수 명단 : 장태빈, 김태현A, 김태현B, 박민재, 박제영, 오규남, 우준성, 유정우, 정재윤, 기현우, 김대진, 성현호, 이재덕, 김도현, 박정우, 성현수



#소양초등학교#춘천 야구#소양초등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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