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29 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겨우 4곳에서 치러지는 선거이다. 하지만 성완종 게이트 사건과 관련, 여·야간에 치열한 공방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정국 흐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선 투표율과 더불어 각 정당의 지지자들이 얼마나 집결하느냐의 여부가 이번 선거의 막판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특히 광주 서구을과 서울 관악을의 경우, 새정치연합을 탈당한 천정배·정동영 두 후보에 대해, 호남 유권자들이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광주 서구을은 당연하고, 서울 관악을의 경우도 호남 유권자의 비율이 꽤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위해, 과거에 전통적으로 나타나곤 했던 '호남의 전략적 투표성향'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에 대해 한 번 짚어보기로 한다.
전략적 투표 그리고 뒤베르제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선거에 있어서 전략적 투표(Strategic Voting)란, 유권자가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특정 결과를 얻기 위해 투표 하는 것을 말한다. 2명 이상의 후보자 가운데, 전체적인 선거의 판세를 고려하여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이 수반된 투표를 의미한다. 따라서 후보에 대한 유권자 개인의 좋고 싫음은 부차적인 요인으로 밀려나게 된다.
특히 1명만 당선이 되는 소선구제 하에서는, 이런 전략적인 투표행위가 매우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는 양당제를 강화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된다. 왜냐하면, 선택의 기준에 있어서 '개인적인 선호'가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을 할 경우, 대체적으로 선거에 있어서 정당과 후보자가 둘로 압축이 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가설과 법칙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 프랑스의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이다. 그는 여러 선거사례를 분석한 결과, 선거제도가 정당체제나 투표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이후 다른 정치학자들이 보다 심화된 연구를 통해 하나의 '법칙'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주된 내용은 우선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는 양당제를 가져온다"는 것이고, 두번째로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특히 단순다수대표제, 즉 소선거구제가 양당체제를 낳는다는 가설은 비교적 보편적인 법칙으로 인정받는다. 물론 표면적으로 볼 때, 예외적인 상황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 각각의 경우 역시, 자세히 선거구 단위로 따져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당지역에 있어서 당선 가능성이 있는 정당이나 후보는 결국 둘로 압축이 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렇게 소선거구제가 양당제를 낳는 이유는, 크게 제도적인 요인과 심리적인 요인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제도적인 요인. 소선거구제에 있어서 제1당의 의석률은 득표율보다 높아지고, 제3당의 의석률은 득표율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영국의 제1당이었던 보수당은 득표율이 40%임에도 의석률은 60%에 달했고, 반대로 제3당인 자유당은 약 10%의 득표율임에도 불구하고 5% 이하의 의석률밖에 얻지 못했다.
평소에 심정적으로 제3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라도,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면 제1당이나 제2당에게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것이 심리적인 요인이다. 유권자의 '사표 방지심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당선 확률이 낮은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낮아지고, 제1당과 2당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지금 논의하고자 하는 '전략적인 투표' 행위의 원인에 해당한다.
결국 이런 현상 때문에, 지지율이 약한 정당은 다른 당과 통합을 하거나 후보연대를 하면서 양대 정당으로 수렴되는 흐름이 나타난다. 뒤베르제는 이를 가리켜 '양극화'라고 지칭했다. 결국 자신의 투표권이 사표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유권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보다 당선가능성이 높으면서도, 비교적 이념성향이 유사한 쪽으로 투표를 한다.
호남만의 독특한 전략적 투표 성향의 문제
그런데 선거 때마다 나타나곤 하는 호남의 전략적 투표성향은, 앞서 언급한 뒤베르제의 이론과는 또 다른 매우 독특한 배경이 있다. 호남 유권자들의 심리 속에 내재되어 있는, '고립에 대한 공포'와 '진보지향성'이 바로 그것이다.
1980년 5월 18일의 비극적인 체험은, 호남 유권자들로 하여금 한국 민주화운동의 정신적인 근원지라는 자부심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다른 지역과는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신군부 세력의 만행에 당해야만 했던 심리적인 상흔을, 깊숙이 내면화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인구 숫자나 정치적인 영향력에 있어서 늘 '소수파'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 그리고 지역발전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다는 뿌리 깊은 차별감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대표선수 자리를 놓고 후보군이 분열이 될 경우, 호남 유권자는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야권의 분열은, 자칫 중앙정치 무대에서 보수와 진보, 여·야간의 대결에 있어서 호남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때문에 호남의 유권자들은 선거 막판에 이르기까지 결정을 최대한 늦춘 상태에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호남 유권자들에 대한 평상시의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 결과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상시에는 '진보지향성' 보다는 실용주의적인 관점이 보다 더 강하게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에 대한 지지 성향이나, 2003년 분당상황에서의 민주당 지지 혹은 2012년 대선시기의 안철수 지지 현상 등이 바로 이런 심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대표선수가 가려지는 경우, 호남 민심은 결정적으로 반전의 과정을 거친다. 이른바 '몰아주기' 현상으로 유턴을 한다. 그 동안 속으로만 담아왔던 '진보지향성'이 분출되면서, 폭발적인 지지 양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다름 아닌, '정치적인 명분'이다.
2003년 말까지, 호남지역에서 당시 민주당의 지지율은 40%대였고,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20%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4년 초부터는 민주당이 20% 미만으로 급락을 하고,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40%대로 수직상승을 했다.
당시에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대 '열린우리당'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던 정치상황이, 이런 급격한 변화의 근본 원인이었다. 호남 유권자들은 후보가 나뉘는 가운데, 열린우리당을 자신들의 대표로 최종 확정하면서 지역 민심을 묶어내는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호남의 민심은 평소에 앞장서서 흐름을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단 정치적인 '명분'에 대해 결론을 내리면, 즉 '세대'나 '이념 기반'에 있어서 진보지향성에 부합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결정하게 되면, 후행적으로 급격한 쏠림현상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호남의 전략적인 투표'가 이뤄지는 기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호남의 전략적인 투표성향과 관련하여 참고할만한 가장 최근의 사례는, 작년에 있었던 6.4 지방선거 광주광역시장의 선거 결과이다.
당시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의 측근이었던 윤장현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상대방인 강운태 후보에게 밀리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선거 막판인 5월 30일에 공개되었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조선일보> 의뢰, 미디어리서치 조사결과), 무소속인 강운태 후보에 비해 새정치연합의 윤장현 후보가 무려 10.5%p나 뒤지는 수치로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끝나고 뚜껑을 열어보니, 이런 흐름과는 전혀 상반되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개표결과, 윤장현 후보 57.9%p 대 강운태 후보 31.8%p로, 무려 26.1%p나 앞선 결과로 윤장현 후보가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호남의 전략적인 투표성향이, 또 다시 여지없이 드러난 선거였던 것이다.
'여당 심판론' Vs. '야당 심판론'
그러면, 이번 4.29 재보선에 있어서 광주 서구을 선거구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나타날까?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다소 무책임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알 수 없다'가 정답이다. 각 정당의 지도부나 선거 전문가들 모두가, 도저히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초박빙의 대결양상이 진행되고 있다. (조영택 새정치연합 후보 36.2%p, 천정배 무소속 후보 37.9%p. 4월 23일 MBN·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호남의 전략적인 투표성향이 어느 쪽 후보의 손을 들어주는가에 따라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과거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도는 호남의 전략적인 투표성향이 나타날 수 있는 전형적인 케이스에 해당한다. 결국, 과연 어느 후보가 호남 민심에 부합하는 '정치적인 명분'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면 될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천정배 후보의 탈당과 출마는 '야당 심판론'으로 귀결이 되고, 조영택 후보의 명분은 '여당 심판론'으로 압축이 된다고 판단된다. 현재의 정치적인 상황과 연관 지어 판단을 해보면, 각자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어찌되었건 판단은 결국 유권자 개개인의 몫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또 다시 엄중한 현실세계의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자기권리 행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호남의 민심은, 여당과 야당 중 과연 어느 쪽을 심판할 것인가?
각 정당이나 후보 진영 모두, 겸허히 그 결과를 수용해야할 날이 이제 내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