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한 건 고3 야간자율학습 시간 때였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복도로 나온 뒤 계단을 내려가 층계참에 섰다. 운동장 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에 훅 감겨왔다. 어두웠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때문인지, 바람 때문인지, 어둠 때문인지 갑자기 나는 마치 바닷가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여기가 바다로구나, 하고 생각하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바다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가슴이 꽉 막혀있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지나가던 교장선생님에게 딱 걸리는 바람에 바다를 음미하던 것도 잠시, 다시 답답한 교실로 쫓겨 들어가야 했지만, 그날의 경험은 내게 아주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가슴이 또 다시 답답해져 올라치면 나는 다시 바다를 떠올렸고, 그러면 조금은 진정될 수 있었다. 상상만으로 안 될 시엔 직접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으면, 왠지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바다는 여전히 내게 영험한 효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매번 바다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상의 바다에만 의지하기엔 내 가슴의 막힌 부분이 고3 그 시절보다 더 커져버려,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래서 주로 걸었고, 최근엔 달리기를 시작했다. 물론, 무거운 엉덩이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귀찮을 때엔 가슴이 답답하다는 사실 그 자체를 잊기 위해 맥주를 찾는 날도 많다.
텃밭에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노동을 만났다나 역시 때론 바다를 찾고, 걷고, 맥주를 들이키며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지라, 김한수 소설가의 자연에세이 <한 알의 씨앗이 들려주는 작은 철학>에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직접 텃밭을 일구는 듯한 착각에 빠져 그 결과물들을 실컷 음미해보기도 했다. 아삭한 풋고추, 달콤한 상추, 시원한 오이, 든든한 감자, 고구마, 그 외 텃밭에서 난 유기농 제철 작물들. 내가 저자라도 이런 텃밭이 집 앞에 있으면 삶을 훨씬 풍요롭다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 김한수는 1987년에 등단한 소설가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집필을 멈추고 문단에서 사라진다. 딸이 태어나자 생계를 위해 생활 전선으로 뛰어든 것이다. 딱, 3년만 그러려고 했단다. 3년 바짝 돈을 번 후 다시 소설을 쓰려고 했단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빚더미에 나앉은 바람에 꼬박 8년을 빚을 갚아야 했다. 생계를 꾸려가는 일이야 누군들 쉽겠냐만은, 소설가에겐 유독 더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저자의 머릿속엔 "삶이 고작 살기 위함이냐는 질문"이 결코 떠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삶에 대한 불안에 휩싸여 자괴감, 무기력증, 우울증에 빠져 있던 저자는 불현듯 살던 인천을 떠나 일산에 새 보금자리를 틀기로 한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바로, 텃밭이었다.
"주말 텃밭 열 평 안 해볼래?"라는 친구의 말에 덜컥 그러겠노마라고 대답한 순간, 저자의 인생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텃밭에서 이전까지와는 다른 노동을 만났다. 그는 그간 노동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천하고 비루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던 터였다. 하지만 그 어떤 강요도, 간섭도 없는 텃밭에서의 노동을 접하고는 오히려 노동의 참 맛을 알게 되었고, 노동에서 오는 행복 또한 느꼈다. 그리고 깨달은 한 가지는, "행복한 사람은 불안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그만큼 좋아질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불안해하지 않고, 불안을 초탈한 사람은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에 사로잡히면 일상에 갇힐 수밖에 없다. 불안한 영혼은 일상의 감옥에서 꿈을 포기한다. 그러면 이만큼 살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자신을 위무한다. 나는 삶은 이만큼 사는 게 아니라 저만큼 나아가야 한다는 걸 텃밭에서 배웠다. 노동을 빼앗기고 살아오면서 우리는 존엄성을 잃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거룩한 존재인가를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 텃밭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을 넘어서서 모두를 보살필 충분한 능력이 있음을 절감한다. 우리는 원래 그러한 사람들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열 평에서 시작된 텃밭은 점점 그 규모가 커져갔다. 7년 사이 텃밭 전문가가 다 된 저자는 개인 텃밭은 물론, 공동 텃밭까지 운영하며 내친김에 '고양도시농업 네트워크'라는 공동체 중심의 농장까지 만들었다. 텃밭에 화장실을 직접 짓는 것은 물론, 학교의 부탁으로 텃밭동아리까지 운영하는 등 이제 저자의 삶은 텃밭 없이는 이야기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다.
삶이 답답하다 느껴지면 삶의 환경을 재점검해봐야 할 테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져 있는가. 우리가 처한 환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경쟁, 성공, 쉬지 않고 달리기, 변화만을 요구하고 있는가.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불안하고, 무기력하다면 이러한 환경이 주는 압박 때문일 것이다. 환경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부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저자와 함께 텃밭을 일구었던 아이들을 봐도 확실히 환경이 문제였다. 일산중학교에서 선생으로 일하던 후배의 요청으로 저자는 아이들과 텃밭을 일구기 시작한다. 삼십 명을 뽑는 모집에 팔십 명이 몰려들어 회의를 걸친 끝에 사십 명이 텃밭 동아리 멤버로 뽑혔다. 아이들은 신바람을 내며 일했다. 놀랍도록 진지했고, 또 굉장히 열심히였다.
텃밭을 가꾸면서 달라진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학교 내에서 '짱'으로 불리던 말썽꾸러기 아이는 처음으로 학교 오는 게 재미있어졌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고, 분노조절 장애를 겪던 아이는 텃밭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 '은따'였던 아이도 어느새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가장 인상 깊은 변화는 학교 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변화였다. 어느 날 보니 두 아이가 텃밭에 나란히 앉아 호미로 김을 매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상황. 이런 변화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텃밭에서는 경쟁이 아닌 협동과 상생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고, 또 텃밭에서 몸을 쓰다 보면 감성이 저절로 순해지기 때문이라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강요한 환경은 결코 아이들의 몸과 마음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공간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은 웃음과 생기를 잃고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동굴을 만들어 들어가 버린다. 텃밭이 바로 이 상처받은 아이들을 치유해 준 것이다.
텃밭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게 된 아이들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텃밭을 보며 이렇게 외쳤다.
"야, 우리 굉장하지 않냐?""그래, 정말로 굉장해!" - <본문> 중에서
한 알의 씨앗이 건강한 흙과 햇빛, 그리고 인간의 노력을 만나 쑥쑥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삶에 대해 다른 시각을 얻게 되었다는 저자는, 소비 주체에서 생산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 삶을 향한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고 했다. 이 자신감으로 저자는 15년 만에 다시 소설을 쓰게 되었다. 텃밭을 통해 몸짱이 된 것도 모자라 마음짱까지 된 그는 이제는 더는 길을 잃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집집마다 텃밭 하나쯤은 있는 그런 세상, 참 좋을 것 같다. 내가 먹는 음식 중 일부분이라도 내가 직접 경작해 먹는 경험을 우리 모두 다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만 된다면 맛집 앞에 길게 줄을 설 이유도(집밥이 젤 맛있으니까), 다이어트를 한다며 고되게 운동을 할 이유도(살이 쭉쭉 빠진다고 한다), 비싼 돈을 주고 유기농 음식을 사 먹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대되는 건 우리 마음이 평온을 찾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주말 텃밭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한 알의 씨앗이 들려주는 작은 철학>(김한수/청어람미디어/2015년 04월 16일/1만3천원)