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인 신문 4개가 1000개의 총검보다 더 무섭다!"그 유명한 장군,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자고로 '미디어'는 사회적으로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다. TV를 '바보상자'라고까지 칭하는 것 역시, 전기통신 기술력 발전과 더불어 일반 대중에 대한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극대화 됐음을 보여준다.
지난 3월 말 만난 개미(별명)씨는 미디어의 대중적 파급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더 가깝게 사회 문제 아니 바로 자신이 봉착한 삶의 문제에 관심을 두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와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말하게 하기 위한 '소통과 참여'를 확산시키는 일(활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영상,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반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언시(언론고시)라고 하잖아요. 방송사 PD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이 경쟁하고 있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제가 합격할 것 같지도 않았어요. (웃음) 게다가 방송국에 들어가면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풀어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실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은 '나'인데 데스크에서 원하는 것만 결국 방송되잖아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이야기, 많은 사람과 나눠야 할 이야기들은 묻히고 말죠."학생 때 친구 서너 명과 함께 영상제작 동아리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던 때부터 미디어에 대한, 미디어를 통한 열망은 시작되었다. 졸업 직전이던 개미씨가 학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당장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대자보 글을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것 같았어요. 사실 자기 얘기인데도 사람들이 관심이 없잖아요. 대자보가 형식 면에서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들이 그래도 짧은 영상은 재미있게 보니까. 6mm 테이프 들어가는 캠코더 있잖아요. 지금은 다 디지털로 바뀌어서 이제는 나오지도 않는 그 캠코더를 친구들이랑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만들었죠. 등록금 인상에 대한 것이나 학교 안에서 청소 일 하시는 미화 노동자들 이야기처럼 대학생들이 학교 다니면서 직접 겪을 수 있는 주제부터 '대학생과 노동자들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같은 조금 더 넓은 주제까지요. 그때가 한창 <지식채널 e> 프로그램이 떴을 때거든요. 그 콘셉트 그대로 가져다가 만들기도 했죠." 그전까지는 카메라로 뭘 찍어본 적도, 동영상 편집도 해본 적 없던 개미씨, 학원에서 영상편집 기술도 배우고 곧이어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제작 강좌도 들었다. 제대로 배워보니 한 사안을 심도 있게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더란다.
"영상은 아주 직관적인 미디어잖아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는 게 생각보다 더,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글쓰기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 내 생각도 아주 명확해야 하고요. 다큐멘터리 수업에서 한 사람에 한 편씩 수료작을 만들었거든요. 20분 안쪽으로 단편작품을 만들어 제출하는데, 저는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주제로 삼았어요. 주인공은 야간에 편의점 알바하는 청년이었어요. 공장에서 주야 맞교대 하는 생산직 노동자 얘기랑 게임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친구 얘기도 같이 섞어서 만들었어요. 나름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보니 굉장히 맘에 안 들었어요. 그러면서 느꼈죠. 하고 싶은 얘기는 이만큼 있는데, 그게 다 글로만 정리되어 있던 생각이었구나, 영상 만드는 건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구나 하고요."지금은 영상을 '직접' 만드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퍼블릭 액세스(public access)'를 지향으로 대안적 미디어 활동을 하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라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퍼블릭 액세스'란 누구나 직접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 창작물을 다른 이들과 자유롭게 공유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미디액트는 이를 누구나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으로 보장하기 위해 활동해 온 곳이다. ▲ 노동자·장애인·이주민·노인·청소년과 같은 미디어 소외계층 교육부터 ▲ 공영방송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의무편성 법제화 ▲ 제작부터 방송운영까지 시민이 직접 하는 '시민채널 RTV' 설립 ▲ 지역 미디어센터 설립 지원 등이 그동안 미디액트가 해온 일이다.
"미디액트에서 하는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듣다가 인연이 시작되었죠. 웹진도 같이 만들고, 강의 보조도 하고, 그러다가 정식으로 일하게 된 지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저는미디어교육, 마을 미디어 지원 업무를 맡고 있어요. 내가 만든 매체를 가지고 직접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대신 지역 주민이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라디오나 지역신문 같은 걸 만들어보고자 기획을 내면 그걸 컨설팅하고 지원해주는, 일종의 후방 활동이에요."동네 미담에서 지역 현안까지, 마을 미디어
최근 미디액트는 서울시로부터 '마을 미디어 지원센터'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개미씨가 맡은 업무 중 대부분은 바로 이 센터의 일이다. '마을 미디어 지원' 업무란, 지역의풀뿌리 미디어를 발굴하고 독려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구현하는 활동은 아니지만, 개미씨는 숨겨져 있던 목소리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지금의 일도 자신과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해마다 서울시 전역에서 40~50개 단체(혹은 주민모임)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해요. '마을공동체 미디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나누기부터 미디어 제작 실습 같은 프로그램을 지원 받고자 신청하는 분들이 많고요. 이미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신문이나 잡지처럼 하나의 매체를 만들 수 있도록 제반 경비나 장비, 혹은 기획컨설팅을 제공받을 수도 있죠. 2, 3년 이상 꾸준히 지역라디오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 온 곳도 있어서, 선정된 곳들의 상황에 맞게 지원받을 수 있게 합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세금으로부터 할당된 지원금을 서울시 사업 기준에 맞게 쓰면서, 사업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이에요. 가장 재미있을 때는, 마을 미디어 주체들을 만날 때죠. 작년만 해도 40개가 넘는 팀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지요. 어떻게 해야 참여자를 확대할 수 있는지, 만들고자 하는 미디어의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려면 어떻게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지, 마을 미디어의 나아갈 길은 도대체 어디인지. 이런 고민을 나누는 과정 역시 민중주도형 미디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원을 하다 보면 주민참여 확대 측면에서도, 만든 콘텐츠 구성 면에서도 마을공동체 미디어들이 성장해 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기가 방송에 나온다는 것 자체, 그걸 주변의 사람들에게 공유한다는 것이 강한 참여 동기이지만 점점 듣는 사람의 반응을 고려하게 되고, 담아내고 싶은 주제들도 개인 취미나 동네 미담에서 지역의 이슈와 현안들로 확장되기도 한다.
"영상이나 신문보다는 아무래도 팟캐스트를 활용한 '라디오' 형태가 제일 많아요. 영상의 경우 어느 정도는 전문기술이 필요하고, 신문 역시 정기적으로 글을 써서 게재한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반면, 라디오는 녹음 후 편집하는 작업 외에는 편하게 한두 시간 신나게 수다 떠는 걸로 생산이 되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동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창신동 라디오방송국 덤'이라는 방송국의 활동이 인상적이에요. 종로구 창신동에는 작은 봉제공장들이 많이 모여 있잖아요. 그 공장 안에 스피커를 달아주고, 실제로 그 동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분들이 일 끝나고 녹음해서 비정기적으로나마 틀어주는 그런 방송이에요. 다들 일하느라 힘들고 바쁘셔서 방송이 자주 나오지 않는 게 안타까워요."누구나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채널의 꿈마을 미디어 지원활동 외에도 개미씨는 국내외 다양한 미디어 동향과 정책을 탐색하는 웹진 <진보적 미디어 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회 활동도 하고 있다.
"처음에 꽂혔던 건 '우리가, 민중이 우리 채널을 가져야 한다. TV든, 라디오든 틀면 딱 나오는 매체, 그 채널에서 누구나 무슨 얘기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였어요. 때로는 지금 일이 처음 생각했던 목표에서는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지원 사업 실무가 너무 많기도 하고, 또 구체적인 미디어 제작 활동을 직접 하고 싶기도 하고 말이죠. 웹진 <ACT!>를 만들면서 해외의 독립채널 운동 사례나 새로운 장비, 기술 정보를 접하다 보면, 이런 걸 어떻게 한번 써먹어 볼까 자연스레 고민이 되지요. 아직은 발등에 떨어진 일만으로도 벅차지만, 그래도요!"'누구나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싶다던 개미씨의 첫 마음은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지원 업무를 하고, 공부하면서 오히려 더 깊어졌다. 그 마음이 '마을공동체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민중의 채널'을 이미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하나 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관지 <일터> 4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