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생소한 9단 자동변속기에 차선이탈 경고 플러스(LDW+), 전방 추돌 경고 플러스(FCW+), 평행 및 직각 주차 보조 시스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같은 화려한 사양들이 중형세단에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 놀랍다.
사양으로 보면 세그먼트의 영역을 깨 버린 차, 크라이슬러 200은 가격도 공격적이다. 시승차인 고급형 200C가3780만 원이니까 현대차 그랜저 최고급형(3875만 원)과 비슷하고 쏘나타 트림 가운데 가장 비싼 익스클루시브(3210만 원)보다 다소 높다.
수입차라는 점을 감안해 비교해 보면 가격이 주는 매력은 상당하다. 경쟁모델인 도요타 캠리, 닛산 알티마보다 싸고 배기량이 한 참 낮은 폭스바겐 파사트와는 비슷한 가격이다. 사양은 최고이고 가격에서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는 셈이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세이블링의 후속으로 출발해 이제 2세대로 발전한 200은 그러나 대개의 미국산 차가 그렇듯이 시장 반응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다 합쳐도 300대가 조금 넘는데 이는 도요타 캠리의 3분의1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산 중형 세단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고 있고 수입차가 이 세그먼트에 약하다는 것은 감안을 해야 한다.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는 200의 상품성이 과소 평가됐고 미국산 브랜드라는 선입견, 여기에 가솔린 엔진을 올려 놨다는 사실만으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도 고려를 해야 한다.
크라이슬러 200을 매력적인 중형세단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많은 것을 비워 놨지만 내실은 탄탄'해서다. 소박한 디자인으로 겉과 속을 꾸며놨고 패밀리 세단이 요구하는 안전, 편의 사양은 첨단화됐고 또 충분하게 적용됐다.
외관은 아주 반듯하다. 크라이슬러 엠블럼 자체가 수평인 탓도 있지만 라디에이터 그릴과 에어인테이크 홀, 그리고 헤드라이트와 안개등까지 여기에 어울리게 가능한 반듯하게 설계됐다. 측면의 캐릭터 라인, 트렁크 도어의 끝 매무새도 마찬가지다. 루프 라인과 C필러가 전체적인 맛을 살짝 비틀고는 했지만 그래도 요즘 나오는 세단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보수적인 느낌이 강하다.
로터리 E 시프트,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로 대체된 실내는 깔끔하고 간결하다. 무릎 쪽의 변화지만 실내가 탁 트인 느낌이 들고 콘솔 전체의 유효 공간을 크게 늘리는 장점도 확보했다. 컵 홀더를 베이스로 한 센터 콘솔의 작은 버튼을 눌러 뒤로 밀어내면 엄청난 크기의 수납 공간이 보인다. 여기에는 USB 단자도 함께 숨겨져 있다.
5인용 시트는 편안한 거주에 신경을 쓰면서 어느 자리에서나 기분 좋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2열의 무릎 공간은 경쟁모델에 비해 좁다는 생각이다. 200C의 전장은 4885mm, 휠 베이스는 2743mm다. 파사트의 경우 전장은 4870mm로 작지만 휠 베이스는 2803mm로 우세하고 캠리나 쏘나타 등과도 상황이 비슷하다.
200C는 지난해 워즈오토 10대 인테리어상을 수상했다, 이 상 수상에는 깊은 바닷속을 바라보는 듯한 클러스터가 큰 역할을 했다. 좌우에 타코미터와 스피드미터를 배치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블루컬러 배경 조명과 꽤 큰 면적을 사용하는 트립 컴퓨터가 독창적이고 효율적이다.
트립 컴퓨터는 깔끔한 폰트로 차량의 주행 및 상태 정보를 제공하고 ACC와 연비, 주행가능거리, 누적주행 거리, 연료 및 냉각수 온도까지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것들도 있다. 드라이브 셀렉트 모드나 패들시프트도 없고 수동모드를 선택할 수도 없다.
로터리 E 시프트를 살짝 올려 아주 조금 속도를 줄일 수 있는 L모드가 전부다. 드라이빙 성능만큼은 200C가 갖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타이거 샥으로 불리는 4기통의 2.4리터 멀티에어2 엔진(배기량 2360cc)이 뿜어내는 출력(187마력/4000rpm)과 토크(24.2kg.m)가 충분하고 9단 자동변속기와의 연결도 부드럽게 이뤄진다. 또 낮은 엔진 회전수의 토크가 좋고 촘촘한 기어비로 속도의 상승 연결이 부드럽게 이뤄지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런 장점들은 출발할 때부터 드러난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격하게 반응을 하고 격하게 페달을 밟으면 그 이상으로 반응을 하면서 거친 사운드를 내며 치달으러 나간다. 가속 페달을 있는 힘껏 내리밟으면 엔진 회전수는 6500을 넘어선 후 꺾이기 시작하고 속도에 맞춰 기어 단수도 상승한다.
시속 45km가 넘으면 클러스터 하단에 D2(2단) 표시가 들어왔고 100km/h 정도에서 4단에 진입을 한다. 정속주행을 하면 조금 다르게 변화를 한다. 기어 단수가 좀 더 잘게 쪼개지면서 100km/h에서 8단에 진입을 하고 그 이상의 속도를 내야 9단에 도달한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8단 이상을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 고속을 꾸준하게 유지해야만 8단과 9단이 찍힌다.
투박할 것으로 생각했던 차체의 거동은 의외로 능숙한 몸놀림을 보여준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경량 스티어링 너클과 암을 사용한 맥퍼슨 스트럿(전륜) 타입 서스펜션으로 전륜구동 방식의 차량 특성을 살리고 핸들링 성능을 높인 덕분이다. 부드러운 쪽에서 약간은 강하게 세팅된 서스펜션은 승차감을 좋게 해주는데도 도움이 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첨단 장치들에 '+'가 붙은 이유는 설명을 듣고 자료를 찾아봐도 충분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마다 차별화를 두기 위한 전략 정도로 이해해야 했다. 그런데도 200C에 적용된 첨단 장치들은 그만한 차급에서 쉽게 볼 수 없다는 점과 함께 깊은 인상을 준다.
그중 차선이탈 경고 플러스(LDW+)는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넘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스티어링휠 진동으로 경고를 하고 적당한 힘으로 방향을 유지해 주는 준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운전자가 힘으로 밀어붙이면 차선 변경은 가능하다.
여기에 설정된 속도 범위 내에서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가속과 감속을 해 주고 제동까지 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이 함께 사용되면 자율주행차와 비슷한 상황이 된다.
단, 스티어링 휠을 잡아 달라는 멘트가 나오고 차선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도 빈번해 임의로 만들 상황은 절대 아니라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시승 중 전방추돌경고 플러스(FCW+)와 액티브 브레이킹 시스템의 위력을 실감하는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고속도로에서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앞 서가던 대형 트럭이 하얀 연기까지 내면서 급정거를 하는 순간,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작동하면서 속도가 줄어 사고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급하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기는 했지만 200C 스스로가 이미 충돌 상황에 대비해 속도를 줄인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이 밖에도 200C는 주차보조 시스템과 8.4인치 유커넥트 시스템, 비교적 정확한 음성인식시스템, 문자를 읽어주는 친절한 기능까지 갖고 있다. 400km가 조금 넘는 시승에서 기록한 연비는 7.4L/100km. 우리식으로 환산하면 13.51km/L다. 크라이슬러 200의 복합연비는 10.9km/L로 표시됐다.
총평 디젤 세단, SUV의 시장 장악력과 지배력이 크다고는 하지만 3780만 원의 가격에 이만한 내실을 갖춘 차는 드물다. 정숙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가솔린 세단을 찾고 있다면 눈여겨볼 가치가 충분한 차가 바로 200C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토헤럴드에도 함께 게재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