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하면 걱정이 생깁니다. 걱정 하나는 새로운 걱정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걱정은 또 다른 걱정으로 나아갑니다. 웃음은 웃음으로 이어집니다. 웃으니까 자꾸 웃고, 또 웃으며 거듭 웃어요. 고운 말은 고운 말로 이어지고, 미운 말은 미운 말로 이어집니다. 낯을 찌푸리는 사람은 낯을 찌푸릴 만한 일로 자꾸 나아가며, 맑은 낯으로 노래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맑게 노래하는 길로 즐거이 나아갑니다.
어떤 마음이 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홀가분한 마음이 될 수 있다면 홀가분한 삶으로 나아갑니다. 걱정이 가득한 마음이 된다면 걱정을 가득 쌓은 삶으로 나아갑니다. 남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남이 나를 보살피거나 돕기 때문에 홀가분한 삶이 되지 않습니다.
나무는 언제 어디에서나 나무입니다. 풀과 꽃은 언제 어디에서나 풀과 꽃입니다. 전쟁통이어도 시골지기는 씨앗을 심고 나락을 갈무리합니다. 전쟁통이건 말건 겨울눈은 새봄에 깨어나며, 풀은 씩씩하게 돋고 꽃은 곱게 피어납니다. 시골지기가 마음을 쓸 곳은 씨앗과 흙입니다. 나무와 풀과 꽃이 마음을 쓰는 자리는 해님과 바람과 빗물입니다.
두더지는 그제야 머리 위로 눈이 수북이 쌓인 걸 알았어. 그리고 그 눈으로 작은 눈덩이를 만들었지. 할머니가 해 준 말이 문득 생각났거든.(본문 7쪽)아이들은 즐겁게 노는 하루를 생각합니다. 동무가 있건 없건 즐겁게 노는 하루를 꿈꾸고 바랍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까닭은 아이들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장난감이 있거나 놀이기구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지 않아요. 아침에 번쩍 하고 눈을 뜬 뒤 '오늘은 또 뭘 하고 놀까?' 하고 생각하니까, 날마다 새로우면서 씩씩하게 놀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아이들이 아침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면서 '오늘도 지겹게 학교에 가야 하나?' 하고 생각하면, 일어나기도 싫고 아침을 먹기도 싫으며 학교에 가는 길도 지겹습니다. 지겹다고 여기는 마음이 바로 지겨운 하루로 이어집니다.
김상근 님이 빚은 그림책 <두더지의 고민>(사계절, 2015)을 아이들과 읽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재미나게 들여다봅니다. 귀엽게 생긴 두더지를 귀엽게 바라보고, 겨울눈을 굴려서 뭉치는 몸짓을 웃으면서 들여다봅니다. 눈뭉치가 차츰 커지면서 여러 들짐승이 눈뭉치에 섞이는 모습도 까르르 웃으면서 들여다봅니다.
"겨울 내내 친구가 없으면 어쩌지?"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어. 하지만 두더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만...(본문 13쪽)그림책에 나오는 두더지는 할머니가 들려준 말을 떠올리면서 눈을 굴립니다. 마음속에 맺히는 걱정을 털어내고 싶어서 눈을 굴립니다. 이런 걱정과 저런 근심을 내려놓고 차분한 마음이 되고 싶어서 눈을 굴려요. 반가운 동무를 사귀어서 기쁘게 어울려 놀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눈을 굴립니다.
두더지는 좀 엉뚱한 짓을 했달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겨울 두더쥐라니 더더욱 엉뚱합니다. 더군다나 땅밑에서만 사는 두더지는 땅위로 나오면 눈이 부셔서 다니지 못할 텐데, 어쨌거나 눈을 굴려요.
그림책에서는 이 모든 얼거리가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림책이니까요. 두더지도 얼마든지 하늘을 날면서 놀도록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아무튼, 그림책에 나오는 두더지는 눈뭉치를 굴리면서 여러 들짐승을 눈덩이에 파묻히게 했고, 두더지답게 눈을 씩씩하게 파헤치면서 들짐승을 모두 눈덩이에서 꺼내 줍니다. 이러고 나서 모두 사이좋은 동무가 되고, 여러 들짐승은 저마다 새롭게 눈뭉치를 굴리면서 아침해를 바라보고 새 놀이를 즐깁니다.
"와아, 밖이다!" 눈덩이 밖으로 모두 쑤욱! 그리고 저 너머에도 쑤욱! 그건 아침 해였고...(본문 33쪽)동무가 없다면서 걱정하던 두더지한테 드디어 동무가 생깁니다. 아주 마땅한 일인데, 걱정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 동무가 생길 수 없습니다. 동무를 바란다면 동무를 만날 만한 곳으로 가야 할 테지요.
더 생각해 본다면, 들짐승만 동무가 되지 않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도 동무가 됩니다. 바람과 해님과 빗물도 동무가 됩니다. 흙알갱이도 동무가 되고, 지렁이도 동무가 되지요. 다만, 지렁이는 두더지한테 맛난 밥이 되겠지만요.
아이들과 그림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몇 군데 글월을 손질해 봅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들이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니까요.
머리 위로 눈이 수북이 쌓인 걸 알았어→ 머리에 눈이 수북이 쌓인 줄 알았어작은 눈덩이를 만들었지→ 작은 눈덩이를 굴렸지눈덩이는 점점 커졌고→ 눈덩이는 차츰 커졌고피리 연주를 들려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피리를 불어 줄 동무를 기다렸는데두더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어→ 두더지는 더는 혼자가 아니었어행복한 고민에 빠졌어→ 즐거운 생각에 빠졌어→ 기쁜 생각이 가득했어눈은 '머리에' 쌓입니다. 그릇은 '밥상에' 올립니다. 책은 '책상에' 놓습니다. "책에 냄비 올리지 마" 하고 말해야 옳습니다. "쌓인 줄"이라고 '줄'을 넣어야 할 자리에 '것(걸)'을 넣는 말투는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눈덩이는 '굴린다'고 하지,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다. 눈사람도 "눈을 굴려서" 눈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림책에서도 눈을 굴리는 모습만 나오니 "눈덩이를 만들다"로 적으면 틀립니다. 눈덩이를 만든다고 한다면, 눈을 손에 쥐어서 척척 붙여서 덩이가 지도록 해야 '만들다'입니다.
일본 한자말 '점점(漸漸)'은 '자꾸'로 손질하고, "피리 연주(演奏)를 들려줄"은 겹말이니 "피리를 불어 줄"로 손질합니다. 한자말 '연주'는 "노래를 들려주는 일"을 뜻합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는 현재진행형 말투이니 "기다렸는데"로 손보고,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손봅니다.
'행복(幸福)'은 '기쁨'을 뜻하고 '고민(苦悶)'은 '걱정'을 뜻합니다. 그러니 "행복한 고민"은 "기쁜 걱정"을 가리키는 셈인데, '걱정'은 괴롭거나 애가 타는 마음을 가리켜요. "기뻐서 괴롭다"고도 할 만하지만, 이야기 흐름을 살피거나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즐거운 생각"이나 "기쁜 생각"으로 고쳐써야 알맞습니다.
한 가지를 더 돌아본다면, 책이름도 "두더지의 고민"이 아니라 "걱정 많은 두더지"라든지 "걱정꾸러기 두더지"라든지 "걱정쟁이 두더지"로 새롭게 붙일 만합니다. 한국말에서는 '-의'를 함부로 붙여서 이름을 짓지 않습니다. 다른 책도 아닌 어린이책인 만큼, 책이름과 몸글에 넣는 말마디는 더 깊고 넓게 마음을 기울여서 바라보고 다룰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두더지의 고민
김상근 글·그림
사계절 펴냄, 2015.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