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보도를 위해 파업을 마다하지 않았던 MBC 노동자들이 다시 한 번 웃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김상준)는 7일 정영하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아래 MBC노조)위원장 등 2012년 파업을 이끌었던 집행부 5명의 업무방해죄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1심(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재판장 박정수 부장판사) 재판부처럼 공정보도는 언론인들의 근로조건이므로 정당한 파업 사유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큰 틀에선 1심과 동일하게 판단했지만, 파업의 정당성을 확인한 부분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지난해 5월 27일 1심 재판부는 MBC노조에 무죄를 선고하며 첫 번째 이유로 '전격성'의 문제를 꼽았다. 현재 법원은 파업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도록 '전격적'으로 이뤄져야 업무방해죄를 인정한다. 1심 재판부는 MBC노조가 2011년부터 줄곧 회사에 방송의 공정성 보장을 요구해왔고, 제작거부·파업 찬반투표를 연달아 진행한 점 등을 볼 때 회사는 충분히 파업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봤다. 파업의 정당성은 그 다음 판단 대상이었다.
"공정방송은 근로조건... 2012년 파업 정당했다"7일 항소심 재판부는 "쟁의행위가 정당하다면 전격성 등에 관계없이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MBC노조의 2012년 파업은 김재철 사장 개인의 퇴진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보장이 주된 목적이었고, 방송법 등 관련법규를 볼 때 방송사는 물론 구성원에게도 공정방송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공정방송은 노사 양측의 의무며, 실제로 가능한 환경의 조성 여부는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였다.
파업의 과정이나 방법에 전혀 흠결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 문제들이 파업의 정당성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오후 2시 25분 재판장 김상준 부장판사는 "이 사건 파업은 정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선고 시작부터 두 눈을 감은 정영하 위원장은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업무방해죄를 무죄로 판단한 1심 배심원들의 의견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방송의 자유와 공정방송 의무는 모든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등을 위한 것으로 주권자가 판단할 몫"이라며 "이 사건 배심원들은 우리 사회의 평균적 시청자라는 점에서 그들이 파업에 대해 갖게 된 느낌이나 의미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후 2시 32분, "1심의 업무방해죄 무죄판결은 정당하며 법리 오해 및 사실 오인의 위법이 없다, 검사의 (1심 불복) 주장은 이유 없다"고 말하는 김 부장판사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졌다. 재판부는 김재철 당시 사장의 법인카드 내역 등을 노조가 공개했던 일 역시 업무상 비밀 누설(정보통신망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재물손괴죄는 유죄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MBC노조가 건물 로비에 낙서하고, 현판을 훼손한 혐의 등을 인정, 정영하 전 위원장은 벌금 100만 원, 강지웅 전 사무처장과 이용마 전 홍보국장, 김민식 전 부위원장, 장재훈 전 정책교섭국장은 각각 벌금 50만 원에 처한 1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유지했다.
"MBC 경영진에게 양심 있다면 당장 물러나야"형사재판 1심은 물론 지난 29일 해고·징계무효확인 소송 항소심에 이어 또 다시 '2012년 파업은 정당했다'는 법원의 결론에 노조 관계자들은 들뜬 모습이었다.
재판 내내 긴장한 모습이었던 정영하 전 위원장은 밝은 표정으로 "감개무량하다"며 "두 번의 판결로 누가 정당하고 옳았는지 명확히 확인했다"고 말했다. 강지웅 전 사무처장은 "피고인 다섯 명은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걸고 재판에 임해왔다"며 "경영진이 최소한 언론인의 양심이 있다면 재판 결과에 승복하고 당장 물러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MBC노조의 관련 소송에 줄곧 참여해온 신인수 변호사는 "'정당한 쟁의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 내용은) 단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 여기 있는 분들과 MBC 구성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고통이 공영방송 MBC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여러분의 고통과 아픔을 법원은 잊지 않았고, 정당하다고 판시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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