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의 모회사(母會社)는 '다임러 AG(Daimler AG)'이다. 독일의 거대 자동차그룹은 세계적인 상용차 기업인 '다임러 트럭(Daimler Trucks)'도 보유하고 있다.
다임러 트럭이라는 회사가 메르세데스 벤츠 트럭도 판매하니, 단순하게 보면 결국 같은 회사인 셈이다. 이 다임러 트럭이 지난 5일 네바다주로부터 세계 최초로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는 무인 상용차(상업상의 이익을 목적으로 승객이나 화물의 운송에 사용되는 자동차) 운행 허가를 받았다.
올해 초에는 메르세데스 벤츠가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Consumer Electronics Show)'를 앞두고 무인 승용차(사람이 타고 다니는 비영업용 자동차) 콘셉트를 공개해서 큰 주목을 받더니, 이번에는 다임러 트럭이 자율주행 상용차로 운행 면허까지 받은 것이다.
흔히 '무인자동차'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차량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동운전 차량(또는 자율주행 자동차)'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단순히 차 안에 사람이 없다는 뜻의 '무인(無人)'이 아니라 실제 주행을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도로 위 달리는 무인 차량... 이제 시작이다
이미 구글이 완전히 컴퓨터로만 운행하는 콘셉트의 자동차(핸들, 가속페달, 브레이크와 같은 기본 조작장치가 아예 없다)를 지난해 공개한 바 있지만, 이렇게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는 면허를 상용차가 직접 받은 건 다임러 트럭이 최초다.
물론 아직 일반인이 구입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됐다는 게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트럭의 이름은 '프라이트라이너 인스피레이션 트럭(Freightliner Inspiration Truck)'인데, '프라이트너' 역시 다임러 트럭이 보유한 미국 브랜드다.
프라이트라이너 인스피레이션 트럭은 미국 네바다주 교통부로부터 공공도로에서 주행할 수 있는 면허를 획득했고, 주 경계 안에 있는 고속도로에서 시험 운행이 가능하게 됐다. 그래서 네바다주 번호판도 달았는데,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AUTONOMOUS VEHICLE(자율적 운송수단)'이라고 번호판에 명시돼 있다.
바야흐로, 이제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를 움직이는 게 공식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첫 출발은 미국 네바다주였지만, 그리 머지않아 전세계 곳곳에서 자동운전 트럭이 출현할 게 뻔하다.
무인 상용차, 이렇게 움직인다
다임러 자율주행 트럭의 무인운전 기능은 전면의 장거리·단거리 레이더와 입체 카메라 그리고 적응형 순항제어 기술 등을 통해 구현된다고 한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Active Cruise Control, ACC)'과 '액티브 브레이크 어시스트(Active Brake Assist, ABA)'가 장거리 레이더와 단거리 레이더를 이용해 주행과 감속을 조정하며 자동차 간의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요즘 신차 중에는 ACC나 ABA가 이미 탑재돼 있는 차량들도 있으니, 사실 완전히 낯선 기술들은 아니다.
장거리 레이더는 18도 시야각으로 전방 250미터까지 탐색하고, 단거리 레이더는 130도 시야각으로 전방 70미터까지 탐색한다.
그리고 트럭 전면 유리에 부착된 입체 카메라는 수평 45도·수직 27도 시야각으로 100미터까지 탐색하며 차선 표시를 인식하고, '하이웨이 파일럿(Highway Pilot)' 시스템은 전면 레이더와 입체 카메라를 연결해 차선 유지·충돌 회피·속도 제어·감속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이와 같이 무인자동차에는 각종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이 필요한데, 차량 자체적인 실시간 주변상황 감지 외에도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등을 활용해 정밀지도를 통한 예측시스템도 작동하고, 이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자동차 구동장치를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실제로 제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율운행 자동차'가 가져올 미래 풍경
벌써 운행 면허를 받은 다임러 트럭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출발지와 도착지가 사전에 확정되어 있고, 운송시간이 곧 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반 승용차보다 화물 상용차에 무인주행 장치가 먼저 적용되어 시판될 가능성이 높다.
자율주행 트럭은 인간이 운전할 때와는 달리 항상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테고, 병목지점을 앞두고서는 가장 적절한 시점에 차선변경을 시도하며, 연료소비나 운송시간의 측면에서 가장 경제적인 형태로 운행될 것이다.
승용차보다는 상용차가 이런 부분에 훨씬 더 민감하고 얻을 수 있는 이익도 크기 때문에, 무인자동차와 관련한 각종 난제들(법적 책임 소재, 보험 제도, 심리적 거부감 등)을 돌파하는 데에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셈이다.
그리고 운전업무 강도가 현저히 낮아진 트럭기사들은 단순히 운전사가 아니라 물류담당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대형화물 운송뿐만 아니라 택배서비스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UPS 같은 회사는 택배트럭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과 모든 도로를 데이터로 남기고 있는데, 매일같이 수십 군데 배송을 책임지는 택배트럭에는 수많은 센서가 장착돼 있다. 이렇게 구축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UPS는 가장 효율적인 배송방법을 고안해내고, 항상 작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며 배송상황을 기록하는 택배기사들은 보다 짧은 시간에 훨씬 더 많은 물품을 배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자율주행 기술까지 본격적으로 더해지면 나중에는 말 그대로 '무인 택배'도 가능하지 않을까.
무인트럭과 무인택배, 그 다음은 바로 '무인택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우버(Uber)와 같은 택시공유 서비스가 있는데,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이런 서비스들과 직접적으로 연계해 무인택시가 출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누구든지 언제라도 스마트폰을 통해 택시를 부르고, 그 택시는 자율주행을 통해 승객에게 가며, 목적지에 도착한 승객은 미리 앱에 등록해 놓은 카드로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트럭기사들이 물류담당자로 변신했듯이, 택시기사들은 승객이 이동하는 동안 각종 용역을 제공하는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관광객들에게는 지역가이드가 되고, 노인이나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게는 외출시 돌보미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무인자동차는 굳이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차량을 소유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지금은 자동차가 그냥 단일 개체로 운행되지만 미래의 자동차는 모든 차량의 자율주행을 위한 거대한 교통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움직이게 될 테고, 전체 교통시스템을 관리하는 중앙 통제센터에서 교통상황이 실시간으로 각 자동차에 전달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차가 필요한 순간에만 잠깐 (무인택시를 부르듯이) 세단이든 SUV든 픽업트럭이든 그 용도에 맞는 차량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한정된 자동차를 소유하면서 차량관리나 보험료 납부에 쓸데없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쓸 이유가 그만큼 적어진다.
결국 중앙 교통 통제센터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무인자동차들 중에서 자신의 목적에 맞는 차를 그때 그때 호출해서 사용하고 반납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가 될 테고, 인간은 운전이라는 노동으로부터 대부분 해방되는 것이다.
세탁기가 없었던 과거에는 인간이 일일이 다 빨래를 해야 했지만, 현재는 그저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된다. 운전도 이와 똑같아지는 셈이다. 세탁기를 사용함으로써 인류가 세탁에 쏟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듯이, 자동주행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높은 집중도가 요구되는 운전에서 해방되어 인간으로서 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이게 바로 자율주행 자동차라는 첨단기술을 가지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청사진이며, 진정한 의미의 '진보'를 위해 끝까지 지켜내야 할 가치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인의 개인 블로그(http://arthurjung.tistory.com/496)에 동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